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졸업식날, 누군가 제 선물을 챙겨가지 않은 덕에 이 책이 덩그러니 남았다. 연락을 해보았지만 귀찮은지 가지러 오지 않겠단다.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는데 그냥 내가 선물 받았다 생각해야지. 표지를 넘기니 賞이라고 크게 도장이 찍혀있다. 그래. 선물이 아니라 지난 일 년 잘했다고 상 준다 생각해야지. 그렇게 곁으로 온지 네 달 만에야 첫 장을 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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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널리 퍼지게 되나.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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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구절과 함께 있는 머리말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씌여진 것이었다. 제목만 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수필집을 여러 권 엮은 거라 생각했는데 포리스트 카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한 자서적인 회상록에 가까운 소설이었다. 뒷장 뉴멕시코 대학출판부에서 곁들인 글에서도 할아버지는 실존 인물에 가깝지만 할머니는 저자의 증조할머니와 어머니를 반반씩 섞은 가상의 인물이라고 했다. 그래도 글을 읽는 내내 그는 행운아라 여겨졌다.
인디언의 생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던 난 자연의 이치에 몸을 내맡기는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교육방식에는 배울 점이 많았다. 필요한 부분에 표시를 해두며 반복되는 부분에선 곱씹었다. 사실 다 말하고 싶지만 줄이고 줄여 몇 가지만 꼽자면 이러한 것들이다.
칭찬을 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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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산꼭대기까지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깨워주겠다"고는 하시지 않았다.
"남자란 아침이 되면 모름지기 제힘으로 일어나야 하는 거야."
할아버지는 조금도 웃지 않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신 후 여러 가지 시끄러운 소리를 내셨다. 내 방 벽에 쿵 하고 부딪치기도 하고, 유난스레 큰 소리로 할머니에게 말을 걸기도 하셨다. 사실 나는 그 소리 때문에 눈을 뜬 것이다. 덕분에 한발 먼저 밖으로 나간 나는 개들과 함께 어둠 속에 서서 할아버지를 기다릴 수 있었다.
"아니, 벌써 나와 있었구나!"
할아버지는 정말 놀랍다는 얼굴로 말했고,
"예, 할아버지."
내 목소리에는 뿌듯한 자랑이 묻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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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 :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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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가 더불어 사는 법, 그 소중함을 가르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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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이치란 거야.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 흑표범인 파코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 너도 꼭 알아두어야 하고."
(중략)
나는 그놈들 주위를 빙 돌다가 땅에 털썩 주저앉아서 한놈 한놈 자세히 관찰했다. 그러다가 일어나서 다시 그 둘레를 한바퀴 돌았다. 신중해야 했다. 결국 나는 손과 무릎으로 땅바닥을 짚고 칠면조들 사이를 기어다니면서 비교를 하고 나서야 그중에서 가장 작은 세 놈을 집어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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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 :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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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린 꼬마아이라고 해도 일을 맡겼을 때는 강한 믿음을 보여주어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도록 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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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내 몫이었다. 나는 오는 도중에 한 방울의 석유도 흘르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했다. 그 석유통을 가득 채우려면 무려 5센트가 있어야 했다. 할아버지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번도 간섭하지 않고 내가 알아서 하도록 그 일을 맡겨두곤 하셨다. 그만큼 나를 믿으셨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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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 :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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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하는 법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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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든 사람이든 간에 자기가 아무데도 쓸모없다고 느끼는 건 대단히 좋지 않다는 게 할아버지의 설명이셨다. (중략) 링거를 모드와 짝지어준 것은, 링거가 모드를 도울 수 있게 하여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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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 : 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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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를 갖추는 법에 대해 가르쳐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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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대로 석유통을 내려놓았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왔을 때, 나름의 예의를 표하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새겨들으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할아버지가 누누이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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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 :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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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아이의 편에서 이해를 하고 공감하고 아이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강요나 설득 없이 최대한 스스로 하도록 배려를 하고 그게 하물며 잘못된 결정이라 해도 성장에 필요한, 더없이 소중한 경험이라며 빼앗지 않았다. 염소 일화도 그 나름이었지만 고아원에서 돌아오는 일화는 얼마나 작은 나무의 의견을 아끼시는지 확고히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맞게 여섯 살 다운 어른스러움을 갖춘 작은 나무가 대견스러웠다.
또 할아버지는 책 속의 세상을 굳게 믿고 현실처럼 그 상황에 골머리를 앓고 충격도 받으시는 무척이나 순수한 분이셨다. 글을 모르시는 관계로 할머니가 저녁마다 소설을 읽어주시는데 내용 중 특별히 흥미롭거나 오랫동안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이 나오면 흔들의자를 멈추신다. 내가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로맨틱해보였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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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이름은 보니 비(bonnie bee), ’예쁜 벌’이었다. 어느 늦은 밤, 할아버지가 "I kin ye, Bonnie Bee."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나는 할아버지가 "I love ye."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랬던 것이다.
또 할머니가 이야기를 하다가 "Do ye kin me, Wales?"라고 물으실 때가 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I kin ye."라고 대답하신다. 이해한다는 뜻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사랑과 이해는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신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 이해하고 계셨다. 그래서 두 분은 서로 사랑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세월이 흐를수록 이해는 더 깊어진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보시기에 그것은 유한한 인간이 생각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들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래서 두 분은 그것을 ’kin’이라고 불렀다.
할아버지 설명에 따르면, 옛날에는 사람, 이해를 함께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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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 : 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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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링거가 죽었을 때 슬퍼하는 작은 나무를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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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할아버지는 내가 나이가 들면 링거 생각이 날 것이고, 또 나도 생각을 떠올리는 걸 좋아하게 될 것이다, 참 묘한 일이지만 늙어서 자기가 사랑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되면 좋은 점만 생각나지 나쁜 점은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나쁜 건 정말 별거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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