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에는, 그러니까 초등학교 시절까지만해도 달리기를 좋아했었다.  걷는것 보다는 힘차게 달리는 것을 더 즐겼던 아이.  그것이 나의 모습이었지만, 현재는...조금만 걸어도 지친다며, 투정을 부리곤 한다. 내가, 정확히는 내 몸이,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미 무뎌질대로 무뎌져버린것이다. 아니..무거워 진건가?  그래도 기억 속에는 달리기에 대한, 달렸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상쾌함이 각인되어 있다.  목이 마른듯하면서도, 아니 타는듯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시원한 기분.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왠지 모르게 웃게되는 그 기분을.

 한 동안 그 즐거움을, 달리면서 느낄 수 있는 그 즐거움을 잊고 있었는데..이 책을 읽으면서  되살아났다.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제목 자체가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비록 처음 책을 받아들고서는 3권이라는 숫자와 그 무게감에 약간의 부담을 느끼긴했지만..막상 읽기 시작해서는 언제 1권을 다 읽었는지 모르게 2권으로, 그리고 또 언제인지 모르는 사이에 3권으로 넘어갔다. 책이 1권에서 2권으로 마지막으로 3권으로 바뀌어가면서 자꾸만 나도 모르게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곤했다. 책을 읽는 시간이 대부분이 새벽이었는데..새벽에, 찬 공기를 마시며 달리면 기분이 얼마나 상쾌할까....나도 신지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들곤 했던 것이다.

 주인공 신지는 원래는 달리기가 아닌 축구를 했던 아이였다. 우상과 같은 형을 바라보면서 죽어라 연습하고, 언젠가는 자신도 형과 같이 될 수 있다 생각했던 아이. 그러나 그 한계점을 느끼곤 축구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어릴적부터 친구였던 렌과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함께 운동부, 그것도 육상부에 가입하게 된다. 렌은 이미 중학교 때부터 육상에서 이름을 날리던 선수였다. 그러나 단순한 이유로 육상을 중단했었고, 신지가 그런 렌을 부추기면서 렌과 함께 육상부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달리기와 축구. 서로 다른 운동을 했었기에 라이벌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렌과 신지. 함께 달리기를 하게 되면서 서로를 더욱 아껴주고, 서로를 더욱 부채질하게 된다. 둘은 물론 렌과 신지는 육상부 선배들, 동기들, 후배들과 미짱(육상부 담임 선생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체력도, 달리기 실력도, 정신력도 성장하게 된다.

 주인공 신지는 육상부에 가입하기 전에도, 가입 후에도 역시나 평범한 소년이었다. 단지 달리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다를뿐. 그런 아이의 성장 이야기를 3권이라는 길이로 풀어썼다는 점에서 놀랍기도 하지만, 이 단순하고 긴 이야기가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점이 더욱 놀라웠다. 육상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내가 보기에도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  그저 마치 내가 함께 달리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마치 함께 달려야할 것만 같은 생각이 종종 들었을 뿐이다.

   최근에는 달려본 기억이 거의 없기에, 책을 읽으면서 초등학교 운동장을 생각했다.  운동회가 한참이고, 드디어 마지막이자 운동회의 최고 인기 종목이었던 이어달리기. 청팀과 백팀으로 나누어, 달리는 선수들을 목이 터져라 부르며 응원했던 기억. 비록 몸은 응원석에 앉아 응원을 하고는 있으나 , 정신만은 함께 달리고 있었던 그때의 기억.

  책장을 덮은지는 조금 됐는데, 그래서 읽으면서 느꼈던 흥분이나 희열이 조금은 가라앉을 만도 하거늘...서평을 쓰면서 또 되살아나 버렸다. 신지가 기록을 갱신했을 때, 센바를 앞질렀을 때, 모든 힘을 쏟아버리고 쓰러졌을 때...그 모든 순간이 휘리릭 머리속으로 들어와버려서 나도 모르게 재생이 된 것이다.

 마치 한 순간 바람이 되어 달리는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 함께 뛰는 것처럼, 함께 연습하는 것처럼 숨가쁘고, 힘들고, 재밌었던 한편의 성장 이야기였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는 "염쟁이? 염쟁이?" 싶었다. 염쟁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 말이 어떤 직업을 말하는지 단번에 알 수 없었다. 그만큼 요즘은익숙한 직업명이 아니라는 것.  죽은 사람을 다룬다하여 예로부터 높게 보기보다는 천하게 여겼으며, 이제는 꼭 필요한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잊혀져가고 있는 직업. 그런데 그러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소재로 쓰여진 책이 있다. 게다가 현재 극장에서 동일 소재의 연극이 상영중이다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이 가는 책이었다.

   이 책은 그 염쟁이라는 직업을 60년이라는 시간동안 계속해왔고, 마지막 염을 앞두고 있는 염쟁이 유씨가 어느 기자의 취재에 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사를 취재하는 기자는 취재 직전에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이었다.  처음 시작이 이렇게 아이러니 한 것처럼 책 속에 등장하는, 정확하게는 유씨가 들려주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 속에는 아이러니한 죽음이 많았다. 아이러니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건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집을 나감으로 인해 결국 조폭이 되었으나, 마지막에는 어머니로 인해 목숨을 잃게된 남자, 새아버지를 살해하게 된 남자친구와 동반 자살을 시도했으나 자신만 살아남은 여자, 어머니의 수술비로 결혼식을 치른 여자, 한 날 한시에 생을 마감했으나 일년이라는 공백 기간이 필요했던 원앙부부의 이야기...정말 여러 가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은 멋지게 죽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 속에서 유씨가 비슷한 말을 하기도 했고..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죽음의 모습이 각각 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본의 아니게 찾아오는 허무한 죽음도 있다지만...

 솔직히 책 속에 등장하는 죽음 이야기 중에는 조금은 상투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그런데 상투적이다라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기도 했다.    어짜피 삶이란 것이,  죽음이란 것이 하나의 선이 될 수도 원이 될수도 있는거니까..;; 

  책을 읽은 후에 찾아보니 현재 극장에서 상영중인 연극이 매우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책의 내용을 보고 생각하길 누군가가, 그것도 책 속의 유씨 아저씨 같은 이미지의  누군가가 내 눈앞에서 여러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실제로 펼쳐진다면 좀 더 죽음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오래오래 생각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연극이 문득 보고 싶어졌다. 눈 앞에서 유씨 아저씨에게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져서..  

  눈에 보이지 않고, 가까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기에 늘 잊고 있는 죽음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그 후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한 동안 책을 보지 않고 있었다. 책 외에도 재밌는 것이 많았고, 신기한 것이 많았기 때문일까?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다시 책을 보게 되었는데, 그 시작이 일본 소설책이었다. 그리고 그 후론 접하는 책의 70%가 일본 소설책이 되었다.  아마도 가네시로 가즈키가 그 시작이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에 접한 일본 문학에는 기존에 한국 문학에서는 보지 못했던 독특한 특징이 있었다. 독특하다라고 하기보다는 톡톡 튄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하는데, 책 속에 등장하는 등장 인물들이 하나 같이 톡톡 튀고, 멋져서 책속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바로 내 곁에서 등장 인물과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했었다는...그 독특함이 좋아 이제 편식을 그쳐야한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도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확신할 수는 없지만, 시라이시 가즈후미의 얼마만큼의 애정이란 책이 내게 있어서는 일본 소설책에 대한 선입견이라 할 수 있는 인식을 조금 벗겨낼 수 있는 책이 아닌가 한다.

   재미있고, 톡톡 튀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책을 주로 읽고, 좋아하던 내게 시라이시 가즈후미의 얼마만큼의 애정은 조금 낯설었다. 초반에는...

   이미 5년이란 시간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를 완벽히 잊어버리지 못하고, 현실에서 다른 돌파구를 찾아 열심히 살아가던 마사히라. 그녀와 헤어진 후 자신의 사업은 번창하지만, 정작 본인의 마음속은 여전히 허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걸려온 그녀의 전화.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이 100번이라는, 그걸 기념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는..여전히 그녀를 잊지 못하던 마사히라에게 있어서  그 새벽에 걸려온 그녀의 전화는 그녀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 후에 마사히라는 그녀를 찾아가게 되고, 마침 병원에 있던 그녀를 돌보게 됨으로써 5년 만에 다시 그녀와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5년 전 헤어짐에 있어 그가 몰랐던 또 다른 이유가 , 아주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솔직히 초반에는 잔잔하다 못해 조금 지루한감이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아프다는 것을 마사히라가 알게되었을 때는, 내심 "이거..완전 뻔한 스토리 아냐?" 싶었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인지....;; 그런데 사실이 아닌 진실이 드러났을 때, 마음 속에서 뭔가 잔잔한 파도가 이는 듯했고..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했다.

  한 동안 추리 소설만 지속적으로 봐오다가 이렇게 잔잔한 내용의 책을 읽게 되니까 왠지 모르게 가슴 속이 먹먹하면서도 따뜻해지는 듯 했다. 이 가을에 읽기에 정말 좋은 책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