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앞 흰 막 아래에서 구입한 <호밀밭의 파수꾼>
사실 지인의 추천보다는 수많은 살인자들의 손에 이 책이 들려져있었다는데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살인, 마약, 담배, 낙태, 섹스… 
고삐가 풀려버리니 내면과 反하던, 위험한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증대된다. 살인은 예전부터 억누르던 충동이었고, 마약은 초콜릿 정도, 하지만 담배와 섹스로 충분하다. 

 그렇지만 낙태는 결코 하고 싶지 않다. 내 안에 피어든 생명을 짓밟는 일 따위. 원치 않는 싹을 자르는 일이 없도록 긴장하고, 따라서 진퇴는 보다 정교하게 행해져야 한다. 섹스는 성스러운 교합일 터, 내 인생 내가 즐기다 가는 것도 좋을 것을. 내면의 제약은 끊임없이 나를 억누른다. 이게 과연 더럽고 불순한 생각일까. 인간의 1차적 욕구인데 말이다.

 여느 책들과 같이 표지 앞뒤로 모 신문사나 잡지사에서의 예찬문구가 주를 이룬다. 사회에 대한 신랄한 분노. 어디 한번 볼까, <피아노 치는 여자>보다 지나치지 않다면 던져버리겠다며 펼쳐들었다.

 다 읽은 후에는 누구에게도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 되었다. 대개 문학성을 높게 평가받은 책들은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이제와 보건대, 단순한 코드가 안맞겠거니가 아니라 내 가치관과 부합되지 않는 구절이나 상황들이 제시되면서 충돌이 있었나보다. 

 이 책을 계기로 이제는 어느 정도 나를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해하려고 노력해야하는 책. 그게 아니라면 나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책. 

 그렇게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알아가라고 이런 책이 나온 것 같다.

 

	"If I write something down for you, will you red it carefully?  And keep it?" "Yes. Sure," (omit) "Here’s what he said :  ’The mark of the immature man is that he wants to die nobly for a cause, while the mark of the mature man is that he wants to live humbly for one.’"

  특히 이 구절에서 뻥 뚫리는 듯 했다.  

 감상문, 독후감을 쓰려고 한다. 배수아의 독학자 주인공의 인생관에 이끌렸다. 이끌리면 이끌렸지, 결코 일치한다 볼 수 없는 것이 난 물질적인 욕망이 그이보단 비교할 수 없을만치 충만하므로 그 이상은 반드시 실현되긴 어렵다고 본다. 나는 보란 듯한 내 집도 갖고 싶어하고, 내 자신을 보호할 경호업체에도 가입해야 하며, 늙으막 재산이 될 사람들을 위해 친목모임의 회비도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마냥 기본적인 욕구만을 충족시키며 소박하게 살 자신은 없는 것. 또한 내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목적 중에서는 순수한 학문에 대한 열정이 아닌,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위인지학도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에 속세와의 단절을 결심할 자신도 없다. 당연히 무지로 똘똘 뭉쳐버린 이러한 목적 자체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이만큼이고 더 성장하려 한다면, 혁신적일 순 없어도 점진적이고 진화적으로 나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스미듯이 소탈해진 나를 볼 수 있을 것이기에 욕심부리지 않으련다.

걱정이다. 감상문이나 독후감에 단순히 모두들 아는 명대사나 스토리 전개에 대한 누군가의 해석을, 또 나 자신도 그를 해석하긴 싫다. 쓸 얘기를 찾아 쥐어 짜는 건 싫다. 책 한 권이 공중에서 내 가슴을 향해 후욱 던져짐으로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아픔, 기쁨 그를 넘어 벅참을 뱉어내고 싶다. 어줍잖은 글발이 따라주지 않아 못하는 일. 시작이 반이라니 그냥 내 방식대로 시작하느냐,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근덕하게 성장하길 기다리며 퇴고의 연속을 거쳐 몇 안되지만 조금은 매끄러운 글을 얻어낼 것인가. 

 받기 전, 제목만 보고는 기존에 익히 알고 있던 한국음식 뿐 만 아니라, 생소했던 옛날 음식과 사진이 한국의 역사와 어우러져 한번 주욱 훑어볼 수 있는 책일 거라 예상했다. 역사에 잼병인 만큼 일상소재와 함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될 거라 기대했다. 실제로 완전 다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우리에게 친숙한 음식-떡볶이, 김밥, 호떡 등-을 중심으로 하여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풍습이나 분위기, 음식의 재료가 어떻게 차이가 있었는가를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잡식성 문화에서 불교의 도입으로 인해 한순간 채식 위주의 문화로 바뀌어버린 통일 신라 이야기라던가, 짜장면을 중국 본토 발음으로는 자지앙미옌으로 발음하고, 쌀 부족으로 인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이야기, 한때 친구와 내기의 대상이 되었던 감자탕에서 ’감자’의 의미에 대한 내용은 구미를 당겼고, 옛날 신문기사나 소설의 한 부분에서 나오는 음식 이야기는 그 내용도 신선했지만, 지금과는 조금 다른 한 글자 한 글자가 재미있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세 가지만 소개해보겠다.


 첫번째 음식은 돈까스. 근대 즈음 여러 문화들과 함께 들어온 서양 음식들은 서양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그대로 반영하여 역시나 대중들보다는 좀 사는 집안을 티내는 하나의 수단으로도 이용됐다. 다음은 서민적인 음식으로 자리잡혔던 일본의 동카츠와는 다른 한국식 돈까스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반면에 한국식 돈까스는 조금 다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한국의 돈까스는 경양식집의 메뉴로 정착되었다. 포크와 나이프가 나왔고, 오뚜기 인스턴트 수프나마 코스로 나왔다. 그리고 식당에서는 하다못해 크시코스의 우편마차 피아노 반주라도 틀어 주었다.

 

 근간에 영국 친구와 간 레스토랑은 그다지 고급스럽지 않은, 왠만한 고등학생 커플들도 찾아오는 평범한 식당이었다. 그치만 일반적인 돈까스를 하나 시키면 에피타이저부터 스프, 그리고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사용하게끔 나오는 여러 개의 포크와 스푼들, 우편마차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의 느린 템포를 안고 흐르는 음악들은 아직도 돈까스에 대한 환상을 깨지 못하고 품위를 측정하는데 행여라도 발휘될 가정시간 서양 식사 예절법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궁금해 너희 나라도 이러니 물으니 아니라며 도리어 사용하는데 혼란스럽고 어려워 했다.    


 두번째는 호떡이다. 가정 불화 원인으로 호떡으로 자살을 도모하려고 했다는 둥, 호떡이 안 팔려 중국인이 음독을 했다는 둥, 남대문 부근 호떡집에서 호떡 먹다가 졸지에 3.1운동에 가담하게 된 학생 공판 기록들은 시대를 설명하기에 실감났다. 현재 음식으로는 뭐라고 비유할 수 없는, 남녀노소 사계절 관계 없이 즐겨 먹던 그 음식이 바로 호떡이었다니까. 그리고 그 시대에도 그 시대에 맞게 대응하는 애국자가 있었으니 다음은 그에 대한 기사이다. 

	사리원에 사는 정연관 씨는 얼마 전부터 고심한 결과 계란떡 제조법을 체득한 바, 도처마다 중국인 호떡 장사들이 어린아이들의 푼돈과 빈민의 주머니를 털어가므로, 이를 유감으로 생각하였다. 정연관 씨는 계란떡 제조법을 벌써 많은 사람에게 보급하여, 호떡 장사들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누구를 막론하고 계란떡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직업소개 겸 무료로 가르쳐서, 푼돈이라도 우리의 돈이 외국인에게 새어나가지 않게 하고자 한다.

 사실 호떡이 인상깊었던 것은 다른 것보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장을 보던 추억을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 바퀴 비잉 돌아 시장 아주머니들께 인사를 하고 장을 다 보고 돌아오는 길에 꼭 하나씩 사주시던 호떡은 달지도 않고, 맹맹하지도 않고, 호떡 두께도 적당하여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좋아하였더랬다. 어느 새 문전성시를 이루더니 얼마 안가 이듬해 값을 두 배나 올리더라. 인심이 야박하여 그 어린 나이에 작정하고 호떡을 끊었는데, 후회스럽게 어떤 소문난 호떡집에서도 그 때 그 호떡맛은 맛볼 수가 없다.  


 세번째 음식은 커피이다. 최근 내가 마시는 커피 한잔 값은 대략 사천원. 행여라도 친구를 만나거나 밖에 볼 일이 있을 때는 하루 2잔이 기본이니 검정 물 몇 밀리리터에 거의 만 원돈이 지불된다. 엄마가 알면 까무라칠 노릇이다. 그렇게 부유했었나. 그런데 언젠가부터 자매님과 나는 이러한 것에 아끼지 않게 됐다. 그러니까 나름 삶의 향기를 충만하게 하는 것들이라 해도 될거다. 모르긴 몰라도 나쁘게 말한다면 된장녀 초기 증상일 수도 있는 거라고 한다. 시발점도 그랬거니와 된장녀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기 딱 좋은 기준선이 되주는 음식 또한 이 커피가 될 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읽다가 웃어버린 건 이거였다. 돈까스와 함께 품위와 낭만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잡은 커피, 과도하게 비싼 커피를 지향하는 된장녀를 비꼬는 입장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가 없었다는 거다. 마치 어느 이집트 벽화에 ’요즘 것들은 싸가지가 없다’는 식의 글과 비슷하다.

	"칼피스, 파피스도 조커니와 잠오지 않게 하는 컵피에도 ’아이스컵피’를 두 사람이 하나만 청하여다가는 두 남녀가 대가리를 부비대고 보리줄기로 쪽쪽 빠라먹는다. 사랑의 아이스컵피 - 이 집에서 아이스컵피 - 저 집에서 아이스컵피 -그래도 모자라서 일인들 뻔으로 혀끗을 빳빳치펴서 ’아다시! 아이스고히가, 다이스키, 다이스키요!’, ’와시모네-?’ 혼부라당 백의껄이 아니라 제 밋천 드리고 다니는 마네킹껄이 이것이라면 머릿속은 텡비여도 자존심 만흐신 그들은 필작 노할게로군-"                                  - 노형석,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

 소개된 음식은 대체로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었고, 이 외의 것들도 김치, 볶음밥, 비빔밥, 오뎅, 김밥, 삼계탕, 개장국 등 하루에 적어도 한끼는 해결할 법한 친숙한 음식들이다. 평소 배고파도 밥 차려먹는게 귀찮아 굶고 마는, 한끼식사용 알약이 얼른 나오기만을 바라는 나에게는 읽는 내내 답답한 책이었다. 나쁜 의미의 답답함이 아니라 안타까움에 대한 답답함. 만약 음식에 조금이라도 관심과 소질이 있었더라면. 그래서 이 책에서 묘사된 재료들의 맛을 알아챌 수 있었다면 몇 백년 전 조상들의 음식이 지금의 것과 어떻게 맛이 다를지 상상으로 간이 될테고, 과거 형식의 어채만 하더라도 파는 데가 없어 먹을 수 없으니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안되는 게 어딨어, 시도해보는 거야.’정신으로 나가기엔 음식에 무기력해질 대로 무기력해진 나를 안다. 이 요리의 재료는 이렇고 또 저렇고를 언급해봤자 먼 나라 깐따삐아 전설. 노력한다고 앞 부분 예시로 보여진 요리 방법은 꼬박꼬박 읽고 넘어가다가 나중에 요리 과정은 넘기게 되었다. 룸메 없이 혼자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밥다운 밥을 먹자며 요리책 한 권 주문하려던 것을 바쁜 틈. 어딜 보나 난 이 저자의 쿨한 어투와 재미난 입담이 좋아 맛의 감이 오지 않음에도 다 읽을 수 있었던 거다. 그저 나같은 인간에게 이런 문화를 접하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하다. 

	한국과 일본의 음식이다 보니 김을 먼저 먹은 것이 누구냐는 논쟁이 한일 네티즌 간에 뜨거운 논쟁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누가 먼저 먹었느냐를 두고 싸우는 것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지만 말이다. 같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후손들끼리인데 누가 먼저든 무슨 상관일까. 그것도 기껏해야 김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