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전쟁"의 모습은 참혹 그 자체이다. 사방에 총을 들고 서있는 군인들이 깔리고 머리 위로는 위협적인 소리를 내면서 비행기들이 지나다니고..건물들은 비참한 모습으로 무너져버리고...사망자와 사상자가 속출하는 모습..고통으로 소리치는 사람들...이는 적어도 나만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전쟁의 모습이 아닐것이다. 일반사람들이 전쟁하면 바로 떠올리는 장면일테니까..

 처음에 "이웃 마을 전쟁"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전쟁의 모습을 떠올렸었다. 표지에는 마치 예전에 유행했던 졸라맨같은 캐릭터들이 총을 들고 있고, 탱크들이 등장하고..그래서 정말 그럴 줄 알았는데..

  주인공 기타하라 슈지는 그야말로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어느날 우편함에서 "홍보 마이사카"를 보기 전까진. 알림란에는 아주 작게 "이웃 마을과의 전쟁에 대한 알림"이라고 하여 전쟁에 관한 글이 실려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타하라 슈지는 그저 자신의 출근길이 전쟁으로 인해 막히진 않을까하고 고민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곧 그는 전시 특별 정찰 업무에 임명 되었고, 임무 수행을 위해  전쟁 담당팀에 있는 고사이라는 공무원과 형식적으로 결혼을 하여 함께 생활하게 된다. 둘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옆 마을로 이사하여 부부 생활을 하면서 정찰 업무를 맡게 되는데, 이때가 되어서야 전쟁의 모습이 서서히 기타하라 슈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선명하지 않고, 마치 안개가 낀 것 처럼 흐릿하다. 그렇게 전쟁은 여전히 보이지 않게 계속 된다.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다. 대체 여기서 말하는 전쟁이란 어떤 전쟁이란 말인가? 흔히 말하는 정보를 두고 벌어지는 전쟁? 혹은 지자체의 예산을 둘러싼 전쟁? 공무원들이 앞다퉈 나서서 벌이는 전쟁. 그 속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희생자가 나오기도 했다. 그들은 새로이 적용된 규칙에 의해 총살까지 당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쟁의 참상이라 말 할 수 있는 장면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대체 작가는 왜 이런 내용의 전쟁 이야기를 썼을까?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간혹 현실 속에서 자신의 앞날만을 생각하며 주변의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일반인들을 비꼬자는 것인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소리 없이, 보여지는 것 없이 치뤄지고 있는 이웃 마을 간의 전쟁.  왠지 모르게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라도 아직 전쟁 중이였지..읽으면서는 도통...대체 어디가 전쟁의 모습이라는 거야?라는 의문이 가득했지만 읽고 나서 조용히 되새김질해보면..왠지 자꾸만 이것저것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가을  바람 덕에 그런지 몰라도 왠지 모르게 스산하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 괜스레 사랑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특히나 조금은 슬픈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들이.

 많은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츠지 히토나리라는 작가는 내게 있어 이런 계절에 딱 어울리만한 이미지를 가진 작가였다.  냉정과 열정사이, 사랑 후에 오는 것들..밖에 읽어 보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그 전편의 책들을 통해 갖게 된 이미지를 어느 정도 떠올리면서 "안녕, 언젠가"를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잔잔하고, 조금은 따스한 책이겠지하고 기대하면서..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은? 조금이라는 정도를 어느정도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츠지 히토나리의 책들이 그 전까지 굉장히 잔잔한 냇가의 이미지 였다면, 물이 불어나서 조금은 격해졌다고 할까 ? 처음엔 당황스런면이 있었지만, 어느 새 그러한 마음이 싹 사라지고 책에 집중하게 되었다.

 호청년이라 불리며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청년 유타카. 그는 자신의 결혼 발표를 하는 술자리에서 토우코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자신과 결혼을 앞둔 여자, 미츠코로 온 머리 속이 가득했던 유타카였기에 도발적인 매력이 가득한 토우코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일주일 후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갑작스럽게 옷을 벗는 토우코의 매력에 넘어가 그녀와 하루 밤을 보내게 된다. 뒤 늦게 후회를 하지만, 결혼 전에 잠깐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위험한 관계를 지속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유타카는 자신의 미래가 흔들릴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토우코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미래가 달린 결혼이 깨질수도 있고, 그는 곧 자신의 인생에 커다란 오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토우코를 사랑하고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더욱 염려하던 유타카는 결국 토우코와 이별하고 미츠코와 결혼식을 올린다. 토우코와 사랑한 시간은 겨우 4개월. 그러나 그 4개월의 시간이 25년을 거슬러 올라간 후에도 유타카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로 자리잡을 줄이야...

 책의 초반에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묻는다. 당신은 죽음의 순간, 사랑받았던 기억을 떠올린 것인가 혹은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릴 것인가. 처음 이 질문을 접했을 적엔 그저 책 속에 등장하는 가벼운 질문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인물들의 이야기가 깊어질 수록, 왠지 모르게 나 스스로가 자꾸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은 죽음을 생각하기엔 너무나 젊은 나이. 그래서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었는데..책을 읽으면서, 토우카와 유타가의 삶을 보면서, 그들의 사랑을 보면서...나는 과연 마지막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 사랑 받았던 기억? 아니면,,나 역시 사랑 했던 기억?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아직 확신 할 수는 없지만..왠지 나 또한 사랑 받았던 기억보다는 내가 사랑했던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그리고 오래 토록 기억하고, 또 되새김질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 언젠가를 읽으면서 츠지 히토나리라는 작가가 다른 이미지로 다가왔다. 또한 여러 색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든지 탈바꿈을 할 수 있는 작가들을 단순히 몇 편의 책으로 평가하고, 그 고유의 이미지를 가져서는 절대로 안되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되었다.

  잔잔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그 역시 무한할만큼 넓디 넓은 품을 가진, 그리고 여러 색을 지닌 작가였던 것이다.  

   김진명씨의 책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을 때 만해도 정말 굉장하다는 생각을 했던 작가였다.읽으면 읽을수록 왠지 역사의 숨겨진 뒷면을 보는 듯하고, 책 속의 모든 내용이 진실인듯 하고, 게다가...은근 진실이길 바라기도 했었고... 읽고 나면 애국심이 불끈 솟아나는 듯한 김진명씨의 책들. 나중에야 그가 역사를 빌미로 책을 팔아먹고 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물론 이제는 그 비난에 대해서 나 스스로도 어느 정도 공감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그의 신작에 저절로 손이 간다. 그의 책들은..어쩔수 없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전혀 다른 작가의 서평을 쓰면서 김진명씨의 이야기를 먼저 꺼낸 이유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자꾸만 책 속에서 김진명씨의 책들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역사소설이라 그런가...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왠지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무언가가 있었다.

 여우사냥이라 불린 민비 시해 사건. 한 나라의 국모를 처참히 살해한 정말 이해할래야 할 수 없는 사건의 이면에는 일본이 노리고 있는 또 다른 비밀이 있었다.  일본과 중국은 각각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우리나라의 네 가문은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여섯 사내가 배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여섯 사내가 자결을 함으로써 그 비밀은 지켜지는 듯 했으나, 세월이 흘로 또 다시 그 비밀이라는 것이 일본과 중국에 의해 위협을 당한다.

주인공 대건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신이 그 비밀과 관련된 집안의 자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비밀로 인해 자신과 남은 가족의 목숨이 위협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때 "저쪽"사람들이 대건에게 접촉해 온다. 그들은 대건의 남은 가족들을 보호해주고, 대건과 함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다.

 책의 시작은 너무나 비극적이고, 자극적이다.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작부터 열을 내고, 화가 나는 이야기. 바로 민비 시해 사건. 그 과정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는 것이다. 시작이 강렬한 책들은 책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주는 장점이 있어서 좋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시작이 너무 강렬하다 보면 그 후가 조금은 시시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초아"의 경우 시작이 끝에 비해서 너무나도 강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가서는 "어라? 이게 끝이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풍선으로 비유를 들자면 팽팽하게 터질듯이 부풀었던 풍선이 갑자기 김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크기가 순식간에 줄어드는 듯하다고나 할까?

  마지막에 가서 조금 많이 아쉬움이 남는 역사 소설이었다. 팩션이란 장르에 한 획을 그을 정도라는 소개글을 읽었는데...조금 부족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