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간만의 휴가이다. 아무한테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나만의 시간. 지금 나는 달콤 시원한 커피 한잔을 들고 커피숍에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는 제목부터 흥미로운 책 한권이  놓여져 있다. ’유쾌하게 사는 법 죽는 법’. 한창 우울함에 빠져서 헤매지 못하던 때에 읽어보려 마음먹었지만 몇 번을 실패하고,  오늘에야말로 완독하고 말겠다는 결심으로 잡은 책이다.

이 책은 엔도 슈사쿠의 수필집이다.  ’침묵’이라는 다소 어렵고 무거운 소설로 처음 그를 접했는데 수필로 다시 만나게 되니 새로운 기분이 느껴진다. 엔도 슈사쿠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스스로 즐기며 집필했다는 부인의 말처럼,  (사실 ’편안함’이라는 단어가 ’집필’의 과정과 썩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어떤 무리수가 느껴지지 않는 책이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자기 자신의 내면의 고백을 담은 그의 책이 나에게도 편안하게 다가온다.

’잘 사는 법 잘 죽는 법’이라는 원제에서도 나타나듯 엔도 슈사쿠는 이 책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 듯 하나, 내가 느끼기에 이 책에는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 뿐 아니라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담겨있는 것 같다. 그것은 그 또한 신의 세계로 차츰 가까워지고 있는 나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는 이 책의 몇 군데에서 ’죽을 때가 되면 죽어야 한다’는 성현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다르게 찾아오는 죽음의 시간. 과연 ’죽을 때’란 언제인가? 예전에는 내가 무엇인가를 다 이루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 삶의 미련이 없을 때, 그때를 ’죽을 때’로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문득 ’죽음이 나에게 다가 온 그때’가 바로 ’죽을 때’가 아닌가 라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 든다. 죽음이 나에게 다가온 그 순간을 ’나의 죽을 때’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을 느낀다.

이 책을 읽으며 몇 가지 인상적인 말을 발견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한 수 위의 사람들을 생각해서 글을 써라’.  이 말은 최대한 절제된 문장 속에서도 글쓴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충분히 이해하는 현명한 독자를 고려하여 과장된 묘사를 자제하라는 말이다. 이 문장을 보며 나는 따끔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나의 감정을 잘 전달하기 위해 ’더 좋은 말’보다 ’더 많은 말’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지...

두번째 인상적인 말은 이것이다. ’인간이란 독주자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이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작가는 우리가 여러 소리를 내는 다양한 삶을 살 수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나는 인간의 이러한 속성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한 가지 소리만 내며 살아간다면 이 삶이 얼마나 무료하고 따분했을까.그의 일기에서 보듯 그는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것저것을 배우며 삶을 살았다. 다양한 소리란 그러한 자기 발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나 또한 내가 가진 악기들이 녹슬지 않도록 내가 배우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리라 결심을 해 본다.

책을 읽고 잠시’유쾌하게 사는 법 죽는법’에 대한 생각에 잠겨 본다. 그러다 문득, 갑갑한 사무실에서 탈출해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 홀로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부터 ’행복하다’고 외치고 있음을,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를 띄고 있음을 발견한다. 사람들의 떠들썩한 소리도, 포크와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자동차의 경적소리도 나에게는 소음이 아닌, 자유를 선포하는 상쾌함의 소리로 들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 과정을 통하여 나는 깨닫는다.일상은 즐거움보다는 고통의 연속이지만,그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응원하고, 행복의 기운을 내면으로 보내는 것, 무거운 몸과 여유없는 시간을 탓하기 보다, 틈을 내어 나의 시간을 만들어 마음껏 누리는 것,그 가운데 삶의 유쾌함이 숨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 나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유쾌한 삶을 대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