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기와>, <상상의 초가 교실>의 작가 차오원쉬엔의 장편 성장소설. 열네 살 소년이 열아홉 살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그려냈다. 몸과 마음이 자라면서 겪는 가슴 시린 통증이 아름답고 다채로운 빛깔의 정서 속에 담겨 있다.

주인공 근조는 막 고개를 내민 새싹처럼 여리다가도 돌연 위태로운 행동을 하기도 하는 소년이다. 열네 살의 나이에 이르러 꿈을 찾아 길을 나선 그는 굽이굽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들을 지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운명적인 성장통을 통과해 낸다.

꿈이 없는 칠흑같은 밤이 얼마나 끔찍한 건지는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지. 기나긴 어두운 밤 내내 뜬 눈으로 잠을 못 이루고 날을 밝힌다거나, 아니면 죽은 듯 잠들어 끝이 보이지 않는 지옥에 빠졌다가 깨어나면 하루 밤이 어둡고 황량하기만 한 죽음보다 훨씬 끔찍한 느낌이라는 것을.

아우는 얼마나 행복한 거야! 꿈을 꿀 수 있으니 말이야! 게다가 꿈 속에서 백화가 만발한 협곡까지 볼 수 있다니 뭘 더 바라겠어! 그렇게 아름다운 밤이 있다니! 그런 밤은 공허하지도 고독하지도 않겠지. 소리가 있고 빛깔도 있잖아. 악몽을 꾸어도 좋아, 악몽이면 어때? 땀을 흠뻑 흘리고 깨어나면 공포에서 벗어나 자신이 현실에서 평온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으면 되지! 꿈은 하늘의 자비야! -- 본문 중에서

여보게,금방 지나간 얼굴이 하얗고,행색이 초라하고,행동거지가 비범한 젊은이는 어떤 사람인가?
여불위는 물으면서 점원을 따라 일품향이라고 씌여진 찻집에 들어갔다. 여헌과 육자도 부득이 뒤따라갔다. 점원은 그들에게 차를 따르면서 말했다.
손님은 안목이 있으십니다!손님께서 말한 그 사람은 진나라의 왕손입니다!
진나라 왕손이 어찌 그렇게 행색이 초라한가?어찌 이곳까지 흘러 들어왔단 말인가?
여불위는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화제가 이에 미치자 찾집이 시끌벅적해졌다.
손님께서는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그 왕손의 이름은 이인이라 하고 그의 부친은 지금의 진나라 소양왕의 태자 안국군 영주입니다.
그는 조나라와 진나라가 화친을 맺을 때 보내온 인질이지.
그 왕손은 팔자가 기구합니다. 본디 안국군의 슬하에는 모두 스물세 명의 왕자가 있었고 그 가운데는 그보다 연장자도 있고 연소자도 있었답니다.
불행하게도 오 년 전 겨우 열다섯살이었던 그가 인질로 보내졌는데,이는 그의 어머니 하희가 일찍 타계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왕손의 천명이 길어 오늘까지 살아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죽었을 것입니다.
그가 인질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진나라 왕이 동맹을 파기하고 조나라를 무력으로 공격하자 우리 조 왕께서 그를 죽여 분을 삭이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평원군이 누차 간언하여 그 왕자는 지금까지 명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

(기인,기상,기화/ p. 128~129)

이 소설은 "여불위가 진 시황의 친아버지였다"는 전제 아래 여불위의 삶과 죽음, 진 시황과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활동 무대였던 전국시대의 여러 방면의 모습들을 그려냈다.

듣자 하니 재해 지구 백성들이 경에게 '현덕승상'이라고 씌어진 편액을 주었고 또 '상국천세'라고 구호를 외쳤다 하는데 이는 백성들이 신하만을 존경하고 군주를 깔보는 처사가 아니오?
여불위는 이 말을 듣고 속으로 놀랐다.
그는 '정말 사람 속은 모르겠구나!내가 가산을 털어 너를 구하고 애첩 조희까지 주고,또한 열성이 넘치는 충성을 하였건만 어찌 나에게 의심을 품을 수 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불위가 이재민을 구하러 간 것은 장양왕의 도의를 얻어서였다.
출발하기 전 여불위는 장양왕에게 민심을 얻기 위해 구휼을 가는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을 했었다. 그러나 백성들이 편액을 주고 '상국천세'라고 외쳤다고 장양왕이 참지 못하여 의심을 하니 그의 도량이 작음을 알 수 있었다.
정말 많은 해를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동고동락했건만...
이전에는 여불위의 말을 모두 신봉했는데 왕이 된 지 얼마 지났다고 의심을 품다니,정말 '범의 새끼'를 키웠구나 하는 생각에 화가 나기까지 하였다.
이때부터 여불위와 장양왕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틈이 생겼다.
여불위는 무척 화가 났지만 지금은 태부와 태자라는 사제 관계가 아니라 군주와 신하의 군신관계였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화를 삼키고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왕관 없는 왕/ p.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