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신미식씨의 블로그를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그동안 그가 출간했던 책들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사진들이 정말 멋있었다. 단순히 멋있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감동을 주는 사진들이 많이 있었다. 사진들을 보면서 그의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눈을 즐겁게 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의 열 번째 포토에세이, '마치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을 읽게 되었다.

 

표지에 적혀 있는 홍보문구가 정말 이 책을 잘 표현하고 있다. '여행본능을 불러일으키는 포토에세이'. 정말 그렇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향한 설레임이 생겨서 떠나고 싶었고, 내가 다녀온 곳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 떠나고 싶었다. 나를 묶어놓고 있는 모든 것들을 던져버리고, 훨훨 날아가고 싶은 마음에 나를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이 책에는 케이프타운, 마다가스카르, 에딘버러, 파리, 아시아, 페루의 사진이 들어있다. 마음에 드는 사진들이 너무나 많았지만 특히 자신의 사진을 들고, 포즈를 취한 아이의 사진. 그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자신의 사진을 가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들의 사진을 나누어주는 작가를 보니 '저런 것이 베푸는 삶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그들이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을 전해주는 작가의 마음은 책의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두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사진들은 에딘버러의 사진이었다. 스코틀랜드의 멋진 건물들을 보면서 나는 작년 여름, 내가 그 곳을 여행했을 때를 떠올렸다. 사진을 통하여 내가 다녔던 곳을 발견했을 때는 '아! 나도 여기 가 봤는데!' 라며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내가 가 보지 못한 곳들의 사진을 보았을 때는 '이런 곳이 있었나? 다음에는 꼭 가봐야지.'라며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사진이 많아서 책에 있는 글은 금방 다 읽었다. 하지만 사진을 읽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아이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이 사진을 찍으면서 어떤 느낌이었을까 등을 생각하다보면 한 장을 넘기기도 힘들다.

나는 구도와 마음을 담아 사진을 찍는 법은 모르지만 작가처럼 애정을 가지고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여행다닐 때 주로 '어디 어디에 다녀왔음'을 확인하듯 내 사진을 찍었었는데 다음에 여행을 갈 때는 내가 다녀온 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많이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여행이 나를 부른다. 손짓하는 그 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나는 일본소설을 거의 읽어본 적이 없다. 몇 권 읽어본 책이 있다면 그 유명한 상실의 시대와 냉정과 열정사이 정도랄까? 일본소설을 하도 재미있게 읽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도 그 맛을 알아보려고 고르던 중 내 손에 들어온 책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이다. 짧고 검은 머리의 깜찍해 보이는 아가씨가 잉어 가방을 매고 도도하게 길을 걸어가고 있고, 그 뒤에서 한 남자가 손을 멈칫 하며 아가씨를 따라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표지였다. 그런데 제목은 참 희한했다. 밤이 짧다는 것과 걸으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중 ‘다빈치 선정 올해의 책 1위’라는 문구와 ‘25년 동안 내가 읽은 소설 중 최고!’라는 한 독자의 말에 이끌리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연애 판타지이다. ‘선배’라고 불리는 한 남자가 서클 후배인 ‘검은 머리 귀여운 후배 아가씨’를 짝사랑하여, 그 뒤를 밟으며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로 풀어나가고 있다. 화자는 선배와 아가씨, 두 사람인데 서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듯 한 느낌으로 즐거움을 준다. 가끔 누가 이야기하고 있는지 몰라 책장을 앞으로 넘기는 일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사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의 느낌은 '낯설다‘이었다. 비슷한 일본 이름들에 헷갈리고, 익숙지 않은 일본풍경에 개인적으로 취미가 없는 술 이야기가 나열되자 ‘잘 못 선택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장을 넘어가면서부터 달라졌다. 헌책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무척 흥미로웠고,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동선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졌다. 2장에 들어서면서 적응한 것일까? 처음에 느꼈던 것과는 달리 신선하고 유쾌했다. 나는 ‘그냥 종이 다발에 잉크가 스민 것뿐인데 이렇게 비싼 돈을 내고 사겠다니’라며 책에 대해 말하는 히구치씨의 말에 폭소를 터뜨렸고, ‘책은 모두 이어져 있다’라며 설명하는 헌책시장의 신의 말에 감탄했다.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으나 다른 책에 눈이 먼 사이 사라져버린 여러 권의 책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헌책방을 좋아해서 다니던 중학교 시절과 달리 요새는 들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도 그 곳에서 이 아가씨의 라타타탐같은 책을 발견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책은 3장에 이르러 절정에 놓인다. 나에게 천진난만함의 대명사가 된 아가씨는 그 모습을 대학축제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주고, 달마오뚝이 공주가 된 아가씨와 괴팍왕이 된 선배의 마지막 장면은 안도감과 설레임을 느끼게 한다. 4장에서 마무리되는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차가운 겨울이 배경이지만 따뜻한 느낌을 준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표지만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등장인물들도 많이 나오고, 에피소드들도 상당히 색다른 재미를 주는 책이다. 마지막을 향할수록 책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을 현실세계로 가지고 올 수 있었을까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이다.

나처럼 일본소설에 발을 들여놓고 싶은데 어떤 책에서 시작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고 있는 사람, 뻔 한 연애소설에 흥미를 잃은 사람, 애니메이션과 같은 환상적인 느낌의 소설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연서’는 팩션 형식의 소설이다. 팩션이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써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문화예술 장르를 가리킨다. 팩션 형식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 이 책은 유명한 ‘서동요’를 모티브로 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었다.

이 책은 백제 무왕의 성장기를 다룬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장(무왕)은 위덕왕의 서자이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낸다. 첫사랑인 꽃님이가 다른 이에게 시집을 가자 방황하던 장은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되고, 지광스님 밑에서 수련을 쌓은 후 스승 왕평을 만나게 된다. 이후 소서노의 검을 찾아 왜에 건너간 장은 자신의 배다른 형인 아좌태자를 만나게 되고, 선화공주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왜 책의 제목을 연서로 지었을까?’였다. 서동요를 모티브로 했다지만 선화공주와의 이야기는 짧고, 무왕의 청년시절까지의 삶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함인지, 내가 알지 못하는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무척 빠르게 전개된다. 쉴 틈 없이, 어떤 군더더기도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에 독자는 순식간에 빠져들게 된다. 나 또한 서론만 읽어보자는 생각에 책을 들었다가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버리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재미’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책은 충분히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나에게 색다른 생각할 거리들을 주는 장면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장이 지광스님 밑에서 수련을 쌓는 과정, 그중에서도 도자기를 만드는 장면이다. 진흙이 주물러짐과 다듬어짐, 불에 구워짐을 통하여 멋진 도자기로 거듭나는 것처럼 사람도 수련을 통하여 자신을 가다듬고, 성장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장이 그림을 파는 법을 배우기 위해 상인을 만났을 때이다. 어떻게 그림을 팔아야 하는지,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모든 것에는 지혜가 필요함을 느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 대한 지식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합하여 질 때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가지, 이 책을 읽으며 우려가 되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를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백제의 역사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나는 책을 읽으며 모든 것이 사실인 듯 혹은 거짓인 듯 받아들였는데 ‘소설’이라는 틀을 빌어 거짓을 사실처럼 느끼게 한 부분들이 있다면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백제의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해봐야겠다.

이 책의 끝은 처음에 비해 조금 허무하다. 무왕이 된 이후의 삶이 나타나지 않아서일까? 왠지 급하게 끝냈다는 생각이 든다. 연서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