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무슨 파티라도 벌어졌던 것일까? 소설은 손님들이 뿔뿔이 흩어져 돌아간 지 한참 후 시계가 12시30분을 칠 즈음 시작된다. 밤 12시 30분 ~ 감성에 젖어들 시간.

주인이 첫사랑 얘기를 제안한다. 3명의 중년남자가 하루를 다 보낸 시간에 첫사랑,  단어만으로도 설레이는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한명은 첫사랑의 기억이 없고, 한명은 첫사랑과 결혼까지 해서 특별할게 없다고 했다. 나머지 한명, 독신자인 희끗희끗한 머리에 블라지미르 페트로비치의 평범하지 않는 이야기, 아니 이야기에 자신없는 블라지미르가 이주일동안 써 온 수첩에의 기록을 읽어주는 것이다.

= 1833년 모스크바, 그 해 여름 열여섯살 소년의 첫사랑 보고서 =

나에게 친절하면서도 무관심한 아빠, 다른걱정거리에 여념이 없어 하나밖에 없는 나에게 무관심했던 엄마. 대학입시준비를 설렁설렁 하고 있던 나는 칼루가 관문 근처 별장을 빌렸다.

나의 사춘기 시작을 알리는 글 :

“내 몸 안에서는 피가 약동하고 마음은 뿌듯했으며-매우 달콤한 기분이 들어 스스로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나는 줄곧 겁에 질려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모든 것에 놀라움을 느끼면서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마음의 준비를 하고있었다. 마치 아침놀이 물들었을 때 종루 주위를 나는 제비떼처럼, 공상은 언제나 같은 환상의 주위를 빠르게 맴돌면서 장난치는 것이었다.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슬픔에 젖기도 하고, 어떤때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노래처럼 경쾌한 시나 황혼의 아름다움이 자아낸 눈물과 우수를 통해, 청춘의 용솟음치는 삶의 기쁨이 마치 봄풀처럼 파릇파릇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의 첫사랑을 알리는 글:

이 즈음 만나게 된 옆집처녀 “푸른 나무딸기 덩굴에 둘러싸인 풀밭위에 장밋빛 줄무늬옷을 입고 하얀 수건을 쓴 날씬한 몸매의 키가 큰 처녀”를 본 후, “내 방으로 도망쳐 들어와 침대에 몸을 던지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심장이 마구 방망이질 쳤다. 나는 몹시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즐겁기도 했다. 나는 지금껏 경험해 본 일이 없는 흥분을 느꼈던 것이다. 심장이 숨 가쁜 고동은 멈췄지만, 어쩐지 기분좋게 죄어드는 것 같았다.”

“그녀를 알기 이전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에 없을뿐더러 이 세상에 살아 있었던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물속의 물고기처럼 기분이 좋았다.”

“나의 열정이 시작된 그날 나는 이미 단순한 어린 소년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남자였다. 나는 그날부터 나의 열정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날부터 나의 고통도 시작되었다고 덧붙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곁에서는 먼지투성이의 쐐기풀 위를 하얀 나비들이 한가롭게 날개를 팔랑거리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날쌔 보이는 참새 한 마리가 근처의 동강 난 붉은 벽돌위에 앉아서 연방 온몸을 앞뒤로 돌리며 꼬리를 활짝 펴고는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로 짹짹거리고 있었다. 여전히 의심 많은 까마귀들은 벌거숭이가 된 자작나무 꼭대기에 높이 높이 앉아서 이따금씩 까옥까옥 울어댔다. 태양과 바람은 자작나무의 성긴 나뭇가지를 조용히 희롱하고 돈스코이 수도원의 종소리가 때때로 구슬프고 은은하게 들려왔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고 또 귀를 기울인다. 그러면 그 어떤 이름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에 넘쳐흐른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이런것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내 마음속에서 떠돌아다니는 어떤 것에도 이름을 붙일수 없었다. 혹시 나는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이름, 즉 지나이다 라는 이름으로 부를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지 않으려 해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걸요!”

그 뒤 지나이다와의 관계에서 일생에 두 번다시 찾아오지 않았던 행복감도 맛 보았고, 슬픔이 심장을 조용히 갉아먹는 것 같은 고통도 맛 보았다. 그러다 모든게 끝났다. 나의 모든 꽃들이 일시에 꺾여 내 주변에 여기저기 내 버려지고 짓밟힌 채 깔려 있었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 난 나는 두달 후 대학에 입학했고, 6개월후쯤에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아버지는 “내 아들아,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해라. 그 행복, 그 독을 두려워해라.....”라는 편지를 내게 남기고 돌아가셨다.

투르게네프의 실제 삶과 연관지어본다면 그냥 지나칠수 만은 없는 첫사랑 이야기..묘사가 뛰어나 읽는 재미까지 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에 수록된 첫사랑이나 귀족의 보금자리보다는 러시아 교과서에 까지 수록되어있다는 마지막에 실려있는 무무라는 단편이 더 인상깊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주인을 신뢰하는 눈빛을 보낸 무무가 생각나서 많이 슬픈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