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알파벳을 배웠고, 알파벳을 끝내기 무섭게 이것저것 어려운      문법에 대해서 암기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서 그 숲의 크기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여행길에 오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도나 함께 할 여행자 한 명 조차 없이..때문에 그때도 그렇지만, 아직까지도...영어란, 그 중에서도 문법 영역은 내게는 너무나도 어려워 범접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영어를 배웠다고 할 수 있는 기간이 10년도 훌쩍 넘었것만.. 여전히 외국인이 말을 걸어오면 순간 몸의 모든 신경이 굳어버리는 듯 하다.  그래서 내 자신이 부끄럽다 여기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혼자서 혹은 학원 강사분의 도움을 받아 문법과 친해지려고 노력을 했지만 역시나..무리였다.

  누군가 나에게 영어를 어느 정도나 하느냐고 물으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초등학생 수준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 처음 초등학생을 위한 가장 재미있는 문법책이라는 글귀를 봤을 때 "오호~"하는 생각에 문법 책 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확 들어왔다. 만화로 설명을 해주고 있으니 조금은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이 스물도 훌쩍 넘은 내가..초등학생들을 위한 문법책에 넘어가다니...;;  조금은 쓰라린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책의 구조는 말그대로 주인공의 여행이야기이다. 다만 그 여행이 카툰형식으로 되어 있고,  책의 밑 부분에 영화 대화에 대한 해석이 달려있고, 그에 따른 문법이 조금조금씩 소개되어 있다. 처음에는 만화로 된 문법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책을 읽을 대상은 초등학생인데...요즘 아이들이야 아주 어렸을 적부터 영어를 접하는지라 초등학생들의 수준이 어느정도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조금 어렵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기라기 보다는..뭔가 너무 많이 생략되어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기초적인 수준의 문법 설명이니 너무 자세한 것은 피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지만...마치 영어 문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그저 정리를 하는 마음으로 아주 가볍게 읽기에 괜찮은 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그리고 책의 주인공인 솔리..요즘 아이들의 가장 좋아한다는 캐릭터가 "뽀로로"로 알고 있는데 그 "뽀로로"와는 거리가 상당히 있는 캐릭터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인지는..조금 의문이 들기도 했다.

  기대만큼 기초 문법을 재미있고, 효율적으로 가르쳐주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정리를 하려는 마음으로 보기에는 좋은 책인것 같다.

  바우와우를 연상케하는 멍멍이가 조금은 무서운 눈을 하고 한 가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표지를 처음 봤을 때 무언가 독특한 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멍멍이 목에 가느다란 줄을 채우고, 그 줄의 끝은...주인인 듯한 남자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멍멍이와 마찬가지로 남자의 목에 걸려있다. 두 손으론 망원경을 들고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집을 바라보고 있고..남자는 정장을 입은 당당한 모습이 아니라 각종 조리기구를 주머니에 넣은 앞치마를 하고 있다. 슬리퍼는 토끼 모양인듯하고..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책을 읽고 나니 왠지 표지 한 장으로 이 책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대부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주인공 마티는 표지의 남자처럼 전업 주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내와 사랑스런 딸이 있었으나 무심결에 나간 주먹 한 방으로 모두 잃게 되었다. 평소에는 전혀 그렇게 폭력적인 성격이 아니었던 그였으나, 아내가 자신의 신경을 거스르는 말을 계속하자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나가 버린 것이다. 이에 아내는 딸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다. 얼마 후 이혼 신청까지 하였다. 처음엔 이 사태를 이해하지 못한 그였으나 점차 그것이 현실이며 아내와 딸을 다신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심 끝에 아내와 딸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었다. 그것은 그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윗집과 아랫집이 붙어 있는 듯한 답답한 아파트가 아니가 그의 아내가 늘 그에게 꿈 꾸듯이 말했던 단독 주택을 마련하는 것! 그렇게 하면 아내와 딸이 자신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게 된 마크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 작전에 돌입한다.        

 마크는 분명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너무나도 평범한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집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블랙 유머는 웃음이 나기 보다는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그가 현실에서 존재하기에는 조금 엉뚱한 인물이었다면 조금 더 웃기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책 속의 마크란 인물은...그야말로 "평범"그 자체였다. 자신의 주먹 한 방에 일이 그렇게 꼬일줄도 모르고, 꼬인 직후에도 일이 꼬였다는 것 조차 바로 인식하지 못할 만큼...그런 그가 가족을 되찾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눈물을 머금고 에로 마시지를 하고..아버지뻘 되는 노인을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마치 멍멍이가 영역 표시를 하듯 남의 잔디 밭에 오줌을 누고 도망을 가고..

  처음에는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멋져 보였으나 왠지 점점 그가 변해가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반전아닌 반전이 일어나고..나의 불안한 예상이 적중을 했다. 집을 갖고 싶다고, 꼭 갖고 말겠다는 그의 욕심 아닌 욕심이 점점 평범했던 그를 변화시켰다.

 그는 단순히 집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집안에서 자신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갈 딸 아이의 모습을 보고 싶었고, 그 곁에서 함께 웃고 있을 아내를 생각했던 것이다. 누구나 꿈꾸고 있는 삶을 마크 자신도 꿈꾸었을 뿐인데..그 꿈이 너무나도 무겁게 그를 짓눌렀던 것일까?

  주인공인 마크 뿐만 아니라 책 속에 등장하는 이웃 주민이라든지, 부동산 중개인, 집 주인 등의 여러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이 조금 독특하다 싶었지만 여러 모로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우연히 못 볼(?)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동생과 함께 슈퍼에 가는데, 밑에 동에 사시는 아저씨께서 담배를 피고 계시는 모습이었다. 문제는...그 분의 옷차림새. 샤워 직전이셨는지 혹은 그 이후셨는지 상당히 간편한 옷차림이었던 것이다. 생각지않게 그 아저씨 덕으로 아파트에 이사 온 직후에 아파트의 무서움을 바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거실에 있을 때면 왠지 모르게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곤 한다. 그럴일은 없겠지만, 만약이란 단어는 무시할 수 없으니까.. 

 개를 돌봐줘는 이런 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책이었다.  첫 페이지는 상당히 자극적으로 시작이 되지만, 본격적인 내용은 우연히 마주편 아파트에 살게 된 두 인물이 서로를 변태 관음증 환자로 오해하면서 펼쳐진다.                                                                                                  

  주요 인물은 라디오 작가인 코른누르와 계란 세밀화가 플뤼슈. 이 둘은 서로 마주편 아파트에 살면서 상대방이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오해가 깊어져 결국엔 아주 치졸한 방법으로 상대방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다른 입주자의 소중한 개가 살해(?)당하게 되고, 개의 주인은 범인을 잡겠다며 난리를 친다.  그 사건이 거의 잊혀져갈쯤엔, 그 개의 주인이 숨진 채 발견된다. 경찰은 일단 자살로 판정하지만, 아파트 입주자들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가고, 서로에 대한 불신 또한 커져간다. 이쯤되어, 코른누르와 플뤼슈는 상대방에 대한 짜증이 극에 달하고, 사건으로 인한 불안감도 커져서 결판을 짓기로 다짐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 예기치 않은 사건이 또 터지는데.....

 솔직히 이 책은 길게 말하기 보다는 그저 유쾌하고, 신선했다고만 말하고 싶다. 일단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가 개성만점이었다. 잘 팔리지는 않지만 자신이 라디오 작가라는 점에 나름 뿌듯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코른누르(당신의 속마음을 표현한 괄호 안의 외침은 정말 유쾌했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계란 세밀화가 플뤼슈(초반엔 잘 몰아치는 듯 했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솔직히 아쉬움이 아주 커~!!), 노익장을 불살랐던 에로 소설가 아저씨(아니, 할아버지라고 해야 하나?), 학교에서조차 무서워해서 급진급을 시켜줬던 꼬맹이(언뜻 언뜻 너의 말과 행동 속에서 천재성을 느꼈다면..내가 이상한 걸까??), 그 꼬맹이의 어머니(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아이의 천재적인 면은 인정을 좀 해주시지...;;), 쥐를 무지하게 사랑하는 그 사람(왜 하필 쥐였을까? 좀 더 귀엽고, 작은 동물들도 많은데..;;), 마지막으로 죽은 어머니에게 끝없이 편지를 쓰는 그 여인(그러게..살아생전에 잘 모시지요..;;)... 

 등장 인물 하나하나의 캐릭터가 상당히 강하고 인상적이었으며, 그 조합이 잘 이루어져있었다. 통통 튀는 인물들이 이렇게 많으면 뭔가 조잡한 느낌이 들법도 한 것을..거의 완벽하다 말 할 수 있는 조합. 그 조합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 또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기본적으로는 등장 인물의 일기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그 외에도 상당히 다양한 방법이 적용되었다.  편지에, 이메일에..때로는 뜬금없는 작가의 개입까지..역시나....그 다양한 방법들의 조합 또한 좋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작가분께서 직접 개입하셨을때는..처음엔 "으잉?"싶었는데, 오래 가지 않아 "오호~"싶었다.

 프랑스 작가의 글은 아주 오랜만에 읽었는데, 무척이나 신선하고 유쾌했다.                                  J. M. 에르!!!! 왠지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