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서량이 많지 않아 한번 읽을 때 책 선정에 고심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자주 가는 블로그 주인의 책 목록이나 독서아카데미의 추천도서,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를 이용한다. 그중 이책은 가수 이적씨의 네이버 서재에 꽂혀있어 구입하게 되었다. 예전부터 작사가들의 글쓰기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패닉 시절부터 솔로 앨범까지 감미로운 가사와 전달력이 어디서부터 시작된걸까 반신반의하며. 

 처음 부분은 의아했다. 스티븐 킹의 자서전을 잘못 샀나 싶을 정도로.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그래서 더 느리게 읽었고 그러다 보니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이지 스티븐은 앞 어딘가에 이러이러해서 먼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썼을 것이다.   

 당신만의 놀이터를 잘 구사하길 바란다는 조언과 함께 1장이 끝나고 본격적인 글쓰기 수법에 대해 언급했다. 지금이구나! 샤프펜으로 줄을 그으며 보니 예상보다 진도가 팍팍 나갔다. 

 3년된 일기장이며, 단상을 정리해두는 블로그며, 모든게 눈앞에 스치며 ’이게 잘못된 거구나. 길게는 써도 속시원하지 않은 글 다 문제가 있었다’ 싶었다. 

 아래는 스티븐이 나를 훈계하는 말들이다. 두고두고 보며 생산적인 습관을 만들어야겠다. 

	"죽어라고 열심히 노력하기가 귀찮다면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써라."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은 글을 쓸 시간도 없는 사람이다."  "텔레비전에 대한 덧없는 욕구를 벗어던진 사람들은 대개 책 읽는 시간이 즐겁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마련이다. 나는 저 끊임없이 지껄이는 바보상자를 꺼버리기만 하면 작품의 질은 물론 삶의 질까지 향상된다고 주장하고 싶다."   "내가 권하는 정력적인 독서 및 창작 계획도 - 날마다 4~6시간 - 별로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하루에 열 페이지씩 쓰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3개월 동안 쓰면 18만 단어가 되는데, 그 정도면 책 한 권 분량으로는 넉넉한 셈이다."  "단,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작품을 쓰면서 완고하고 보수적일 필요는 조금도 없다."  "수정본 = 초고 - 10%"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 직전이 가장 두려운 순간이다. 그 순간만 넘기면 모든 것이 차츰 나아진다."
페이지 :  여러 페이지?

  새해 목표에도 있지만 제발 혼자 ’착각하지 말기’ 여기서도 적용이다. 진실만을 수용하고 받아적어야 한다. 상상력은 볼륨을 잠깐 줄여볼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쓰되 (생략)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들을 섞어넣어 독특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페이지 : 196

 친구들은 나의 직장생활 사진을 무척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그를 대신하여 장래희망을 이뤄어줬다며 대리만족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옛 추억을 떠올리곤 흐뭇해하기도 하고, 그저 아이들에게 동화되어가는 티없는 맑음을 부러워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읽으면서 스티븐이 말한 저 이유가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다른 독특함에 갖는 호기심. 

 예전에 브로콜리 부장님께서 누누히 말씀하셨던 것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어김없이 보여주는 것도 베품의 일종이 될 수 있다. 그걸 조금은 색다른 방법으로 해보는게 어떨까. 주변에서 계시를 주듯 도전할 과목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참 묘하다.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직접적으로다가 얘기해주시다니.

 
 그리고 읽다가 ’와! 공감대 형성되는 부분이다’하고 보니 

	"나는 독서 속도가 느린 편인데도 대개 일년에 책을 70~80권쯤 읽는다. 주로 소설이다."
페이지 : 176

 4~5일에 한권씩 뚝딱 해치우는 격. 이 정도는 읽어줘야 되는구나. 그래서! 오늘은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준비해두며 읽어줬다. 음하하하! 시작이다! (그런데도 시간이 별로 안나는 건 핑계일까) 


 뒷부분으로 갈수록 전문적으로 소설을 쓰기 위한 사람들을 위한 책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서술, 묘사, 대화 중심으로 리듬과 장단을 따라 자연스럽게, 플롯도 생각하지 말고 직관에 의존한 상황을 고려하며 써내려가라던지, 인물의 겉모습을 직접 설명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던지, 그런 점에선 직유법이 좋다던지, 신선한 이미지와 쉬운말을 쓰라던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대화문에 대한 스킬을 키우라던지 등등. 이참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 단편이라도 하나 써볼까 자꾸 용기를 준다.  

 아래는 스티븐이 읽은 둘링 소설 속 재미있게 표현된 부분이라며 예문으로 제시해놓았다.

	그녀는 그의 몸 위에 걸터앉아 포트를 연결할 채비를 했다. 남성과 여성의 어댑터를 준비시켜 이제부터 입력과 출력이 가능하고 서버와 클라이언트, 매스터와 슬레이브가 서로 왕래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바야흐로 고성능의 생물학적 기계 두 대가 각각의 케이블 모뎀을 결합시켜 서로의 프로세서에 접속할 준비를 마쳤다.
페이지 : 231

 중간에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한 첫 걸음으로 낸 숙제도 있다. 스티븐의 웹페이지에 찾아가 쏼라쏼라 영어글 사이로 한국어로 숙제를 제출해볼까도 고려중. 으히히히!   

 훈계 다음으로 좋았던 부분은 예를 들기 위해 언급되었던 수많은 책들, 친절하게 자신의 북클럽을 마지막에 소개해놓은 것은 항상 헤매는 나에게 또 하나의 강추도서로 자리매김했다. 

 아마 이 리뷰를 다 끝마치는 그때(여러 날 작성했으므로), "내 리뷰는 전혀 유혹하는 글이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마법 같이 갑자기 내가 스티븐 킹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잖나. 그럴 때 그는 근심과 허위의식을 버리고 그냥 쿨하게 쓰라고 했다. 독자(라고 말하기도 뭐하지만)에게 전달이 얼마나 잘 되나가 중요하다고. 그런 의미에서 잘 전달되고 있나?   

겉표지의 밋밋함은 금방 차치되고 많은 여백과 공감가는 이야기들에 폭 파묻혀 재미나게 읽어나갔다. 더군다나 국어선생님이 과학을 분야에 경계없이 닥치는 대로 읽고 모아 고전이건, 외국작품이건, 현대시건 연관성으로 결부시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이를 영역전이라고 표현했다.) 

 몇 달 전, 브로콜리 부장님께서도 한잔 걸치며 박사님이 되시곤 느끼신 점을 주저리 말씀해주셨다. "과학하는 사람들은 너무 전공에 치우쳐서 다른 분야는 멍청해. 과학이란게 실상 사회의 여러 분야와 접목되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걸 간과하는 것 같아. 여러 분야의 책을 접하면서 합치고 변형하고 거꾸로 생각되는 걸 다시 표현할 수 있어야 해. 생각만 있고 말할 수 없다면 아무 쓸모 없는 거잖아." 부장님이 원하신게 이런 것이었으리라.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러움, 자연에 대한 애틋함이 생긴다. 

	내가 너에게 벗을 사귀는 것에 대해 말해주마. 모든 사람들이 엄씨의 똥을 가져다 써야 땅이 비옥해지고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다네. 하지만 그는 아침에 밥 한 사발이면 의기가 흡족해지고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한 사발 먹을 뿐이지. 남들이 고기를 먹으라고 권하였더니 목구멍에 넘어가면 푸성귀나 고기나 배를 채우기는 마찬가지인데 맛을 따져 무엇하겠느냐고 대꾸하고, 반반한 옷이나 좀 입으라고 권하였더니 넓은 소매를 입으면 몸에 익숙하지 않고 새 옷을 입으면 더러운 흙을 짊어질 수 없다고 하더군. 엄행수는 지저분한 똥을 날라다 주고 먹고살고 있으니 지극히 불결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가 먹고사는 방법은 지극히 향기로우며, 그가 처한 곳은 지극히 지저분하지만 의리를 지키는 점에 있어서는 지극히 높다 할 것이니, 그 뜻을 미루어 보면 비록 만종의 녹을 준다 해도 그가 어떻게 처신할는지는 알 만하다네.
페이지 :  16

 
 예덕선생에 비유된 쇠똥구리는 당장 먹지 않을 똥을 땅에 묻어두어 대기 중으로 날아가 버릴 질소를 흙 속에 보존하고 또 땅을 파헤쳐 공기를 잘 통하게 함으로써 식물이 자라기에 비옥한 토양으로 만들어준다. 그런데 이렇게 이로운 쇠똥구리가 최근 사료에 들어간 항생제 탓에 사라져버렸다. 역시나 땅속에 통로를 뚫어 식물의 뿌리나 공기와 물의 유입을 돕는 지렁이도 요새 독한 화학 비료와 살충제 때문에 그 수가 많이 줄었다.

 기생충은 숙주의 면역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조절T세포(면역 반응을 억제시키는 역할-장 속 음식물에 대해 염증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억제한다.)를 통하여 숙주의 면역계를 억제시키도록 진화해왔다. 기생충이 없어지면 면역 반응이 지나치면서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게 된다. 

 인간의 필요성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잡초로 분류된 여러 식물들은 표토에 결핍되어 있는 광물질을 토양 하부에서 위쪽으로 옮기고 딱딱한 토양층을 부수어 농작물 뿌리가 깊은 곳에서 양분을 흡수할 수 있게 하며 토양을 섬유화(토양을 덩어리지게 하는 작용)시켜 비옥하게 만든다. 어떤 잡초는 특정 성분 결핍이 일어났을 때만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잡초를 솎아내다 보면 주변 작물들의 자생력이 줄어 큰 재해가 왔을 때 겉잡을 수 없는 피해를 안게 된다. 모두 인간의 손길이 파괴의 원인인 것이다. 뭐랄까.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가 이런 역할을 했나보다. 잡초같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역.(왜 이런게 떠오르지?=_=)

 이렇게 여러 예를 들어주면서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며, 有가 있기 위해서는 비어있는 곳, 無가 존재해야 함을, 필요없어 보이는 생물들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생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순수도 그렇다. 순수하다고 깨끗하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순수한 물은 생체 기관에 독성이 강한 독처럼 작용한다. 생체 기관에 흡수되면, 혈액과 체액 속에 들어 있는 모든 광물성 염분은 그 물 쪽으로 몰려든다. 왜냐하면 순수한 물은 광물성 염분이 더욱더 잘 용해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뇨병 환자의 핏속에 응축되?기 위해서 이 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당뇨병 환자의 신장은 그 독소들을 여과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자의 경우에 반드시 필요할 수 있는 이 투석이 혈청 염분 농도가 정상인 사람에게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칼슘과 칼륨이 몽땅 빠져나가 버려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심장은 핏속에 녹아 있는 칼슘과 칼륨의 균형에 의해 유지되는 전류 덕에 뛰는 것이다. 순수한 물의 흡수는 또한 위출혈이나 장출혈, 또는 피하 출혈을 일으킬 수도 있다.
페이지 :  53~55

  하물며 자연에서도 이런데 사회에서 순수성을 강요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이성과 비이성을 멋대로 구분짓고 나만의 종교를 구속하고 나와 너의 유전자를 열성과 우성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이기주의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순수니 뭐니 논할 자격 조차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잠깐 언급이 있다. ’우생학’을 신봉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정치적으로 악용한 그는 사회의 부적격자에 대한 집단 살인 허가 문서인 ’T-4 프로그램’을 극비에 실행하고 정신병자, 백치, 강간범, (뭔지는 모르겠지만)부적격자을 거세하는 거세법을 시행했으며 결국 ’홀로코스트’까지 이어지게 된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울 때 가장 아름답고 안정하다. 수렵 시대의 원시인들에게 꼭 필요했던, 영양분을 체내에 축적해둘 수 있는 유전자를 이제는 '비만 유발 유전자', '성인병 유발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제멋대로 부르는 우리들. 그렇게 진화되게 되어있던 우리 몸의 방어체계들, 약간의 질병과 아픔을 느끼는 능력을 약으로 약화시키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시도하고 싶은 욕구를 일으켰다. 

 몇 곡은 주사위 두 개로 작곡했다는 모차르트를 보고 12월28일의 랜덤 유희곡도만들고 싶었고, 예전에 작가의 로리타적인 성향을 다뤘던 다큐를 보고 꼭 읽자 다짐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상시시켜줬고, 카메라 루시다라면 드로잉할 수 있을꺼야 호기심도 생겼고, 왜상을 이용해서 내 얼굴도 한번 그려보고 싶었다. 나중에 여유가 생겨 이층집에 살게 된다면 계단벽 쯤에 아나몰포시스 하나쯤 걸어, 이층으로 오르는 이들에게 깜짝 선물도 주고 싶어졌고, 내 실루엣과 내 앰비그램 네임을 걸어두고 싶기도 했다. 아래는 내 앰비그램 네임. 마치 가운데 글자에 바늘구멍을 뚫어놓고 들여다보는 카메라와 같이 좌우 글자가 상하로 뒤바뀌어 있다.

 아버지께 장기를 배워두긴 했지만, 커서 좀처럼 함께 앉아 둘 기회가 생기지 않아 실력이 많이 녹슬었다. 그와 버금가는 체스를 대학 때 친구와 한번 두어본 적이 있는데 딱 한번 뿐이어서 규칙 조차 제대로 기억 나지 않는다. 차근차근 수를 두는 법을 배워 나중 내 아이와 한판 겨루어보고 싶다. 

 미술 실기시험이라면 바닥을 깔아줬던 터라 ’난 조예가 깊지 않아.’하고 넘겨버리기 일쑤였다. 일찍이 이 분야에 줄을 놓아버린 나에게 이 책은 ’사실은 네 주위에 있는게 다 예술이야. 넌 벌써 다 해봤어!’라고 알려줬다. 어릴 적 밥도 굶어가며 달래들었던 뱀 주사위 말판, 인상 깊던 레닌의 초상화, TV유치원 하나둘셋이나 뽀뽀뽀에도 간간히 등장했던, 투사를 이용한 라이브 연극. 주마등, 어린 나에게 철학이란 아득했던 <소피의 세계>, 우리 애들 모두 신기해하며 이리저리 글자 찾기에 열광하던 손민아씨의 <요한계시록>, 무섭던 인형풍경. 전공자로서 깜찍한 아이디어인, 피에로 만조니의 <세계의 대좌>, 갖고 싶던 만화경까지…. 인형풍경에서는 작가가 의도치 않았던 얼굴을 내 마음대로 찾아버렸고, 진중권씨가 낸 수수께끼 simulate grid를 나는 그럴 듯한 limited sugar로 바꿔버렸다. 낙서로만 보이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낭만적인 리버스가 부러웠다. 

	그 여인이 내 마음을 찢어놓으면 어떡하지?

 한심하게 생각했던 자바체프 크리스토씨의 포장 예술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고, 미로로 인해 다시 보이는 키스 해링의 작품들이 좋아지고, 종이접기에 뛰어들고 싶어졌다거나 <카니발과 금욕기간의 싸움>의 우르주스 베얼리 정리한 그림들에서 웃어버렸다거나.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어려운 예술의 영역이 아닌, 해보고 싶은, 만나 보고, 갖고 싶고, 알고 싶은 것들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평생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친구로 여기는 사람들은 인생이 얼마나 즐거울까 처음으로 샘이 난다. 이번 달에 할 수만 있다면 미술관에 꼭 들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