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청렴한 관리와 부패한 탐관은 같이 존재해 왔다. 이 둘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이다. 다만 그 수효에 있어서 탐관(貪官)이 청관(淸官)을 압도할 뿐. 청관이 많으면 그 나라는 융성할 것이고 탐관이 다수인데다 백성을 쥐어짜서 빨아먹는 고혈이 늘어날수록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이 책은 중국역사에 있어서 군현제(郡縣制)가 시행된 이래의 전제왕조(專制王朝) 역사 2,000년의 기간 중에 대표적인 청백리와 탐관오리를 선별하여 그 교훈을 담고자 한 책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13명 이고 사례별로는 11 경우이다. 먼저 탐관오리는 세 경우이고 청백리는 여덟 경우이다.
중당(中唐) 시기의 강직한 어사(御史)로 이름을 떨친 송경(宋璟), 오대(五代) 시기의 명재상인 풍도(馮道), 북송(北宋)시기 강력한 개혁 정책을 펼쳤던 경력변법(慶曆變法)의 주창자, 재상 범중엄(范仲淹), 북송시기의 개봉부 지부(知府; 서울시장)로 있으면서 공정한 판결로 이름을 떨쳤던 포청천(包靑天), 명나라 가정(嘉靖) 년간에 황제를 욕한 상소(治安疏)를 올려 문제가 된 해서(海瑞),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때의 청백리로 이름을 떨친 직예순무 우성룡(于成龍), 청나라 초기의 청백리였던 정판교(鄭板橋), 청나라 말기 아편전쟁의 영웅 임칙서(林則徐)를 청백리의 표본으로 소개하였다.
탐관오리의 전형은 세 경우인데 동한(東漢) 시기의 대장군 양기(梁冀)부부, 명나라 가정제(嘉靖帝) 때의 엄숭 부자(嚴嵩 父子),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후기의 화신(和珅)이다.
여기서 청백리의 기준이 단지 청렴하고 남에게 패악을 끼치지 않는 사람에 한정한다면 문제가 있다. 백성의 재물을 갈취할 자리에 있으면서도 깨끗하고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으나 정치와 행정은 고루하고 평범하거나 오히려 그 이하였다면 이를 어찌 청관의 자리에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유능한 행정처리와 함께 백성들의 고통을 줄여주고 거기에 더해 청렴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해서(海瑞)와 정판교는 청백리로 부르기에는 조금 함량미달이 될 것 같다. 청렴은 하였으나 백성들의 생활을 점차 나아지게 한건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
두 사람 모두 백성을 위한 위민(爲民)에는 어느 정도 역할을 했으나 이를 2,000년 중국역사의 대표적 청관 표본으로 삼는 것은 다른 관리와의 비교시 형평의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 이들은 평범한 관리에 불과했다. 해서는 황제에게 욕하는 직소(直訴)를 올렸기 때문이고 정판교는 시(詩) · 서(書) · 화(畵)로 이름이 높았을 뿐, 딱히 백성들을 위한 위민치세(爲民治世)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든 저자가 그렇게 선정했다니 할 말은 없다.
이 중에서 나는 청나라 황금기를 구사한 '십전노인(十全老人)' 건륭제때 발생한, 간신이며 탐관오리의 대명사인 화신(和珅)에 주목했다. 굉장히 내용이 생소하고 특이한 경우로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강희-옹정-건륭의 3대 130년의 황금기에 대한 시각을 달리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건륭제 말기에 벌어진 이 희대의 탐관때문에 부정부패의 싹이 절정을 이루었고 이후 청이 굴욕적으로 망하는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화신(和珅)은 저자가 중국 역사상 최고의 탐관오리로 지목하는 인물이다. 화신은 말년의 건륭제를 구워삶아 챙긴 재화(財貨)가 16억냥에 이른다는 것. 이는 당시의 청나라 1년 세입을 7,000만 냥으로 추산할 때 20년 세입을 넘어서는 거대한 축재(畜財)였던 것이다.
화신이 20년간 권력을 움켜쥔 배경에는 이 건륭제가 큰 역할을 하였다. 건륭제는 25세에 즉위하여 강희, 옹정 두 황제가 키워놓은 나라를 이어받아 잔뜩 쌓여 있는 재부를 이용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고 한다.(이 책 179쪽)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건륭제는 강남을 여섯 차례나 순시하여 재화를 낭비하였다. 충신들의 간언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즐겼으며 죽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4차 강남 유람에서 항주(抗州)의 화류계를 찾아 나서자 황후가 이를 만류했고 화가 치솟은 건륭이 그녀를 북경으로 돌려보내 우울증과 홧병으로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176~182쪽 참조.)
화신은 이런 건륭제에게 아첨하여 그의 입맛을 맞추었고, 비자금을 조성하여 황제의 낭비를 부추겼으며 일부 재물은 자신의 입에 처넣었다. 일종의 비자금 담당 총신(寵臣)이었다. 화신은 또 건륭제가 가장 총애하던 화효 공주와 자신의 아들 풍신은덕을 혼인시킴으로써 건륭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신하가 되었다.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명나라는 중국 역사상 탐욕과 부패가 가장 심각했던 왕조였다. 그 이유로는 황제의 전제권력으로 특권행사, 향락에만 빠진채 정사는 내팽개친 20년 무참석 조회(朝會) 상황, 관리들에게 지급되는 박봉(薄俸), 당시 사회적으로 만연한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방식(가난을 멸시하고 貪官을 우러러 보는 풍조) 때문이라고 한다.(102~103쪽 참조.)
그에 반해 중국 역대 왕조 중에서 백성들이 비교적 편안한 삶을 누린 왕조는 송대(宋代), 특히 북송(北宋)시대였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황제의 문치주의(文治主義)와 함께 비교적 온순한 정책을 펼쳐 경제와 문화가 빠르게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일례로 조광윤(趙匡胤; 송나라 太祖)은 나라를 위해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죽이지 않겠노라 맹서하고 비석까지 세워 증명하였다고 한다. 세금징수의 공정함을 추구하였고 관리들에게 녹봉을 넉넉히 주었다는 것.
정식 봉급외에도 직책수당, 직급수당, 춘추에 지급하는 옷감 등등에다 관리의 개인 시종에게까지 옷감과 식량이 지급되었다. 이 상황에서 부정을 저지르면 처벌을 받는 것은 물론 관리 퇴직시까지 그 기록이 남아 인사이동 때 참고 되었으며 퇴직연금도 원래 등급보다 한 등급 낮게 지급되었고 자제들에게 주어지던 혜택도 박탈당했다. 이런 점 때문에 부정을 저지른 관리는 문중에서도 홀대 받아 집안 묘지에 묻히지도 못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공무원들이 높은 급여와 안정된 연금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 대형참사를 일으키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번 세월호 참사도 그 연장선상에서 파악해야만 한다.
특히 종교를 앞세워 노력봉사를 강요하는 행태는 엄히 다스려야 한다. 동종업계 급여의 절반만 받고 생활하면서 절대구원의 '예수'를 믿으라는 것은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 알아서 먹고 살라는 것과 같다. 대명천지(大明天地)에 무슨 종교봉사인가! 신을 믿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걸 빙자해서 저임금으로 신도들의 고혈을 짜내는 것을 국가가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은 위정자의 책임유기이며 방조혐의라 볼 수 있다. 이런 사이비 종교가 한 두곳이 아니다. 제발 적당히 믿어라. 무슨 천국이 있고 내세가 있더란 말인가?
책을 읽으면서 의문을 느꼈던 것은 원대에 시행되던 민족 차별정책인 4등급 분류를 청나라에까지 인용한 내용(240쪽)이다. 물론 만주족(滿洲族)과 한족(漢族)의 차별은 있었겠지만 한족과 남방 한인(원대의 남송지역에 거주한 남인과 마찬가지로 청대의 남방지역 거주 한인)을 차별하였다는 것은 어디에 나오는 근거인지 모를 일이다.
또한 청나라 관련 인물들을 가만히 읽어보면 저자가 한족 출신보다 오랑캐 야만 족속인 만주족을 은연중에 배척하고 멸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중국 고금역사를 통해 청백리와 탐관오리에 대한 분류와 분석은 읽어볼만한 내용이다. 지금도 탐관오리는 도처에 깔려 있고 백성은 핍박받는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인가? 지속적인 감시활동과 철저한 대책시행이다. 대책준비가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