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거절'이란 무척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다. 나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부탁받았을 때, 그것을 해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싫어'라고 말하는 것보다 쉽다고 생각한다. 왜 이렇게 나는 거절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힘들더라도 거절하지 않고, 일을 잘 해내었을 때에는 내가 거절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크게 상심하지 않지만 그 반대의 경우 나는 크게 마음을 상하곤 한다.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으로부터  한 단체에 속해서 봉사를 하자는 권유를 받았다. 사실 바쁜 생활 중에 시간을 낼 수가 없었지만 나는 거절할 자신이 없어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약속한 날이 다가오면서 나의 일은 더욱 바빠졌고, 결국 나는 그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뒤늦게 그 사람에게 사과하며 내 상황을 설명했다. '못 하겠어요'라는 말 대신 '어떻게 하지요?'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말이다. 그 분은 '그럼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는 그분과 사이가 서먹해졌다. 처음부터 하지 못한다고 말을 했으면 지금보다 나은 상황이 되었을텐데 내가 거절을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나는 누군가의 부탁에 거절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책감에 빠져있던 나는 '현명한 그녀는 거절하는 것도 다르다'라는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가족, 연인, 친구, 고용주, 동료, 부하 직원, 낯선 사람, 의료 종사자들의 부탁을 거절해야 할 때 여성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거절 방법을 알려준다. 이 얼마나 유용한 책인가! 이 책을 통하여 나는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거절을 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거절을 하지 못한다. 어떤 이는 관계가 멀어질까봐, 어떤 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까봐, 어떤 이는 동정심 때문에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저자에 의하면 여자들은 관계중심적이기 때문에 '노'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내 경험을 돌아봐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조금이라도 악영향을 끼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경우 거절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대상과 상황 속에서 어떻게 거절을 하지 못하는지, 거절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솔직히 첫 장, 부모들의 요구를 거절하는 법은 와닿지 않아서 읽기가 힘들었는데 그 다음장부터는 조금씩 책에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공감갔던 부분은 '친구라고 무조건 다 해줘야 하니?'였다. 나는 가족, 상사, 부하직원등보다 친구의 부탁을 유달리 거절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이 책에서 제안하는 방법들이 무척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이 책에서 1단계에서 4단계에 걸쳐 하는 질문을 따라가다보면 '그래, 나도 거절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했던 염려들은 너무 과한 것이었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때 친구가 나를 거부할 것이라는 생각은 우정의 힘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저자가 의학박사여서 그런건지, 책의 흐름때문인지 책을 읽어갈수록 내가 꼭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어려워보이는 책이었는데 점점 친숙한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아! 조금만 더 이 책을 빨리 만났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바로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내가 거절해야만 했었던 기부에 대한 전화를 받았고, 이기적으로 보일까봐 기부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반드시 '예스'를 해야만 모든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또한 거절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융통성 있게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고지식하고, 한 길밖에 알지 못하는 나는 거절도 딱딱하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다. 이제 기술은 준비됐으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이다.  나에게 거절의 순간이 다가올 때, 이 책에서 읽었던 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현명하게 거절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