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 작품 중에 읽어본 건 <공중그네> 뿐이고 그조차도 마음에 쏙 들진 않았는데도 이 책은 그냥 예전부터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내 마음대로 북클럽 다섯번째 책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실은 주인공인 지로란 아이가 도대체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서였다. 지인이 좋아하는 책인데다 지로가 너무 좋은 나머지 뱃속의 아이 태명을 지로라고까지 지었으니까. 저번 선정보다 리뷰를 꼼꼼히 보지 않은 탓에 책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번엔 울지 않고 볼 수 있는, 조금은 가벼운 놈을 고르고 싶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였다. 그의 문체는 <공중그네>에서처럼 진중하지 않게 쓱쓱 읽기에 그만이었다. 다만 이라부를 중심으로 사건들을 이어낸 <공중그네>가 이야기의 흐름이 그리 길지 않아 흥미를 가질만하면 끊기는 아쉬움이 있었다면 이 책은 상하권으로 된 장편소설이라 이어지는 재미가 쏠쏠했다. 더군다나 운동권이었던 아버지를 바라보며 자라는 사춘기 소년의 이야기라니. 가끔 하루가 끝날 쯤 읖조리는 지로의 독백이 너무 좋았다. 내 어린 날도 그렇게 솔직하고 꾸밈없었는지, 그런 지로가 좋았다. 

 친구 삿사의 생일파티, 미나미 선생님의 가정방문, 첫 몽정과 친구들과 함께 여탕을 훔쳐볼 계획, 불량 중학생과의 맞대면들은 여느 고학년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의 이야기처럼 시작한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엔 담임선생님과 의무교육의 필요성이나 터무니없이 비싼 수학여행비에 대해 싸우듯 토론하고 불량중학생과 싸울 때 단번에 이길 수 있는 방법으로 각목으로 뒷무릎치기를 권유하는 아버지가 있다. 일도 안하고 집에서 빈둥빈둥대면서 어머니가 운영하는 까페의 수입으로 근근히 먹고 사는 집안. 세무서에서 찾아온 직원과는 연금과 세금을 못내겠다며 동네가 떠나가라 싸우고 그래서 경찰서에 연행되는 것은 밥먹듯하고 그런것 따위 무서워하지도 않는 아버지. 도리어 그런 자신의 생각을 널리 알리려 프리라이터로 활동하며 책을 내려는 아버지가 있다.

 도쿄에 있는 동안 지로는 그런 아버지가 창피해 선생님의 가정방문 때도 아버지가 다른데 가계시길, 학교엔 제발 찾아오지 말길, 왜 엄마는 아빠랑 결혼한거지? 원망한다. 그치만 어느새 그런 아버지를 닮아가는, 아니 이미 닮아있는 자신과 가족들을 발견한다. 

	그날은 학교에 돌아가지 않았다. 미나미 선생님이 아동상담소쪽에 "학교에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을 보내온 것이다. 정말 쌀쌀맞기도 하다. 한숨이 나왔다. 교사라는 존재가 몹시 속물적으로 느껴졌다. 인간이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건 자신이 안전할 때뿐이다.
페이지 :  348

 아키라 아저씨와 공모한 죄로 아동상담소에 있던 지로는 그후 구로키와 함께 불량 중학생 가쓰를 소탕하고 집에서 쫓겨나게 된 상황에 휘황찬란한 외갓집보다는 부모님과 함께 남쪽으로 떠나는 길을 택한다. 표는 내지 않았지만 학원에 치이고 사립학교에서 성적다툼을 하는 이종사촌형과 동생들이 그리 행복하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따스한 기분이 되었다. 이별은 쓸쓸한 것이 아니다. 서로 만나 함께 어울리다가 와 닿게 된 결승점이다.   (중략)   "자, 그럼."  "응, 잘 지내라."  가볍게 손을 쳐들더니 밤길을 사라져간다.   준 이상으로 깨끗한 이별이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센티멘털한 기분에 빠지는 건 대부분 어른들이다. 어린이에게는 과거보다 미래가 훨씬 더 크다. 센티멘털한 기분에 빠질 틈이 없는 것이다.   지로에게 회한은 없었다. 오늘 밤, 친구들을 모두 만난 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   길고 긴 하루였어. 현관 앞에 우두커니 서서 혼잣말을 흘렸다.
페이지 :  396

 새로운 시작을 앞둔 봄, 떨리는 마음을 추스리기도 전에 그리움에 머리가 아파 한참 힘들어하는데 <고래>랑 이 책이 짠-하고 나타나 고맙게도 위로해줬다. 가볍게 읽고 싶어 <고래>부터 읽었더니 벌써 몇달이 지났는데 <상실의 시대>는 이제서다. 

 예전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명성은 익히 들었다. 하지만 정작 내 주변에서 강추하는 사람도 없을 뿐 더러 소문으로 듣자하니 그의 작품에 대한 평도 극과 극이더라. 결정적으로 표지가 썩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그런 선입견이 합쳐져 읽는 순서를 나중으로 미뤘던 것도 있었고, 실제 앞 40페이지 정도를 읽는데도 영 마음에 내키지도 않았다. 때맞춰 밀려온 노곤함에 까페에 자리잡은지 한시간만에 책덮고 자릴 박차고 일어났으니까.
 
 그렇게 투덜대며 어떻게 다 읽으나 걱정하고 있는데 처음으로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 아니, 실은 세컨이 그 사람의 작품을 거의 읽어봤고 그의 패턴까지도 파악한 줄을 이제야 알았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바로 잡고 읽었다. 도대체 사람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눈앞에 눈꼽이라도 한가득 낀듯 멍멍한 그의 문체가 어디가 좋다는 건지 궁금했다. 그런데 곧 그건 한순간에 불과했으며 그가 지속적으로 꿈속을 헤매고 있진 않다는 걸 알아버리곤 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손에서 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급박하게 전개되는 씬도 없는데 아니, 도리어 천천히 진행하는데도 지루하지 않으면서 뒷장이 궁금했다. 내가 접했던 일본 작가들이 그리 많진 않지만 그들 특유의 분위기가 하루키의 소설 속에선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는 그 특유의 분위기란 마치 별일도 아닌데 엄청 큰일인 것처럼 인물 하나의 감정을 부풀려 여러 장에 걸쳐 모호하게 표현하는 그런 것을 말한다. 작가의 말처럼 서양 소설의 영향을 받은 건지 그의 소설에서 작가를 감춰놓으면 일본일까? 서양일까?하고 궁금해질법도 했다. 

 다른 것보다 내가 더없이 이 책을 좋아하게 되고 계속 여운을 갖고 펼쳐보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고민, 나아가 젊은이들의 고민을 그가 대신 해주고 있어서였다. 아마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좋아했으리라 믿는다. 

 세상에 어느 것도 두렵지 않을만큼 확신에 찼거나 자꾸 되돌아보며 놓았던 것을 다시금 잡게하는, 의심가는 그런 사랑들. 그들과의 관계가 동시에 놓여졌을 때의 혼란스러움과 조금은 이기적인 결정들. 그치만 그 누구 하나도 납득이 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그런 상황. 그리고 다시금 잃고 상처받고 아파했다가도 금세 잊고 새로운 사랑이, 사람이 내 안에 들어오고 그렇게 인생이 끝나갈 것임, 우리들 모두 언젠가는 그렇게 죽을 것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모습들.

 누구나 나처럼 이런 고민들을 숨이 찰듯 하고 있는걸까 궁금했던 찰나였는데 마치 내가 와타나베가 된듯, 레이코가 된듯, 나오코가 된듯, 미도리가 된듯 그렇게 줄거리가 흘러갔고 날 이해해주는 친구가 한명 더 생긴 듯 한장 한장에 정이 갔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바로 마지막.

	나는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든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야기할 게 너무 많다, 이야기해야만 할 게 산처럼 쌓여 있다, 온 세계에서 너말고 내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너와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 무엇이 됐건 모든 걸 너와 둘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도리는 한참 동안 전화 저쪽에서 말이 없었다. 마치 온 세계의 가랑비가 온 세계의 잔디밭에 내리는 것 같은 침묵만이 이어졌다.  나는 그 동안 줄곧 유리창에 이마를 바짝 붙이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미도리가 입을 열었다.  "자기, 지금 어디 있는거야?"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고개를 들고, 공중전화 부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그곳이 어딘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랄 것도 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아무데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다.
페이지 : 440

 제작이 끝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원작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읽는 내내 머릿속에 장면들을 떠올리긴 했지만 글쎄, 감정이입을 위해 한국배우들을 투입시키기도 했는데 잘 안됐다. 와타나베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도 실패했고. 아마도 내 머릿속에선 와타나베 성격과 부합되는 배우 자체를 못찾아 캐스팅에 실패한 것 같다. 그저 싱그러운 숲길 속 아미료에서 아련한 음악소리나 불빛, 위스키냄새 같은 것밖에. 어떠한 작품이 나와도 기대를 다 채워주진 못할 것이지만 그래도 나온다면 꼭 보고싶다. 그리고 다시한번 <상실의 시대>를 읽어야지.  

  

	Norwegian Wood written by John Lennon I once had a girl, or should I say she once had me. She showed me her room, isn’t it good? Norwegian Wood. She asked me to stay and she told me to sit anywhere,  so I looked around and I noticed there was’t a chair. I sat on a rug biding my time, drinking her wine. We talked until two, and then she said, "It’s time for bed." She told me she worked in the morning and started to  laugh, I told her I didn’t and crawled off to sleep in the bath. And when I awoke I was alone, this bird had flown. so I lit a fire, isn’t it good? Norwegian 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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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Sergean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120번 정도 반복하며 이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어째서 이 방대한 한권의 분량이 Norwegian Wood와 이렇게 잘 맞아떨어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물론 부제가 될 정도니 생각은 하면서 썼겠지만. 내가 네다섯살에 출간되어 이십년을 넘게 오해와 편견으로 피하고 하마터면 만나지 못할 뻔한 고개를 넘어 드디어 이제는 젊은이의 대열에 낀, 그런 나의 손에 이 책이 잡힌 걸 다행이자 행운으로 여기며 간직해야겠다. 그만큼 감동이 깊어 한동안 사귀었던 사람과 이별을 고하면 다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드는 것처럼 조금만 아주 조금만 여유를 더 갖고 이 책의 여운을 음미하고 싶다. 그리고 나도 기타를 치며 누군가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그게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라 해도.  

 새로 영입된 멤버가 선정한 북클럽 세번째 책이다. 영화로 개봉되면서 책이 되려 인기를 끌게 된 경우인데 이 때문인지 주변에 이 책을 읽었다는 사람들을 많이 봤었다.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인데도 보고 나면 울적해지는 건 피하고 더군다나 포스터로 처음 이 내용을 접했을 때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이 스토리에 왠지 카메란 디아즈란 배우가 어울리지 않아 캐스팅이 잘못 된게 아닐까 하던 영화였다(카메론이 큰언니역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엄마역이네). 책표지는 영화 개봉 후 유명세를 타고 주인공들 사진으로 바뀐 듯 했다. 페이지 크기는 작은 만큼 두께는 두꺼웠지만 대개 외국서적이 이렇듯 종이재질이 가벼웠다. 

 사실 옮긴이의 말까지 554페이지인 책인데 난 518페이지를 읽을 쯤에야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고, 미국과 한국이라는 문화 차이일 수도 있다. 가끔 즐겨보는 심슨 만화를 보고 있으면 몇번을 돌려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농담, 이야기들이 있다. 아주 가끔 번역하시는 분들이 괄호를 통해 길게 설명을 해주기도 하지만 그때도 함께 웃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힘들었던 점이 바로 그점이며 다시 책장을 뒤적여도 이해되지 않는 곳이 매우 많다. 그리고 세계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단순무구한 이야기들이 펼쳐진 마지막 40페이지만이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최대 한계였다. 

 이 책을 읽은 지인들은 눈시울이 붉어졌거나 눈물을 훔쳤다고, 아니면 무척이나 슬펐다고 이야길했더랬다. 완전한 결말을 보기 전까지는 도대체 어떤 부분일지, 예상했던 그런 결말이 그렇게나 큰 슬픔을 안겨줄지 의아해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던 그것은 예상치 못했던 일들과 삶의 소중함 그리고 그러면 안될 것 같은 사람들에게조차 무심코 잊혀지는 순간들, 나이가 들어갈수록 회상하는 족족의 추억들이 기쁨보다는 거의 슬픔이 되어가는 현실.
 

	엄마는 안나의 그 사진을 나더러 가지라고 했다. 나는 그 사진을 액자에 담지 않았다. 사진을 봉투에 넣어 봉한 다음 진열장 구석 칸 깊숙이 넣어두었다. 그 사진은, 단지 요즘처럼 내가 그 애를 잃어간다 싶은 날을 대비하여 그곳에 있다.   아침에 깼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그 애가 아닌 날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어느 나른한 8월 오후, 그 애의 오른쪽 어깨 위에 작은 반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요즘처럼, 눈 내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그 애의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하는 때도 있을 것이다.
페이지 : 547

 잠시 손가락으로 책갈피를 만들어 접고 나를 생각해본다. 아마 자매라는 상황에 더 공감이 되서였을 것이다. 막상 다 읽고 나니 그 전에는 그저 그렇게 읽고 넘어가버렸던 부분이 내게도 추억이 되어 눈시울이 붉어진다. 마치 우리 자매가 안나와 케이트가 된 것처럼. 우리도 이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고 때론 싸우고 목욕을 하며 내 가슴팍 아래에 있는 반점을 보고 웃던 나날들이 있는데 말이다. 건강하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가곤 있지만 언젠가는 맞이할 일이기에 영원할 순 없으므로 하나둘 겹치는 장면에 예행연습이 꽤나 힘들었다.  

 캐스팅이 어쨌건 기회가 된다면 내 게으름으로 끊겼던 것들을 하나하나 누벼 영상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은 이렇다. 당신은 하늘나라에 있을 때 몇살로 있고 싶은가? 내 말은, 하늘나라라면 가장 예쁜 모습으로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람이 늙어서 죽으면 이도 없고 머리도 벗겨진 채 돌아다닐까? (중략)   내 생각에 문제는 모든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만약 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세월을 떨어져 있다 서로를 찾으려고 하면 하늘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당신이 죽어서 5년 전에 죽은 남편을 찾아다닌다고 해보자. 당신은 일흔 살의 남편 모습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 남편은 최고로 멋진 열여섯 살로 돌아가 더할 수 없이 신나게 돌아다니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면 당신은 케이트고 열여섯 살에 죽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이 세상에서 결코 도달하지 못한 서른다섯 살의 모습으로 있겠다고 선택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럼 도대체 어떻게 당신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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