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을 읽을 시간이 도통 없다. 책을 읽기 위해 집중할 여력도 없다. 하지만 책을 손에서 떼기는 정말 싫다. 이럴 때 읽기 좋은 책은 무엇일까? 나는 그런 책으로 일본 소설을 택했다. 일본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전에 읽었던 일본소설이 유쾌함과 엉뚱함, 상상력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었던 까닭인지 일본 소설은 경쾌하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내 안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무겁고, 어두운 주제의 일본소설이 있다는 것도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지만)
히메노 가오루코의 ’내 안의 특별한 악마’는 ’여성들의 피곤을 한방에 날려주는 통쾌소설!’이라는 문구에 혹해서 읽기 시작했다. ’내 안의 특별한 악마’라니 표지 속에 등장하는 여자의 몸 속에 어떤 악마적인 기질이 숨어있다는 뜻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아이, 싫어. 이러지 마, 고가씨."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책은 나를 흠칫 놀라게 했다. 아니, 이게 뭐야? 내가 생각했던 책이 아닌가? 라는 당황스러운 마음과 더불어 생긴 호기심으로 책을 읽다가 나는 마지막 문장에서 웃고 말았다. 고가씨란 그녀의 피부에 생긴 커다란 부스럼, 종기였던 것이다. 첫 페이지부터 독자에게 이런 재미있는 반전을 선사하다니! 이 책 또한 전에 읽었던 일본소설과 버금되게 엉뚱한 느낌일 것 같았다.
이 책의 주인공 프란체스코는 어릴적 수도원에서 자라난 20대의 처녀이다. 아직 연애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그녀의 팔뚝에 어느 날 종기가 생긴다. 그 종기는 인면창으로 말까지 한다. 프란체스코는 종기를 떼어내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인면창에게 웃음거리를 선사할 뿐이었고, 그와의 원치 않는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프란체스코의 조개에 옮겨 간 인면창에게 그녀는 고가씨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도 준다. 이 부분에서는 난 정말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면창이 어떻게 생긴 것일까? 음식을 먹는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지? 이건 정말 엉뚱함을 넘어서 말이 안되는군! 이라는 투덜거림을 내뱉으면서도 이 책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책이 지니고 있는 매력때문이었을까? 고가씨를 그냥 사람이라고 생각하자!라는 마음으로 계속 읽어나갔다.
프란체스코는 고가씨 덕분에 쓸쓸했던 삶에 활기를 가지게 된다. 나는 고가씨가 프란체스코에게 하는 막말들을 보며 그녀의 참을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지만 또한 얼마나 외로웠으면 인면창으로 인해 쓸쓸함이 사라졌을까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고가씨가 그녀에게 다가온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프란체스코는 고가씨와 투닥거리면서도 나름대로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매사의 정성스러운 그녀의 성격을 이용한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녀의 사업과 관련된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은 ’성’을 소재로 하지만 퇴폐적인 느낌보다는 독특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프란체스코는 성공적인 사업을 하게 되고, 여러가지 사건을 겪은 후, 고가씨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그리고 고가씨에게 키스를 하는 순간 빛과 함께 지그프리트 왕자가 나타난다. 그렇다! 고가씨는 왕자였던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끝맺음인가. 나는 옮긴이의 말, ’그야말로 끝내주는 해피엔딩이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야 알았다. 쿠스와의 로맨스를 나름 기대했었는데 이거야말로 이 책에 어울리는 결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를 당황시키는 책이다.
단숨에 책을 읽고 나니 약간 멍하다. 꽤나 기이한 이야기 속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다. 하지만 기분은 나름 상쾌하다. 평범치 않은 소설을 읽고 난 후의 큭큭웃음도 나온다. ’곳곳에 널린 섹시 코드에 질려버린 여성들의 피곤을 한방에 날려주는 통쾌소설!’이라는 책의 홍보글처럼 비슷비슷한 책들에 지겨워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나는 홍보글의 뒷부분에 주목했지만, 사실 독자들은 앞 부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