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와 밥 딜런 _ '바람과 나'와  'Blowing in the wind'

'끝 끝없는 바람'으로로 시작되는 김민기의 '바람과 나'를 들었을 때가 내가 밥 딜런을 처음 만난 때다. 미디어의 보급에서 시작된 대중문화. 공중파가 뿌려진 직후 우리에겐 음악이 없었다. 70년대 들어서 창작가요라는 것이 시작되긴 했지만, 미8군 출신이 부르는 팝과 비틀즈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대학가 그룹의 번안가요 이 두 줄기 외에는 전파를 타기 어려웠다.

그 시절에 만난 김민기는  노래라기 보다는 시였다. 세련된 의상 가수들의 음반 사지이라기 보다는 매캐한 최루 연기 뿌연 곳에서 어깨동무한 사람들의 흐릿한 흑백사진이었다. 고등학교 교실 음악시간 선생님이 공수해 온 판금 음반 <김민기>에서 울려 나오던 탁성으로 울려나오던 '바람과 나'는 그 전까지는 전혀 듣지 못했던 세계였다.

그리고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you call him a man?'으로 시작하는 Bob Dylan의 노래를 처음으로 듣고 배웠다. 김민기의 '바람과 나'가 흐릿한 흑백 사진이었다면 이상하게도 바다 건너 남의 나라 가수 밥 딜런의 노래는 움직이는 '영상'이었다.

그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보면, 당시의 밥 딜런은 대중음악의 현실태였고 김민기는 감추어지고 숨겨진 저항 음악의 기록이었기 때문이지 싶다. 

 

밥 딜런의 음악과 밥 딜런의 사이

그 때는 몰랐다. 저항음악의 아이콘으로 세계에 명성을 날리고, 68세대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밥 딜런은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적 아우라로 부터 벗어나려 했다는 사실을. 20년을 뛰어 넘어 80년대의 한국 음악실에서 현존하는 청년 저항 가수로 소개 되어 새로운 음악의 꿈을 퍼뜨렸던 밥 딜런이 자신이 확산한 저항가요의 씨앗을 냉소 섞어 비웃고 있었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밥 딜런 자신이 밥 딜런의 음악에 진정한 동의를 보내며 사람들 앞에서 진정성을 담아 노래했던 무대는 메카시 바람이 남아 있던 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까지의  전부다. 4~5년 남짓한 시간 동안을 빼고는 끝없이 노래를 토해놓고 생활에서는 자신의 노래로부터 달아나기를 반복한다.

 

마이크 마퀴스의 <밥 딜런>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나름대로 찾았다.

예술은 시대의 단면을 드러내지만 예술가는 시대와 함께 뒤섞여 호흡하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움직인다는 것은 훨씬 더 많은 시간과 공간을 통과한다는 얘기다. 훨씬 더 많은 순간을 만나고, 순간 순간 판단하고 선택한다는 걸 의미한다. 예술가는 입체적인 환경으로 둘러 쌓여진 채 수 많은 변수들을 만나는 연속된 점 위를 걷는다. 예술가 역시 세계 속에 놓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허나 밥 딜런은 자신의 노래를 포함해서 그의 노래를 받아들이는 세상과 자신을 끊임없이 분리시키려 했다.

밥 딜런은 특유의 예민한 감각과 정서로 매 번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미국을 읽고 볼 줄 알았다. 그가 본 미국이란 세상의 단면은 그의 노래 속에서 날 선 가사와 선율로 태어난다. 허나 밥 딜런 자신은 노래를 낳은 세상과는 어울려 들어가지도, 반기를 들지도 않은 채 우주 만큼의 거리를 유지 한다. 자신이 낳은 노래는 생동하는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 속으로 들어가 숨 쉬지만, 밥 딜런 자신은 안드로메다에 앉아 자신의 노래와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포함된 세상을 향해 싸늘한 시선과 냉소를 던진다.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축복처럼 젖어드는 노래와 달리 세상에 등을 돌리고 멀어져 가려는 밥 딜런의 뒷 모습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빅토르 하라가 그의 노래처럼 살다간 것, 존 레논이 신혼여행에서 오노요코와 침대에 나란히 앉아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과 '이매진'이 같은 이미지로 남아 충만한 울림을 주는 것과는 상반된 곳에 밥 딜런의 노래와 그의 삶이 있었다.

 

밥 딜런 음악에 보내는 찬사와 냉정하고 깊은 사랑

<밥 딜런 평전>은 아주 독특한 평전이다. 밥 딜런을 다루지만 냉혹하리만치 객관적이며 비판적인 시각으로 밥 딜런을 조명한다. 또한 밥 딜런 개인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밥 딜런이 확산시킨 저항가요라는 유전자를 가진 음악인들을 폭넓게 다룬다는 점이다.

밥 딜런은 주인공이면서도 밥 딜런과 같은 시대의 음악인들을 소개하는 연결자이다. 책의 첫번째 장을 제외하고는 밥 딜런은 주인공의 지위를 내려놓는다. 나머지 장에서는 밥 딜런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저항가요계의 많은 음악인들이 주인공이 된다. 밥 딜런은 그 음악인과 음악을 등장시키고 비교하게 만드는 허브의 역할만 한다. 오히려 반면교사로 등장한다는 게 적절하다.

하지만 작가는 밥 딜런의 음악과 그가 뿌린 음악적 영향력을 결코 폄훼하지 않는다. 오히려 꼼꼼한 비판 속에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작가 스스로 고백하듯 밥 딜런이 남긴 음악으로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시궁창 같은 세상을 통과하는 에너지를 얻은 데 대한 고마음도 때론 담긴다. 어느 부분에서는 마치 박노해의 시 '사랑'에 나오는 '일치를 향한 확연한 갈라섬'과 같은 사랑도 느껴진다.

물론 기독교 근본주의를 선언한 90년대의 밥 딜런에게는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표현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남긴 음악의 가치를 '허위의  소산'으로 치부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를 작가는 '밥 딜런이 대중에 영합하거나 인기를 얻기 위해 저항가요의 정신을 배신하지는 않은 것', '밥 딜런은 관념적이긴 하나 스스로에게 진정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 없이 던진다는 것'이라 말한다.

무엇보다 밥 딜런이 아직 실존하는 인물이며, 그가 살아 있는 때에 던지는 냉혹한 평가라는 점이 작가가 밥 딜런에게 남겨둔 애정의 가닥을 가늠하게 한다. 허나 동시에 밥 딜런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걷든지 지난 과정에 대한 평가를 유보할 뜻은 조금도 옅보이지 않는다.

 

밥 딜런. 나 역시 그의 음악적 정서를 내 체내에 품고 있다. 그가 시작하고 확산한 음악의 시대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60년대가 남긴 과제가 여전히 유효한 것처럼 밥 딜런이 상업적 대중음악에 등극시킨 밥 딜런의 저항음악 역시 유효하다. 밥 딜런의 입장과 무관하게 저항음악의 유전자가 더욱 다양한 음악인들 속에서 무성한 숲으로 자란 것처럼 저항음악의 양식 또한 풍성해져야 한다.

고정되지 않으나 소신을 지키며, 소신을 지키나 더욱 많은 사람들의 취향과 삶과 정서를 품는 음악의 과제는 밥 딜런 평전을 읽는 내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밥 딜런에게 음악의 계기가 됐던 우디 거스리에게 밥 딜런이 음악으로 답한 것 처럼, 우주 공간을 떠도는 유랑자와 같은 밥 딜런에게 우리 역시 음악으로 답을 할 차례다.

밥딜런, 마이크마퀴스, 실천문학사, 팝, 포크, 저항가요

<Loving Tatkes This Course : A Tribute to the Songs of Kath Bloom>. Kath Bloom과 Kath Bloom에게 헌사하는 음악인들이 다듬어 부른 Kath Bloom이 두 장의 CD에 담긴 음반이다.  음반을 받아 들면 행복한 고민이 시작된다. Kath Bloom을 먼저 들을 것인지, 아니면 Kath Bloom을 부른 인디 뮤지션들의 현재 음악을 들을 것인지. 어떤 것을 먼저 시작해도 좋다. 허나 듣기 시작하는 순간, 어느 CD에서든 쉽사리 빠져나오기 어렵다.  

CD2 - 개성과 풍부함이 넘치는 울림 Kath Bloom 

 70년대 중반에 활동을 시작한 포크 가수고, 음반은 다섯장을 냈으며, 음반을 낼 때마다 늘 소량으로 냈기 때문에 쉽사리 구하기 힘들다. 허나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 그의 노래 "Come here"이 삽입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Kath Bloom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소개글에 나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가 그의 원 음반에 실린 노래를 듣고 나서 든 느낌이다. 그의 음반에 실린 다른 노래들과 비교하면 "Come here"는 아주 모던한 편이다. 다만 청아하게 흔들리는 그의 음색만이 공히 담겼달까? 그래도 혹 "Come here"를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먼저 듣는 시간을 갖자.

 

 YouTube에서 담은 음악이다. / 비포 선라이즈에 삽입된 영상으로 들으면 처음 만나는 남녀 사이에 오가는 감정의 이끌림이 더욱 느껴지겠지만, 노래의 완곡을 담은 뮤직비디오를 찾자니 죠니뎁이 나왔다. 완소 죠니뎁의 이미지도 Come Here의 정서를 충분히 자극한다. 내 경우에는.

 Come Here과는 좀 다른 곡을 들어 보자. It's so hard to come home 이다.

 

 음반에 실린 노래를 찾지 못했지만, 음반 속 Kath Bloom 특유의 개성을 옅보기에 좋은 음악이다. 고음에서 점멸하는 불빛마냥 떨리는 소리와, 예상치 못하게 중 저음부에서 발견하는 힘이 넘치는 목소리가 너무도 매력적이다. 청아하게 우리는 곳에서는 조니 미첼Joni Mitchell이 떠오르기도 하고, 떨리는 듯 하면서도 힘 있는 울림이 느껴지는 가성에서는 존 바에즈Joan Baez가 느껴지기도 하며, 말랑하면서도 힘있게 뿜어 나오는 중 저음부에서는 뷔욕Bjork이 떠오르기도 한다. 독특한 울림이나 전체적으로 맑은 그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은 참으로 황홀하다.

기타는 또 왜 덩달아 떠는지, 코러스가 빚어내는 묘한 불협은 얼마나 신선한 조화를 만드는지 느끼는 순간, 세계의 뮤지션들 그의 음악에 창조적인 영감을 얻어 '음악으로 헌사'를 바치게 된 동기를 찾는다.

 CD2에 담긴 Kath Bloom의 음악들이다.

01. Come Here 
02. The Breeze / My baby cries
03. When I See You
04. Finally
05. Window
06. Forget about Him
07. I Wanna Love
08. Biggest Light of All
09. Look at Me
10. Ready or Not
11. Fall Again
12. It’s so hard to come here
13. In your school
14. If this Journey
15. There was a Boy

 다 들려줄 수 없는 것 개성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가수들은 모두 아름답다. 하지만 결이 다른 음악의 매 순간 마다에 자신의 울림을 담아낼 수 있는 가수는 많지 않다. Kath Bloom, 'Come Here' 이후에 음반으로 처음 만나는 그의 음악에서 수십년 지난 흐릿함이 아니라, 포크의 "오래된 미래"를 만나게 된 것은 큰 행복이다.

단출한 연주와 거의 홈레코딩처럼 자연스럽고 날 것인 듯 녹음된 음반에서 요즘 음악에서 만나기 어려운 풍부함을 맛 본다.

 CD1 - 세계 인디뮤지션들의 Kath Bloom

 01. Marble Sounds - Come Here
02. Bill Callahan - The Breeze / My Baby Cries
03. Laura Jean - When I See You
04. Mark Kozelek - Finally
05. Mick Turner & Peggy Frew - Window
06. Devendra Banhart - Forget About Him
07. Scout Niblett - I Wanna Love
08. The Dodos - Biggest Light of All
09. Josephine Foster - Look at Me
10. Mia Doi Todd - Ready or Not
11. Corrina Repp - Fall Again
12. Marianne Dissard & Joey Burns - It's So Hard To Come Home
13. Amy Rude - In Your School
14. Tom Hanford - If This Journey
15. Meg Baird - There Was A Boy
16. The Concretes - Come Here

 한 곡 한 곡 짚어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음반 북클릿에 담긴 상세하고 친절한 소개가 충분히 담겨있고, 또 거기에 더 다른 설명을 덧붙일 재주도 없어서 전체적인 느낌만 추린다.

Kath Bloom의 포크음악은 블루스, 록, 재즈, R&B 등으로 변신했다. 허나 원 음반 속의 Kath Bloom은 자기 안에 이미 품고 있던 음악이 각색의 꽃을 피운 듯 본래의 색채를 잘 살렸다. 듣다 보면 태어나 곳은 다르지만, 대중음악의 생태적인 뿌리를 이룬 각기 다른 세계의 포크가 아메리칸 포크를 자기 언어로 소화해내는 느낌을 받는다.

편곡과 악기 편성이 어쿠스틱을 중심으로 한 것이 한 몫 하며, Kath Bloom과는 다르면서도 울림 그득한 목소리들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진 가수들의 매력도 절묘한 매력을 Kath Bloom을 만들어낸다.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중심으로 현대적인 디지털 사운드를 아주 조금씩 적절하게 배치한 편곡의 공통된 경향을 들으면서 인디 뮤지션들이 주목하는 음악의 방식을 기쁘게 발견하는 것도 기쁜 일이다.

 앞 서 Cath Bloom의 소리로 들었던 "Come Here"를 CD1의 16번에 담긴 The Concretes의 곡으로 들어보자.

 

 

많은 사람들에게 창조적인 영감을 주는 음악인들은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는 별처럼 느껴진다; FONT-FAMILY: 나눔고딕,돋움">Kath Bloom을 신화로 표현한 것을 지나치다고 말하긴 어렵다. 허나 그 많은 빛나는 천재들은 한 편 '그 시대'가 만들기도 할 것이다.

60년대 말 70년대 초를 통과하는 격변의 시대, 포크가 대중음악의 큰 흐름이 되고 세계의 언어로 번져가던 시대에 태어난 가수 Kath bloom. 풍부한 음악적 자양 속에 태어난 Kath Bloom은 한편으로는 행복한 음악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개성이 살아나기 보다는 무수한 음악적 장르와 다변화된 미디어 속에서 자신만의 음악색을 찾고 내보일 기회를 못 찾아 힘들어 하는 요즘의 음악인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허나 CD1에서 Kath Bloom을 노래한 많은 음악인들을 이리도 또렷한 개성과 풍부함으로 노래하는 음악인 이라면, Kath Bloom은 분명 '오래된 미래'처럼 빛나는 포크의 또렷한 아이콘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본다. 

듣는 순간에도 듣고 나서도 끊임없이 되새김 되는 소중한 음악과 연주를 만나게 해 준 이 음반이 무척 고맙다.

KathBloom, 파스텔뮤직

1818년에 태어나 1883에 생을 마감했다. 사후 백삼십년이 지났다. 인간을 비인간화 하는 자본주의를 넘어선 세상에 대한 깊은 갈구, 현실의 자본주의에 대한 주도면밀하며 과학적인 분석,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동력에 대한 관심과 격려... 불가항력적으로 다가드는 세계의 소용돌이에서 인간적인 세상을 이렇게 치열하게 꿈 군 사람이 있을까? 

청년의 시절 마르크스는 “사회 개혁은 절대 강한 자들이 약해짐으로써 이루어지지 않는다. 늘 약한 자들이 강해짐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역설했다. 약한 자가 강해지는 것으로 인간다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그의 성찰에 동의한다. 
푸른숲의 <마르크스 평전>은 거칠거칠한 마르크스의 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예니와 가족에 대한 사랑, 가난과 정치적 탄압에서 느끼는 고통, 분노, 때로는 인간적인 욕망에 굴복하기도 하는 그의 모습은 성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허나 오히려 그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그가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벌였던 고투와, 지독하게 파고드는 사회와 선행 철학 경제학 등에 대한 탐구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마르크스 평전>은 두께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나는 두 가지에 착목한다. 그가 가진 인간애, 인간애에 뿌리를 둔 집요한 성찰과 탐구가 그것이다. 자신의 ’이’를 중심에 두지 않고, 좋은 미래를 만들어갈 꿈을 만인이 꾸는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일깨움이다. 

약자에 대한 과학적이며 실천적인 사랑
마르크스는 사회를 바꾸려는 운동가에는 “새로운 방향을 분명히 가리키는 변경의 초소와 같은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즉 현재를 품는 시대를 넘어서 다른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전제로 미래의 방향을 밝혀야 한다는 이야기다.

단지 현재를 잘 살아내고, 그의 성과로 탐스러운 미래를 얻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날을 세운 경계병의 긴장으로 시대를 읽어내려는 노력을 운동가의 전제로 삼았다. 또 그의 좌우명을 ‘모든 것은 의심해보아야 한다.’로 꼽았다.

왜 그는 일생을 가난과 가난으로 가족을 잃는 고통을 감당하면서도 자신과 운동가에게 거칫하고 ‘날 선’ 자세를 엄격하게 요구했을까? 
청년기 그가 루소나 스피노자에 심취했던 시간들과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그의 아버지에게 개인 수업을 받으면서 골몰한 문제는 바로 인간이었다. 인간의 본성, 인간의 자유, 인간의 권리를 어떻게 하면 실제 사회에서 구현할까에 골몰했다. 그에 앞서서 철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이 펼쳐놓은 이상을 꼼꼼히 점검한다. 선행 학자들의 유산을 검토하는 그의 기준은 하나였다.

‘공산주의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이는 상당히 과학적인 검토기준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천적인 인간애인가? 그렇지 않은가’, ‘소외되는 사람 없이 없겠는가? 그 사회나 제도에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겠는가?“하는 문제였다. 즉 검토의 기준에 늘 사람을 두었다. 나는 이 점을 마르크스가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을 품었기 때문으로 본다.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문제는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 포이에르 바하를 존경하여, 그를 이야기할 때는 늘 존경의 찬사를 붙인 마르크스지만, 포이에르 바하를 비판하는 글에서는 “세계를 바꾸지 못하는 해석”의 한계를 날 세워 비판했다.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를 마르크스는 가장 좋아하는 경구라고 밝혔다. 자신과 변화하려는 세계,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늘 염두에 두는 것,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세상의 문제에 일치시켜 내는 깊은 사랑은 그의 사유와 실천의 밑거름이 됐다.

선행 철학, 정치경제학에 대한 깊은 학습과 현실에 대한 과학적 고찰

“인간의 모든 감각과 속성의 완전한 해방이 필요하다. 오직 인간 본성이라는 부가 객관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통해서만 주관적인 인간적 감수성이라는 부 ... 음악을 듣는 귀, 형태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 간단히 말해서 인간적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감각들...가 계발되거나 창조될 수 있다. 공산주의만이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기 위해 사유하고 실천했다.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 적용 가능한지, 현실을 제대로 해석했는지, 허점이 있는지를 살피는 ‘실사구시’는 그의 연구과정에 일관된 태도로 나타난다.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선행 연구성과를 학습하고, 그에 대한 비판을 정리했던 것, 스스로 사상의 체계를 정돈하고 방법을 정리하는 과정을 늘 실천과 결부시켰다. 스피노자의 철학을 연구하는 과정에 꼼꼼히 정리해 놓은 스피노자에 관한 노트가 십 여 권에 달할 정도로 많은 것도, 역사적 유물론의 근거가 되어 준 포이에르 바하에 대한 극진한 존경, 경제학 비판과 ‘자본론’ 집필에 매달리는 집요한 정신 노동은 늘 타협을 몰랐던 점들도 그 연장선에 있다.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것은 그의 정신노동의 이유였다.

공산주의자협회에서, 인터내셔널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회주의, 무정부주의와 한치의 타협도 허락하지 않은 것은 마르크스를 괴팍한 사람으로 공격받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라살레주의와 극한의 대립을 할 때에는 라살레와의 변별점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을 경계해서 청탁 받은 원고를 거부하기도 한다. 라살레와 같은 시각으로 보는 현안문제를 다룬 글이었고, 라살레도 그 잡지에 기고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같은 잡지에 같은 시각의 글이 나란히 오를 경우, 대중들에게 마르크스가 라살레와 입장을 같이 한다는 인상을 줄 것을 우려해서다.

당시 노동운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영국의 노동운동의 사활이 마르크스에게 얼마나 구체적인 이해관계로 작용했는지를 확인하는 대목이다.

21세기는 마르크스의 시대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과제를 내밀고 있다. 허나 19세기든, 21세기든 미래를 바라보며, 더 나은 사회를 꿈 꾸는 것은 언제나 유효하다. 때문에 150년이 지난 마르크스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은 여전히 새로운 성찰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