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윤경 기자 = 극작가 입센, 작곡가 그리그, 화가 뭉크 등을 배출한 노르웨이는 아직 우리와 먼 나라다. 지리적으로 멀 뿐 아니라 문화적 교류도 그리 많지 않은 현실에서 노르웨이 현대 문학을 살짝 엿볼 수 있는 책이 번역돼 나왔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으로 현대 노르웨이 문학을 대표하는 잉바르 암비에른센이 쓴 ’엘링’ 연작 소설 4권이 사계절 출판사를 통해 출간됐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32세의 남자 엘링을 통해 현대 사회가 잊고 있던 삶의 근원적 가치를 질문하는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소설. 어머니와 단 둘이 살며 세상 경험을 전혀 하지 못한 조기 연금생활자 엘링이 어머니의 죽음 이후 겪게 되는 낯설고 힘겨운 변화의 과정을 진지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냈다.
1권 ’나는 내 친구 엘링입니다’에서 어머니를 잃고 혼자 남은 엘링은 다시는 누군가를 곁에 두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서민 아파트 맞은편 동에 사는 여성 리게모르 욜센에게 관심을 갖게된다. 창문을 통해 그녀의 모습을 엿보던 엘링은 더 나은 관찰을 위해 망원경을 구입하고, 그의 관찰 대상은 욜센과 같은 동에 사는 사람 전체에게로 확대된다. 망원경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펴는 엘링은 각 인물들의 성격과 삶의 궤적을 추측하며 혼자 연민을 느끼거나 분노에 휩싸이는 방식으로 세상과 조금씩 연결된다.
2권 ’엘링, 어색하지만 괜찮아’는 오슬로 시의 결정으로 강제로 요양원에 끌려온 엘링이 그곳에서 역시 사회적으로 무능력한 엄청난 식욕의 소유자 키엘과 우정을 나누는 과정을 담고 있다.
3권 ’엘링, 천국을 바라보다’는 엘링-키엘 콤비가 좌충우돌하며 본격적으로 세상과 부딪히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렸으며, 4권 ’엘링, 내일은 나를 사랑해줘요’에서는 단짝 키엘이 가정을 꾸리는 바람에 다시 혼자 남아 고립감에 빠진 엘링에게 난생 처음 사랑이라는 감정에 찾아온다. 한없이 서툴고, 투박한 엘링은 약삭빠르고, 세련된 사람이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 절대 섞일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만의 가치를 지키며 세상을 향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푸른숲. 각권 240쪽-356쪽. 권당
9천-1만원. khyun1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