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들은 이집트인들과는 다르게 이세상 너머 이상만을 좇진 않고 어느 정도 현실에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인체를 조각할 때도 아름다운 비율을 따져 정확하게 조각하려 했고. 그러다 보니 그 시대 예술가들은 예술가가 아닌 기술자였다. 심지어는 시인들까지도. 플라톤도 광기에 어린 시인보단 기술적인 시인들을 이뻐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詩學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들은 연극도 좋아했는데 희극보단 비극이 인기였다. 비참해진 주인공이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괴로워하는 와중 근원적인 존재와 다시 합쳐져 하나가 되는 것, 그 해탈의 순간을 사람들은 좋아했고 이때부터 숭고미가 존재하게 시작했다. 
  
 그러다 헬레니즘시대의 도래, 그리스예술이 점점 져가면서 파가 갈리게 된다. 플라톤과 플로티노스. 플라톤은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에는 건널 수 없는 레테의 강이 있다며 자연을 모방한 예술은 소용없다고 했지만(차라리 선이 곧 아름다움) 플로티노스는 이상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끊임없이 빛을 퍼트리며 에로스의 인도로 사람들은 현실의 아름다움에서 출발, 점점 이상세계의 아름다움을 향해간다고 말했다.(외 소크라테스 왈, 미는 곧 쓸모있는 것) 

 특히 플로티노스는 조각가와 건축가들은 자연주의적 묘사를 하는게 아닌 개념적 사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니 예술은 굉장히 수준 높은 작업이다, 그러니 보이는대로 그리지 않아도 되며 대신 명확하고 또렷하게는 그려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영향이 중세 기독교 비잔틴 시대에 영향을 미쳐 그 시대 교회 내부엔 외형보단 아름다운 내면을 표현한 이상세계가 원근법을 무시한채 그려져있다.   
 
 교회해서 나온 이야기이지만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자 이론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낀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민하던 중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를 살짝 바꿔치기하게 되는데 이데아인 이상세계는 하늘나라, 일자의 빛은 하느님의 빛, 영혼의 정화는 구원, 신이야말로 미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 빛으로 아름다워진다 했으니 사람들이 신을 믿을 수 밖에. 해서 예술가의 위상은 하늘을 치솟고 점점 사람들은 못생긴 것도 아름답게 보려는 노력을 했다. 심지어 가짜인 조각을 봐도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결코 가짜라 할 수 없다하고 보지 못하는 세계도 표현하기 위해 알레고리가 등장하게 된다. 알레고리는 그리기 어렵거나 보이지 않는 것, 특히 초월적인 진리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데 예수를 어린 양으로 그린다거나 사랑을 하트로 표현하는 것이 다 속한다. 아우구스티누스 덕에 고대의 신비로운 생각들인 상징적이고 종교적인 아름다움으로 바뀐 것. 즉 미란 아름답기 때문에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당시 로마는 어떤 예술이 있었을까. 그리스시대에 비하면 중세 로마 작품들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데 이는 그들도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영혼이나 정신적 세계를 그리려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신 건축이나 음악은 보이는 세계랑 별 상관이 없어서 마음껏 자유롭게 발달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발달한 건축은 11세기에는 로마네스크라는 독특한 아치공법 건축을 선보이기도 했다. 로마네스크 성당이 십자가 모양의 평면도를 하고 있는 건 중세 상징주의를 나타낸 건데 딱딱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악마와 싸우는 신의 요새처럼 만들었다. 그러다 고딕이라는 건축법이 등장하면서 건물의 골격도 보이고 로마네스크의 두꺼운 벽 대신 커다란 창문에 스테인드글라스로 화려하게 꾸미기도 했다. 이렇게 계속 건축이 발전하자 조형예술도 따라 발전하여 그림도 서서히 알기 쉽게 변화, 자연을 베끼기 시작하는 고딕자연주의가 유행하게 된다. 그러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신이 자연을 만들었으므로 신이 만들걸 그리는 건 창조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맛보는 것이라 ’모방’으로 정의내리게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발명과 발견이 쏟아지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문턱에 살았는데 점점 발전하는 과학 때문에 사람들이 신을 믿지 않을 것을 우려해 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노력했다. 이때의 미는 중세초와 다르게 지적 즐거움인 내가 봐서 즐거운 것이 미였으므로 자연을 모방하는 것도 물론 되며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신의 모습을 그리는 것, 우린 신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므로 고딕자연주의를 주장하게 됐다.

 그럼 이 당시 희곡은 비극만 있고 희극은 왜 발달하지 않았는지. <장미의 이름>을 보게 되면 중세는 권위를 중시하는 시대라 웃기는 건 경건함을 깔본다하여 싫어했다. 또한 귀족이 그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허다해서 그 책을 없애고 싶어했다. 희극론을 만든 아리스토텔레스는 농담과 희극에서도 진실을 알 수 있다고 했지만 결국 희극론은 자취를 감쳤다고. 

 진중권의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을 정말 재미있게 읽은 고로 <미학오디세이>도 언젠가는 도전해보아야지 마음 굳게 먹고 있었는데 시리즈인데다 친구의 말론 만만치 않은 책이라 하길래 겁을 좀 먹었다. 그러나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삼인삼색 미학오디세이>는 만화가 현태준, 이우일, 김태권이 어려울법한 미학을 쉽게 풀어놓은 책이었다. 

 바보같이 미학이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사실은 소피의 세계처럼 철학을 가볍게 그려놓은 만화라고 착각하고 든 책이기도 해 예상치 못한 전개에 신선했고 역시나 유럽미술관 투어 전, 갖가지 양식에 대한 이야기들도 필요하다 싶기도 해 진중권의 책이 거의 그렇듯 이 또한 유용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1권은 원시에서 근대까지의 미학을 다루는데 각 파트의 시작은 에셔라고 하는 한 예술가의 작품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그의 작품은 수학과 논리학의 난제를 주제로 해서 여러 세계의 넘나듦이나 이율 배반과 같이 저자의 눈에 미학의 역사를 설명하기에 꽤 괜찮았나보다. 

 원시 예술, 구석기인들의 예술은 눈에 보이는대로 그리는 자연주의적 묘사가 대부분이었는데 점점 머리가 꽉 찬 지성인이 되어갈수록 아는대로 바라보는 개념적사유를 갖게 됐다. 그래서 캥거루 하나를 그려도 이전엔 실제 모습과 비슷하게 그렸지만 후엔 투시하듯 내장까지도 다 그렸다.

 이런 개념이 생기면서 이집트인들은 예술 안에서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믿게 되어버렸다. 특히 귀족층 파라오들은 추상충동에 의해 부활할 때 그려놓은 그림이나 조각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기에 몸을 가장 완벽하게 그려야 했다. 그게 바로 정면성의 원리. 이는 계속 영향을 미치다가 그리스에서 사람을 보이는대로 그리는 단축법을 쓰면서 다른 길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남쪽 섬에 도착하곤 모모코나 지로나 불만이 이만큼이지만 며칠도 지나지 않아 섬의 매력에 완전히 사로잡혀 오길 잘 했다 생각한다. 

	좀 더 넓은 도로가 나왔다. 그래봤자 2차선이었다. 분명 이게 현도(縣道)일 것이다. 자동차가 전혀 없어서 마음 놓고 길 한 가운데로 내달렸다. 자꾸자꾸 속력이 붙었다. "야호!" 지로는 자포자기에 빠진 놈처럼 마구 고함을 내질렀다. 모모코가 등에 찰싹 달라붙었따. 그나저나 자동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다니, 대체 어떻게 된 섬인가. 장애물이 전혀 없는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보는 건 그야말로 생애 첫 경험이었다.  십여 분 달리다 멀리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발견했다. 마침 넓은 도로에서 옆길로 굽어드는 참이었다. 아직 이쪽을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았다.  "둘이 자알 논다." 모모코가 툭 내뱉듯이 말했다. 지로도 짐깐에 탄 어머니가 너무도 즐거워 보여서 자신들만 버림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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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먹고 집을 나섰다. "조심해서 다녀와." 어머니가 도쿄에서 살던 때와 똑같은 인사를 해서 "뭘 조심해?"하고 되물었더니, 그제야 자동차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어머니가 "산돼지"라고 대꾸해서 셋이서 웃었다.  나가는 길에 멤생이가 ’메에에에’하고 울었다. 거기에 장단을 맞추듯 집 안에서 아버지가 크게 재채기를 했다. 지로는 일순 목을 움츠렸다. 모모코와 마주 보며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다.  분명 아버지는 우리가 학교에 가는 것을 알아도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따가 학교에서 돌아와도 특별히 그 얘기를 꺼내거나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정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방해도 하지 않는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표 나지 않게 처리해나가는 건 인간관계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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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밥을 먹을 때가 되자 요다 할아버지가 나타났고 언제나처럼 술자리가 벌어졌다. 산신의 곡조에 맞추어 누나가 춤을 추었다. 그 모습을 아라가키 순경이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사흘 뒤, 우리 집은 어떻게 되는 걸까. 혼자 고민해봤자 뾰족한 수도 없어서 지로도 춤을 추었다. 춤을 추다보니 이게 또 무지하게 즐거웠다.  국가는 없어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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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고요한 이리오모테섬서도 아버지는 사건의 중심에 선다. 하지만 비난의 대상이 아닌 마을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아버지. 뒤늦게 도착한 미나미선생님의 편지 속 사과로 수학여행비로 난동을 피웠던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진다.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지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는 아버지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 아버지 뱃속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벌레가 있어서 그게 날뛰기 시작하면 비위짱이 틀어져서 내가 나가 아니게 돼. 한마디로 바보야. 바보."  아버지가 자신을 비웃듯 입 끝을 치켜올렸다. 그런 식으로 말할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지로는 놀랐다. 누나도 의외라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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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쪽이 옳은지, 선생님도 섬사람들도 모릅니다. 호텔 건설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단지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초등학생인 여러분의 본분은 공부라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문제에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어른에게는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만일 의문을 품었거나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잊지 말고 가슴속에 간직해주세요.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여 정의의 편에 서는 사람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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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농성 소동은 틀림없이 큰 뉴스가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미움까지야 사지 않겠지만 동정도 받지 못했을 것 같다. 지로는 어디까지나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경찰과 기업에 창끝을 들이댄 사람을 통쾌하다며 재미있어 하면서도, 그것을 막상 내 일처럼 생각해줄 사람은 없다. 텔레비전을 지켜본 어른들은 단 한 번도 싸운 일이 없고 앞으로도 싸울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항하고 투쟁하는 사람을 안전한 장소에서 구경하고 그럴싸한 얼굴로 논평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냉소를 던지리라. 그것이 바로 아버지를 제외한 대다수의 어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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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좌익도 우익도 아니다. 좌익은 이상을 실현하기 보다 조직을 유지하기에 급급해 그저 운동을 위한 운동에만 매달린다고, 우익은 정보의 개노릇을 한다고. 케찹과 미 제국주의는 우리의 적이라며 체 게바라를 동경하는 그런 아버지. 지로는 그런 아버지가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아버지를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자유로워 할 수 있는 일본 최남단의 전설의 섬, 파이파티로마로 갈 수 있길 바란다. 그 비밀스러운 낙원으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한 건 아니었다. 과거의 나는 어떻게 해볼 수 없다지만 지금의 나, 나아가 미래의 나, 내 아이가 바라볼 내가 아버지인 이치로씨만큼 당당할 수 있을지, 그게 안된다면 소극적이나마 어머니 사쿠라씨만큼의 용기는 가질 수 있을런지. 모두를 위한 일인 것을 앎에도 텔레비전에서 남의 일인양 바라보는 비겁한 어른은 아닌지, 아니 적어도 내 생각대로 살고 있는건 맞는지 자신이 없어졌다. 아아. 난 거기다가 이치로씨가 가장 싫어하는 공무원이지 않는가. 나 그럼 아라가키 순경만큼도 할 수 있을까.      

 처음엔 이럴 생각으로 선정한 책이 아니었는데, 기분좋게 웃어넘길 생각으로 정한 거였는데 크게 반성하고 돌아보게 되는 책이 되었다. 당장 내일, 아니 이 시간 이후부터의 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펼칠 수 있길. 누구에게가 아닌 내 자신에게 멋진 내가 되길. 비록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엔 사쿠라씨가 이치로씨를 알아봤듯 비록 보이지 않는 곳일지라도 나를 응원할 누군가가 있을 것을 믿으며 심장이 두근대고 끝낸 후 웃을 수 있는 일을 택하고 실천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