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고 나니 어느덧 새벽이다. 페이지가 많은 책이라 시간을 넉넉히 잡고 읽으려 했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는 붙들림에 도저히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흰 옷을 입은 여인’은 결말이 나기 전에는 멈추기 힘든 책이다.

1860년 출간되자마자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00년이 지나서는 TV 드라마/영화/뮤지컬로 만들어졌으며, 지금도 세계에서 출간되고 있다는 책. 셜록 홈즈로 유명한 코난 도일에게 영향력을 끼쳤으며, 찰스 디킨스의 소설 판매량을 앞질렀다는 책. 이 홍보문구들만 봐도 이 책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나도 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이 책에는 리머리지가의 자매 마리안과 로라, 그들의 가정교사인 하트라이트, 로라의 약혼자와 그의 친구, 그리고 ‘흰 옷을 입은 여인’과 그녀의 어머니 등이 나온다. 제목으로 정해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흰 옷을 입은 여인’은 이 책에서 축과 같다. 비중이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지만 사건을 진행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세기 영국, 윌터 하트라이트는 마리안과 로라 자매에게 그림을 가르치러 리머리지가에 오다가 ‘흰 옷을 입은 여인’을 만나고, 그녀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을 품는다. 하트라이트는 리머리지가에서 생활하며 마리안과 우정을 쌓고, 로라에게는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로라에게 예전에 정해진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위해 가정교사를 그만두고, 로라 역시 그에 대한 사랑을 품은채 약혼자와 결혼을 한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로라를 보며 마리안은 가슴아파하고, 그들의 결혼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려 한다. ‘흰 옷을 입은 여인’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 이후, 마리안과 로라는 하트라이터와 재회하고, 그들은 함께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이 책의 화자는 한 사람이 아니다. 시간의 순서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당시의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나와 자신의 관점에서 사건을 정리해준다. 이 방식은 무척 흥미로우며, 책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나는 법정 안에 있는 판사, 혹은 배심원 중의 한사람이 되어 증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각 장면들은 작가의 세밀한 묘사를 통하여 연극을 보는 듯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림 그려졌다.

이 책은 추리소설이지만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만 나열한 것이??석음, 용기 등을 담고 있다. 많은 등장인물들을 관찰하며 각 사람이 가진 특성을 찾아보는 것이 이 책이 가진 재미중의 하나였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마리안이라는 인물을 통하여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혜로우며 용기 있고, 사려 깊고 당당한 마리안은 백작의 찬사대로 멋진 여성의 모습이었다.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에게 권면하고 싶은 것은 ‘책 소개를 너무 깊게 읽지 말라’는 것과 ‘조급해 하지 말라’이다. 나는 책 소개를 보며 하트라이트의 재등장이 빨리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뎌서, 그의 출연을 앞당기기 위해 중반부를 설렁설렁 넘겨버렸다. 멋진 수사여구를 사용하며 길게 늘여 쓴 글들은 나중에 꼼꼼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나는 곧 다시 읽을 생각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왕이면 처음부터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이 책을 충분히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