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위의 두 작가 그리고 두 권의 책은 모두 두 번 이상의 도전 끝에 모두 실패를 한 책들이다. 이 두 권은 모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책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도했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책들이었다. 너무나 심오하고, 도통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다는.. 독서 편식이 심한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책을 좋아한다라고 말 하는 편이기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책들을 그래도 한 권은 좀 완독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읽기 시작했었던 책이었는데, 너무나도 커다란 벽 앞에 고개를 푹하고 숙이게 되었던 것이다.
조금 엉뚱한 비유일지 모르겠으나 영화들 중에서도 커다란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예술 영화의 경우,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가 무척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상품성과 예술성을 골고루 갖추기엔 무리가 따르기 때문일까..책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노벨 문학상 수상작의 경우, 내게는 멀게만 느껴지곤 했었다. 아주 오래된 고전을 읽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최근에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책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고, 베스트 셀러의 목록에도 지속적으로 올라와있는 걸 보았다.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 그리고 이 책,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마치 하나의 시리즈 같은 책들이 연달아 보이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알고 있는 책들 중 가장 최근에 나온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주인공인 주제씨. 그는 등기소에 근무하면서 매일매일 동일한 업무를 반복한다. 때론 유명인의 때론 낯선이의 삶과 죽음을 기록하는 임무. 충분히 무료함을 느낄 수 있는 일을 반복하던 도중 유명인의 서류를 불법적으로 기록하는 일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않은 낯선 여인의 서류를 집으로 가져오게 된다. 처음엔 다시 등기소에 곧바로 가져다 놓으려했으나 점차 자신도 모르게 그 낯선 여인에게, 여인의 삶에 호기심이 일기 시작한다. 그리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평상시의 그라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모험을 시작한다.
처음엔 낯선 여인을 서류상으로 알게 된 후 주제씨가 갖게되는 그녀를 향한 무한한 호기심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단순히 궁금해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찾기 위해, 등기소의 일을 소홀히 하고, 거짓말을 하고, 난생처음 도둑질에 가까운 짓을 하기까지 하고..그점은 주제씨 또한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된다. 왜, 대체 왜?? 라는 물음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솔직히 책을 덮은 후에도 100% 이해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저 지레 짐작으로만..그리고 어느 정도의 이해라고나 할까??
주제씨의 삶은 굉장히 무료했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등기도 옆에 딸린 조그만 집에 홀로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똑같은 사람들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삶. 그런 그에게 서류 상으로 다가온 그녀는 그에게 있어 일종의 오아시스가 아니었을까. 무료함에서 벗어나고픈 주제씨의 욕망이 그런식으로 표현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에 주제씨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그를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물론 말도 안되지만...
절대 재밌거나,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는 책은 아니었다. 역시나..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답다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심하게 지루하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마치 오에 겐자부로의 체인지링 같다고나 할까? 은은한 매력을 풍기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