미술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슈테판 볼만/ 조이한, 김정근/ 웅진지식하우스/ 2006.1.31, 초판/ 2.8.2쇄/ 5.30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
최고의 액세서리는 책이라는, 우스개 같은 말이 있다. 지하철에서 요란하게 차려입은 한 아가씨가 손바닥만한 백에서 책이라도 꺼낸다면(그 책이 무슨 내용이건 간에) 갑자기 그녀를 둘러싼 분위기는 뭔가 좀 ‘고상하게’ 바뀐다. 차림새는 저래도 생각은 있는 아가씨란 느낌에 호기심이 들기도 한다.
무엇일까? 이 막강한 책의 위력은…?
지하철에서건 시장에서건 학교에서건 카페에서건 책 읽는 사람의 모습은 참 보기가 좋다. 남자건 여자건 아이건 노인이건 다 마찬가지다. 매미소리 요란한 한여름 날 덕수궁 나무그늘 아래 샌들을 반쯤 발등에 걸친 채 책에 몰두해 있는 한 아가씨의 실루엣은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항상 떠올리는 이미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책은 정신을 말하고, 정신적이라는 것은 현실보다 조금 위에 떠 있는, 저 위의 세상을 이야기한다. 신과 인간이 분리된 후 인간의 내면에는 신에 대한 갈망이 언제나 자리잡고 있었고, 때문에 조금이라도 정신적인 면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감탄이나 갈망이나 애정을 갖게 되는 것, 그것이 예술일 경우가 많은데, 책 읽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이유를 설명할 도리가 나에게는 이 논리밖에 없는 듯하다.
책을 읽는 행위가 우아하게 보이는 이유는 책이 마술의 허리띠와 같기 때문이라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마술의 허리띠는 그것을 두른 사람에게 우아함을 주고 사랑을 얻을 수 있는 힘을 준다고. (72면/ 도메니코 페티, 독서하는 처녀)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란 책이 나오기 전까진 왜 명화들 중 책 읽는 여자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그토록 많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책장을 주르륵 훑어보면 하나같이 책에 몰두한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이다. 굳이 글을 안 읽어도 그림만 봐도 흐뭇해진다. 13세기부터 21세기까지 책 읽는 여자들의 모습을 담은 명화를 통해 독서의 역사를 조망한 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책 읽는 여자의 모습이 일반화된 건 그리 오래지 않다. 중세 인문주의자들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조금씩 책은 인간의 것으로 사용되었으나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금기나 함부로 접하면 안 되는 무엇이었다. 18세기 이후에서야 책을 읽고 글을 쓸 줄 아는 여성들이 늘어났지만 책을 통해 ‘개념’을 가진 여성들이 등장한 것은 남성들에겐 결코 반갑지 않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마담 보바리>의 경우 책을 통해 현실감각을 읽어버린 주인공의 행실을 이야기하면서 책에 몰두하는 것은 음탕한 짓이라는 분위기로 몰고 가기도 했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을 보면 책이 액세서리로 사용된 경우도 있지만 하나같이 책속에 심장을 그대로 올려놓은 듯한, 깊이 몰두한 여인들의 심각해서 아름다운 표정들이다. 특히 나에겐 그림 하나로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보다 더 상실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한 듯한 호퍼의 <호텔방>이나, 그 어떤 사진들보다 더 마릴린 몬노의 내면 깊숙이에 가닿은 듯한 모습을 보인 <율리시즈>를 읽고 있는 마릴린 몬로의 사진(이브 아널즈 作) 등이 마음 깊이 와 닿았다.
방대한 세계사를 책과 여인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묶어 낸 저자의 호기심과 노력에 감탄을 보낸다. 다만 보기 좋은 그림과 흥미롭고 지적인 내용으로 넘쳐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집중해서 읽기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 왜일까 생각해 보니 문장에 있었던 것 같다. 저자 고유의 문체일 수도 있고 역자의 번역문제일 수도 있겠는데 너무 번역투의 긴 문장들이 독서에 엄청 방해가 된 건 사실이고, 책에 몰두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냥 예를 들어봐도,
“덴마크 코펜하겐 출신이며 학창 시절 친구였던 페테르 일스테드의 누이와 결혼한 화가 빌헬름 하머스호이는 1898년 슈트란드가데 30번지의 17세기에 지어진 건물 2층에 있던 커다란 집으로 이사를 했다(202면)”,
“메릴린이 그 당시에 <율리시즈>를 계속 읽었고 한 대학에 등록을 했으며 조이스 연구로 모임과 접촉을 했고, 그 직후에 그녀가 영화배우와 모델의 삶을 포기하고 대학 교수직을 은퇴하고 난 다음 흥미로웠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고했다고 주장하는 문학교수 브라운의 상상을 액면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전혀 없다.(250면)”
읽다가 치지고, 도대체 주어가 뭔지를 모를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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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에 적합한 특별한 장소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제한이 가해지지 않고 가벼운 독서에 잘 어울리며 사람들이 선호하는 은신처 같은 장소는 아직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이미 베티나 폰 아르님의 방을 묘사할 때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침대’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이용되고, 사람이 태어나 죽는 곳이고, 병들었을 때 누워 있는 곳이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마지막 숨을 내쉬는 곳이기도 한 침대, 밤마다 찾아오는 잠이 깃든 침대는 인간의 삶 속 깊이 자리한 장소다. 이보다 더 본질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장소는 없을 것이다. 수백 년이 흘러오면서 침대는 점점 더 강력하게 인간의 친밀성이 드러나는 무대가 되어 버렸다. 18세기 중엽부터 점점 더 많은 그림에서 새롭고 전형적인 여자의 습관이 된 ‘침대에서의 책 읽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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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 : - 40-41면/ 침대에서의 책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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