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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달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혼자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적응이 안되는지 매일 밤을 메신저에 로긴하여 지난 사람들과 지난 이야기들로 채워나간다. 외롭다는 말들로 메우기에는 아쉽기만 한 시간들이라 라디오도 함께 들어가며 전에는 잘 나누지 않았던 분야의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그러다 참 좋았던 책 두권을 말씀해주시곤 이참에 선물을 해야겠다며 곧 회사로 택배를 보내왔다. 그게 바로 하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나머지 하나가 바로 이책 <고래>이다.
몇 해 전 허구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좀 알아야겠다 생각하곤 소설을 한참 읽지 않았다. 대신 경제, 과학, 인간관계, 교육에 관한 책들을 분야에 관계없이 읽으려 노력했다. 원체 책 읽는 습관이 들여지지 않아 한권을 다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 것으로 만드는데 만족하며 그렇게 또다른 분야의 책들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오랜만에 잡게 된 소설책 <고래>. 역시 처음 들어보는 소설가였다. 선물해주시면서도 자기 취향에 맞춰준 거라 내 취향엔 맞지 않을 수 있다며 판타지적인 요소도 있다고 그저 이런 책도 있구나 하며 보라고 주셨는데 실제 샤프펜을 손에 들고 있는 시간보다는 다음 책장을 넘길 준비를 하는 내 손가락이 신나기만 했다.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지인이 읽고 좋다고 하는 책이니 더 좋았고 실제 읽으니 재미가 있어 더욱 좋았고.
이야기는 춘희라는 막 교도소에서 출소한 여자에게서 시작하여 중간중간 국밥집 노파이야기, 춘희의 엄마 금복의 이야기가 섞여있다. 구성이 심난하다거나 하지 않고 또한 어느 이야기 하나 재미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다소 외설적인 부분이 많지만 가볍고 재미있게 묘사되어 보는 내내 신파극이나 마당놀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욕이 섞여있어 옮기면서도 민망하지만 그래도 정말 웃겼던 한 부분이라 이렇게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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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미사일론에 대한 반박이 뒤따랐다.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은 노파가 어떻게 미사일을 아느냐는 거였다. 귀신이기 때문에 모르는 게 없다는 해명에 대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라는 반박이 나왔으며, 뒤이어 어따 대고 선배 앞에서 그따위 개소리를 하느냐는 성명이 발표되자, 너 대학 어디 나왔냐는 질문이 나왔고, 이 씹쌔야, 어딜 나온 게 무슨 상관이냐는 반론이 제기되자, 저 새끼, 싸가지 없는 건 학교 다닐 때부터 알아봤다는 인물평과, 저 새끼는 학계에서 완전히 매장시켜버려야 된다는 매장론이 뒤따랐으며, 선배 무시하다 뒈지게 맞고 피똥 싼 놈 많다는 협박과, 누군 씹할, 고스톱 쳐서 학위 딴지 아냐는 고스톱 학위론, 그럼 씹쌕꺄, 미사일이 아니면 도대체 뭐냐, 뭐긴 뭐야, 색꺄, 니 애비 좆이라니까, 라는 식으로 반박이 줄줄이 이어지며 논쟁은 점점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어갔다. 이후에도 불기둥 논쟁, 남쪽 논쟁, 검불 논쟁 등 논쟁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며 공수 논쟁은 그해가 다 가도록 끝도 없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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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 : 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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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복의 인생이 기구한 만큼 사건의 전개도 빠르게 진행되고, 뒤쪽으로 갈수록 제각각의 사건들이 연결고리를 찾아갔다. 마치 베르나르의 <개미>의 두 세계가 맞닿는 느낌. 그리고 제일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다른 작가들의 평을 읽어보니 은희경씨 것이 가장 공감됐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으면 앞뒤 생각지도 않고 풀어내느라 여타 배경이나 구조에는 신경쓸 겨를도 없이 전개가 되고 그러다 보니 작가가 상상한 그대로를 아무 눈치보지 않고 표현할 수 있어 다른 소설에서는 보지 못한 색다른 맛도 있다고. 대신 '그래서 뭐 어쩌라고?'식의 허무함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책장을 덮을 때 그 장대함과 웅장함, 그리고 뭣보다 요즘 가장 고민에 빠져있는 인간사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순 있었지만 내 상황과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면 나 자신도 '뭘 어쩌라고?'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 빠른 전개와 무한한 상상력이 이 책의 매력을 톡톡히 보여주고 있어 많은 영화감독들이 <고래>의 영화화에 침을 흘리고 있지만 장진 영화감독의 말을 따르자면 책만치 못한 영화를 만들 순 없어 다들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친구가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게 소개 좀 해달라며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란다. 너무 장황한 이야기라서 요약하기도 어렵고 단순히 한 여인의 인생이야 하기에는 그 스케일을 다 얘기할 수 없어 우물쭈물했다. 글 첫부분에서 저자는 하나의 복수극이라는 말로 줄여놓았지만 복수극? 글쎄다. 노파가 복수심을 불태웠던 것보단 금복이나 춘희라는 본래의 인간이 타고난 운명이 이 소설을 이끄는 더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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