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 요코를 좋아하세요?"

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대답을 하지 못한채 그 사람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 볼지도 모르겠다.

 '당신도 사노 요코를 아는군요. 그 작가가 보여준 세상을 만나보았군요. 그가 우리에게 선물한 건 하나의 책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의 세상이었음을 당신도 느꼈나요? 사노 요코의 책을 가슴으로 읽어야 했던 적이 당신도 있군요.'

 

 아마도 내 눈은 가슴 속 말을 전하느라 바삐 움질일 것이다. 사노 요코는 내게 그런 작가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함께 읽었다는 기쁨은 모든 독자들이 한 번쯤은 겪었을 것이지만 사노 요코가 보여준 감성과 따뜻함은 작가의 책을 함께 읽은 말로 하지 못할 기쁨을 이들에게 선물한다.

 

 물론, 내가 사노 요코의 책들을 다 읽어본 것도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다 이해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의 책을 읽으며 가슴이 아려봤고 그의 책을 손으로 쓰다듬어 봤고 누군가에게 그의 책을 가슴에 불어 줄 바람으로 선물한 적이 있을 뿐이다. 작가에게 내 마음의 도서관에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열한 살 우리 오빠>는 사노 요코의 창작동화집이다. 사노 요코는 이 책을 자신의 자전적 성장 소설이라 말한다. 그의 어린시절은 어떠하였기에 백만 번 태어난 고양이가 사랑을 위해 다시 태어나지 않게 되고 하늘을 나는 사자가 왜 잠이 들어 돌이 되어야 했을까? 아저씨의 우산을 피게 했던 또로록 또로록한 빗방울 소리도 어린시절에 들어있는 것일까?

 

 책을 읽는 동안 난 현실 속에 있지 않고 사노 요코의 환상 속에 있는 듯했다. 작가가 보고 싶었던 세상, 작가가  꿈꾸던 사람, 작가가 보고자 했던 세상을 함께 보고 느끼며 내가 앉아 있는 곳이 어디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사노 요코의 어린시절은 오빠와의 추억과 혹은 그리움 그리고 자신이 상상하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소중히 기억하고 마음에 간직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을 저장하는 곳이, 추억 하나 하나 저장하는 곳이 작가들은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데 사노 요코 역시 그럴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작가들은 마음 속에 얼마나 많은 방을 갖고 있으며, 그리움을 담은 병이 얼마나 많을까?

 

 이 책은 사노 요코를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쯤 손에 들어 볼 책일 것이다. 책의 내용이 너무 환상적이라해도 좋지 않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가 바라본 세상이라면.

 겨울날 도서관에서 보내는 하루는 생각보다 짧고 낮은 그것보다 더 짧아 이 책을 집어들고 몇 장넘기지 않자 어슴프레한 빛이 도서관 창문을 덮기 시작했다. 저녁이란 말이 들어간 제목보다 더 끌렸던 것은 에쿠니 가오리가 전해줄 감성이었다.

 

 숨을 쉬고 살고 있는지,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는 요즘은 마음에서 바삭거리는 소리에 밤마다 잠을 설치고 꿈 속에서 조차 물기 하나 없는 사막을 걸어야 했다. 그런 내게 비를 내려 줄 책을 찾다가 고른 책이 에쿠니 가오리였다. 소나기처럼 내리는 비는 인위적인 듯해 싫었고 새벽녘 혹은 저녁 무렵 맺히는 이슬 정도의 물기라면 바삭하게 말라버린 내 마음을 적셔줄 수 있겠구나 싶어 고른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노을이 질 무렵이면 사람 마음을 흔들어 버리는 원인 모를 습기를 담고 있었다.

 

  한 여자가 한 남자와 이별을 했다. 8년이란 시간을 그와 함께 보냈으며 그가 자신처럼 느껴진 적도 자신이 그처럼 느껴진 적이 있을만큼의 추억을 쌓았고 언제나 함께임이 당연한 듯한 일상을 보냈다. 익숙함이란 단어조차 쓰지 않을만큼의 가까움이 서로에게 있다고 믿었던 그녀에게 그 남자가 이별을 고한다. 이사를 해야겠다고, 그녀를 두고 자신 혼자서만.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늘 하던대로 일을 하고, 청소를 하고, 친구와 통화를 하고, 밥을 먹는다. 살이 찌지도 마르지도 않는다. 늘 하던대로. 리카를 보면서 자신이 했던 이별을 떠올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첫 이별은 수선스러웠다. 아파 죽겠다며 친구들과 술 마시는 밤의 횟수만큼 그 사람을 잊어갔던 첫 이별이었다.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이별 후의 시간은 어색하리만치 조용했다. 마치 일요일 오후의 시간들처럼.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 평소처럼 자신도 흘러간다. 달라짐이라고는 둘이 하던 일을 혼자서 하고, 둘이 하던 이야기를 혼자 중얼거리며, 그 사람을 떠올리는 시간이 그저 같이 있던 시간만큼 길어질 뿐이다. 무엇이라도 달라진 행동을 하고 혹은 울어버린다면 그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그와 함께 했던 일상이 무너졌음을 인정하게 될까봐 그저 전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마음 속에는 커다란 눈물의 호수를 만들며 스스로 울지 않아 다행이라고 거짓 위로를 하며.

 

 다케오 없는 일상이지만 다케오는 여전히 4일에 한 번씩 전화를 걸었으며 리카 역시 그 전화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떨어져 있으면서 그 사람의 목소리에 안도한다. 이어져 있다는 것, 그것이 설령 거짓이라 해도 좋을만큼의 아픔 그 속에서 리카는 하루를 살아간다.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  그런 리카의 아파트에(다케오와 함께 살던 아파트에) 다케오가 좋아하는 하나코란 여자가 들어와 같이 살게 된다. 말도 안 되는 동거생활. 그렇지만 전혀 어색함 없는 동거 생활에 책을 읽는 나조차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다케오를 그리는 리카, 다케오가 좋아하는 하나코, 누구의 여자도 될 수 없을 듯한 하나코.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 리카의 일상은 전처럼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과 같지 않음을 리카도 다케오도 그리고 하나코도 알고 있다. 다만, 현실을 사는 이유처럼 전과 다르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없기에 그들은 살아 간다. 마음을 가지고, 생각을 하며 또한 스스로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보며 혹은 스스로의 마음의 창문에 커텐을 치며.

 

 책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리카의 슬로 굿바이일까? 아니면 하나코란 여자를 이해하기 위함에 대한 이야기 일까?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무엇이어야 할까? 도망치고 도망쳐도 현실에서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는 것? 붙잡아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아니면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스치듯 흐르는 시간에 기대는 것?

 

 책을 덮고 일어서는 순간 궁금해졌다. 이별이란 무엇인지, 그토록 아픈 이별을 하고도 우리는 어떻게 살 수 있는 것인지. 나였던 사람을 잃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상실인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으로부터 도망친다는 것은 얼마나 아픈 일인지를 도망쳐도 도망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큰 절망인지 책 속 등장인물 한 명씩을 떼어놓으며 짐작하게 된다.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얻었으며 어떠한 환상을 잃었는가. 그들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겠는가. 그저 뒤돌아 서며 앞으로 걸을 뿐이다.

 

 노을이 붉은 이유는 붉은색 빛이 가장 파장이 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별이란 시간이 길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음을 오히려 스며들듯 그가 없는 일상에 익숙해지는 것 또한 이별의 한 방법이라고 해가 진 차가운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시집을 읽는 사이 가슴으로 저녁 노을이 스며들고, 그보다 앞서 겨울녁의 찬 바람이 스며든다. 시린 가슴으로 시집을 내려 놓고도 두고 오지 못하고 아니 가겠다는 시집 한 권을 애써 내 가방이 너의 작은 몸 하나 녹일 수 있다는 위로를 하며 버둥거리는 시집을 가방에 넣고 오는 길의 바람은 가슴에 스며든 바람보다 더 차가워진다.

 

 이병률의 첫 시집이라는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는 읽는 이를 아프게 한다. 시집에서 옮겨 적고 싶은 시를 적다가도 가슴이 아리고, 블로그에 옮기기 위해 인테넷에서 시인의 시를 찾다 시인의 시가 너무 많아 이토록 많은 이들이 그의 시에 가슴에 바람을 불게 하고 아파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따뜻한 손길을 원하는 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은 더욱 아파온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법이라고, 그걸 알고 있음에도 초저녁 갈 곳이 없는 발걸음은 돌부리에 걸린 것도 아닌데 비틀거리고 힘이 없어 결국 넘어져 눈물 대신 피를 흘리는 것이 사람이다. 이병률의 시에는 외로움을 넘어선 고독이 가득하다. 고독하다고 하여 그리운 이가 없는 것이 아니듯, 북적이는 사람 냄새가 그립지 않은 것이 아니듯 윗집 혹은 옆집에 사는 이들의 한밤중 물소리 하나에도 그는 고마워하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이 큰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그의 고독이 더 내것 같고 더 애달프다.

 

 

<이번 어느 가을날,
저는 열차를 타고
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
편지를 띄웠습니다

 

5시 59분에 도착했다가
6시 14분에 발차합니다

 

하지만 플랫홈에 나오지 않았더군요
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뺀 십오분 사이
겨울이 왔고
가을은 저물대로 저물어
지상의 바닥까지 어둑어둑했습니다 >  -'장도열차' 전문

 

 열차의 짧은 정착시간 15분. 그 시간은 기다리는 이에게는 영원의 한 켠을 나눠 가질 수도 있는 시간이었으리라. 하지만 오지 않는다고 하여 기다리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그가 오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닐런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기다리는 일 그것이 그에게는 더 중요한 일, 어쩌면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에. 그 사람이 오지 않아도, 그 사람을 볼 수 없어도 기차는 출발하고 시간은 흘러가고 그는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마치 알 수 없는 인생처럼.  내가 혹은 당신이 그렇게 그리워하던 이가 있던 곳을 얼마나 많이 스쳤을까.

 

 

<해 지는 여관 뒤편 누군가 끌어다 놓은 배 위에 올라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한 사내
해바라기 숲을 등지고 서럽게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한 사내
내 설움은 저만도 못해서
내 눈알은 저만한 솜씨도 못 되어서 늘 찔끔하고 마는데
그가 올라앉은 뱃전을 적시던 물기가
내가 올라와 있는 이층방까지 스며들고 있다
한 몇 달쯤 흠뻑 앉아 있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돌아가는 사내의 집채만한 그림자가
찬물처럼 내 가슴에 스미고 있다> - '스미다' 中

 

  어느 날 아침, 알 길 없는 설움이 복받쳐 울진으로 떠난 이가 그 곳에서 본 사내는 더 애닯다. 이 시집에서 내 마음을 가장 흔들었던 시였다. 가슴에 옹이 진 곳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냐고, 서럽고 아픈 세상 살아가다 보면 마음 둘 곳 없는 흔들림에 멀미를 하듯 우리는 떠돌다 주저앉아 울게 되고 그 눈물로 작은 호수를 만들어 놓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서 울고가게 하는 것은 아닐까? 울 수 있다는 것, 울고 있다는 것이 나만이 아니라는 것, 온 세상이 설움으로 가득찬 날 어깨 떨며 우는 누군가가 있어 내 울음은 조금 가벼워 지거나 짧아졌음을 받아들여야 함은 아픈 각인이 되기도 혹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오만 년쯤 걸어왔다며 내 앞에 우뚝 선 사람이 있다면 어쩔테냐 그 사람 내 사람이 되어 한 만 년쯤 살자고 조른다면 어쩔테냐 후닥닥 짐 싸들고 큰 산 밑으로 가 아웅다웅 살 테냐 소리소문 없이 만난 빈 손의 인연으로 실개천 가에 뿌연 쌀뜨물 흘리며 남 몰라라 살 테냐 그렇게 살다 그 사람이 걸어왔다는 오만 년이 오만 년 세월을 지켜온 지구의 나무와 무덤과  이파리와 별과 짐승의 꼬리로도 다 가릴 수 없는 넓이와 기럭지라면 그때 문득 죄지은 생각으로 오만 년을 거슬러 혼자 걸어갈 수 있겠느냐>  -'인기척' 中

 

 오만 년, 그 시간의 겹은 얼마나 될까? 그 시간을 걸어온 이를 한 눈에 알아보지 못하고 고개 돌린 순간이 까막득히 잊혀질 무렵 그가 불현듯 내 사람임을 알게 된다면 어쩔것이냐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혹시 그런 사람 가진 적이 있었던가 라는 질문과 함께. 홀연히 날아온 민들레 홀씨처럼 인기척을 인기척인지 모르고 스쳐 보낸 이가 어디 한 명 뿐일까. 그럼 나는 몇 만년의 시간을 홀로 거슬러 올라야 하는 것일까? 대체 몇 번의 생을 살면서 우리는 어떠한 인연을 바람처럼 스쳐 보낸 것일까? 그러하기에 '자전거' 라는 시의 한 구절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춥겠다.' ('자전거' 中) -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추울지도 모르겠다.

 

 이병률, 그의 시집이 내게는 두 번째이다. <바람의 사생활>이란 시집이 내게는 멀리서 바라 보기만 하고 차마 들어가 볼 수 없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보지 않고는 못 견디는 범접할 수 없는 성이었다면 이 책은 바닷가 한 귀퉁이에 붙어 있는 오두막집도 되었다가 대학시절 살았던 다닥다닥 붙은 원룸이 되기도 한다. 그 속에는 언제든 내가 들어가 벽을 만져보고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누워볼 수도 있다. 그만큼 내게는 그의 첫 시집이 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도 괜찮을만큼 마음으로 읽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물론 시인의 마음에 있는 그 무수한 방, 몇 개 가보지도 못하였지만.

 

<어찌 사는가

방에 불은 들어오는가

쌀은 안 떨어졌는가

 

살면서 시인에게만 들었던 말

나도 따라 시인에게만 묻고 싶은 말

부모도 형제도 아닌 시인에게만 묻고

한사코 답 듣고픈 말>  -'시인들' 中 -

 

 이병률, 그는 시인이다. 그의 시 하나에 시인들의 애달픔과 경제적인 사정마저 느껴질 듯하다. 그가 듣고픈 말 해줄 수 없는 나인지라 그저 그의 시를 한 번 손으로 쓰다듬으며 입으로 혼자 말해본다. 어찌 사는가, 방에 불은 들어오는가, 쌀은 안 떨어졌는가.  왜, 나는 시인이 아니란 말인가...라며.

 

 시집을 읽는다는 표현은 얼마나 간사한가. 시를 모르면서 시를 이야기 하는 나는 얼마나 볼상사나운가. 그럼에도 시집 앞에서 기웃거리는 모습은 얼마나 우스운가. 시집의 무게는 보기 전과 후가 너무 다르다고 척하며 말하고 마는 내게 입이 무거워야겠다고, 시를 읽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그저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 본 것을 밤하늘의 별에게만 나즈막이 고해야겠다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은하수가 시인의 영혼의 집이라면 시집은 그 하나의 별이라고, 하나의 별이 아니라 은하수를 본 후에 말해야 한다고. 달이 밝은 밤이라 은하수가 보이지 않는 밤은 밝아도 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