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여행기로 보이는, 책껍질로만 봐서는 된장녀 아이템으로 보이는 이 책의 정체는 책에 대한 책.

런던은 핑계에 불과했을 뿐.

정해윤씨는 한겨레 고정 필자로 익히 알고 있었고 책과 사색에서 내가 바라는 부분이 비슷하다고 할까, 그녀가 추천하는 책은 곧잘 사 읽게 될 정도이다. 음... 서른을 바라보는 날선 감성? 텍스트에서 눈물 한방울, 열정 한모금을 추출해서 쓴 서평들. 왜 이런 분이 중앙으로 나가지 않고 있는건지 의문을 가졌을 정도.

그런데 그런 그녀가 무슨 된장삘의 여행기를! 이라며 분노를 머금고 안 보려 했으나 '이건 그냥 여행기가 아니라 우리 나라에도 한번은 나왔어야 할 진짜 여행기다'라는 한겨레의 서평을 읽고 결국 주문을 걸었다. 
이건 책표지 조차;;;

사실 이런 여행기는 내가 써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곧잘 런던과 파리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 곳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
런던에 가면 댈러웨이 부인의 산책로가 있고, 존 레논이 나지막히 앉아 구멍을 셌던 알버트홀도 있고,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는 축구팀들의 거리가 있고, 이완 맥그리그가 Lust for life에 맞춰 달리던 그 골목도 있고, 하다못해 엘리와 라이더가 신혼을 꾸렸던 부자동네(이름이 기억 안나는군)도 있다.

별로 상식이 없는 나도 이렇거늘 독서광인 해윤씨에게 런던은 이야기의 보고.
그것도 참 전형적인 관광지인 웨스트민스트사원, 트리팔가 광장 같은 곳에서도 수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머리말만 읽고 던져두었다가 여행길에 다시 꺼내 읽은 이 책은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확 몰입된다. 뉴턴 부분에 이르러서는 거의 찬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윤씨의 글쓰기의 가장 특별한 점은 그 때 그 때 가장 알맞은 텍스트를 이끌어 올 수 있다는 점.
둘러보이는 모든 사물에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 또한 특별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늘상 인간으로서의 인간이 있다. 열정이 있으나 게으르기도 하고, 한편 강하지만 의외로 약하고, '항상 선으로 향하게 하는 힘'에 의해 움직이는 그런 인간.

런던이 문화예술의 도시이긴 하지만, 제국주의의 오명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 점도 놓치지 않는다. 가장 '영국'적이라할 빅토리아대에 예술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세워진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 앞에서 그녀는 피지에서 만난 인도인들을 떠올린다. 일제시대에 조선사람들이 하와이로 끌려갔듯이, 대영제국에 의해 인도인들은 세계 각지로 끌려갔다. 그 시대에 제인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을 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