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어린 왕자'를 읽어본 적이 없다. 잡지를 보다가, 또는 언어 문제집을 풀다가, 다른 책을 읽다가 어린 왕자 본문에서 인용한 몇단락을 보고 대충 전체적인 주인공의 성격이나 책 분위기를 알았다. 주변에 보면 이 책은 어린 시절 한번씩은 다 읽어보았고 다시 읽어보기를 수십번 거듭한 사람도 보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변명이라면 어릴 적, 특정 출판사에서 나오는 창작동화를 읽었기 때문에 왠만한 아이들이 읽은 필수동화는 챙겨 읽지 못했다. 그 때문에 지금에서야 읽는 동화책들이 수두룩하다.

 엊그제 과외하러 갔더니 아이가 어린왕자를 내밀며 당연하다는 듯이 물어본다. 

  "선생님, 이 책 읽어봤죠?" 

 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니." 

 사실 살면서 안읽어본 책도 있을 수 있는 것인데 아이는 너무 놀란다. 안읽으며 미개인 취급 받는다며 내 가방에 자기 책을 챙겨넣어준다. 잠이 들기 전, 베개에 턱을 괴고 담요는 머리끝까지 올리고 이불 위에 엎드려 책을 폈다. 예쁜 그림과 조그마한 글씨가 꼭 어릴 적 동화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읽으면서 깊이 생각할 것 없이 느끼기에만 주력하면 되었기 때문에 책장은 아주 수월하게 넘어갔다. 과외하는 아이가 했던 것처럼 나도 이제 당연하다는 듯이 다들 읽어봤으리라 믿겠다. 또한 그 느낌도 비슷했으리라 믿고 내용에 관한 감상은 그렇게 생략하도록 하자.

 느낌만 말하자면 수능 후,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을 때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보다 좋진 않았다. 내가 너무 기대를 한 탓일까. 그동안 단락단락으로 읽었던 부분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매우 좋은 부분만 뽑아놓은 것을 읽은 것인지 허한 느낌에 사로잡혀 실망이 컸다. 중학생 시절, 어린 왕자와 여우가 '길들이는 것'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너무 좋아 잡지에서 시원하게 찢어 책표지로 한 적이 있었다. 그 때의 느낌이 아닌 것이다.

 언젠가 어린 왕자는 인생의 십의 자리가 바뀔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른 책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십년까지 기다리긴 너무 멀고 이십대가 꺾이는 그 날, 다시 한번 읽어보리라. 그 때는 어떤 느낌일지 벌써 궁금해진다. 아마 실망보다는 바쁜 일상에서 쉽게 잃어버렸던 것을 찾아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불 끄게 책 덮어."
"아니, 조금만 더 읽을면 다 읽거든. 먼저 자."
"나 불 켜놓으면 못 자는거 알잖아."
"알겠어, 얼른 읽을게. 에? 이게 끝이네?" 

’역시 일본소설’이라는 탄성을 자아낼만큼 밋밋한 분위기는 강력했다. 한동안 뻥져있다가 불을 끄긴 했다만 아침까지도 그 멍함은 지속됐다. 일본의 귀여니라 불리는 와타야 리사라서 그런지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라는 소리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귀여니도 성대 수시로 붙지 않았었나. 둘다 비슷한 경위라고 생각된다.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다룬 이야기는 읽는 동안 금방금방 재미있게 넘어갔지만 뒷부분이 더 있을 것 같은 부분에서 끊겨버리니 뭔가 허전하고 궁금해져서 잠들기 전 혼자 상상의 나래를 한참 펼쳐야만 했다. 이런 마음도 여운이라고 해야되는건가.

보는 내내 솔직히 그 사람 생각이 안난 건 아니다. 읽고 있는데 왠지 니나가와의 이미지와 너무 비슷해서 생각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은 어두워보이는 이미지는 비슷하다만, 하지만 그렇게 어딘가에 몰두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내면을 들여다봤을 때는 전혀 닮지 않았다. 뭐. 그냥 생각이 났다고.

궁금한 점은 일본 원작에서 귀여니처럼 이상한 외계어로 나왔을지 하는 의문이다. 앗. 그 전에 일본에도 일본 나름대로의 외계어가 있을라나. 

 

	<죽음>이라는 단어를 읽을 때마다 라울이 생각나곤 했다. 라울은 아버지의 돌연한 죽음 때문에 그것에 대해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라울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에게 뭔가를 귀띔할 수도 있으셨을 텐데, 그러지 않으셨다고 안타까워하며, 그것이 무언지 알아내고 싶어했다.  나의 아버지는 살아 계시는 동안에 하실 말씀을 다 하셨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자세 좀 바로 해, 어머니한테 꾸중 듣지 말고>,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믿지 마라>, <콩라드를 본받아라>, <좀 깨끗이 먹을 수 없니? 냅킨은 뒀다가 개한테 주려고 그러냐?>, <내 시가 통 건네 다오>, <콧구멍 좀 후비지 마라>, <지하철 표로 이 쑤시지 마라>, <돈 간수 잘 해>, <그저 책만 들여다보고 있을 테냐? 가서 어머니 설거지하시는 거나 도와드려>.   그 모두가 완벽한 정신적 유산이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이상은 타나토노트를 읽다가 쓰러진 부분. 물론 웃다가. 이런 부분이 한 부분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책을 뒤적거려도 놓쳐버린 그 부분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불어가 가능하다면 작가님께 나도 모르게 '풉' 뿜어버리는 이런 부분, 추가 요청하고 싶다.

 지인들에게 물어도 모두 이 부분에서는 쓰러졌다고 한다. 뭐, 관계기관에 대한 비밀이 밝혀졌을 때도 뒷통수를 후려맞은 것 같았다는 사람도 한둘은 아니었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 정도라면 어느 정도 읽어가며 예상하거나 기대하는 바가 크므로 난 '깜놀'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 시리즈였다. 이런 박진감은 소수 정예의 작가에게만 느낄 수 있어 편식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