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내게 잘못을 저질렀어. 그런데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한다면 못된 짓을 벌주지 않는 게 되잖아. 내가 왜 그 사람을 풀어줘야 하지? 그 나쁜 녀석은 벌을 좀 받아야 해!" 그 사람에게 진짜 벌을 주지는 못한다 해도 최소한 당신의 마음속에서는 벌을 줄 수 있고, 그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공평해지는 것 같지 않은가?
나도 한 때는 이랬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이렇다. 난 아직도 그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당연히 카페에서 였다. 서점을 자주 들나들지만, 워낙 소설외에 다른 분류의 책을 잘 견디지 못하는 괴팍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이러한 책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카페에서 이 책을 접했을 때, 사실 조금 놀랐다. 그리고 읽어보고 싶다는 나의 의견을 짧게 적었다. 그리고 마치 운명처럼 이 책이 내 손에 얹어졌다. 사실, 이런 분류의 책은. 내게 충고하는 식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나는 워낙에 성격이 괴팍하여 마치 세상에 답이 있고, 나만 답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있는 듯함을 알려주는 이런 식의 책은 속이 뒤틀려 오래 붙들고 있지를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은 왠지 그러지 않았다. 우선 내게 이래라, 저래라 충고하지 않았다. '이러는 게 좋지 않겠어?'라고 나의 의견을 물었다. 지금 나의 방식이 완전하게 틀리다고 말하지 않았다. 마치 나에게 좋은 상품을 소개해주는 쇼호스트와 같았다. '지금 고객님께서 사용하시는 것도 충분히 좋지만, 더 좋은 것이 나왔으니 이번 기회에 한 번 바꿔보세요.'같은. 그래서 좋았다.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용이 좋았다. 사실 뻔하디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성경책에나 나올 법한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이 부분 또한 뒤틀리는 마음때문에 비뚤게 바라보는 게 바로 나였다. 하지만 이 책은 말했다.
'당신이 살기 위해서 용서하라. 살고 싶다면 용서하라.'
아마도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이 아닐까? 이 책을 읽은 사람이든, 읽지 않고 지금 이 서평을 읽고 있는 사람이든 모두가 공감하면서 다짐하는 것. 반드시 그렇게 되고 싶은 것. 정말, 그렇게 살고 싶은 것. 내 안에 있는 미움의 응어리를 풀어버리는 것. 그 고통안에서 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구출시키는 것. 그리하여 나 자신을 좀 더 자유롭게 하고, 유연해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삶이다. 하지만, 우리는 쉽사리 그렇게 하지 못한다. 고통은 행복보다 그 생명력이 길고 질기다. 고통은 끈질기고 끈적하고 지저분한 냄새를 풍긴다. 반면 행복은 산뜻하고 보송거리고 향긋하다. 탈무드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원래 사는 동안 고뇌하고 고통스럽다고 한 것도 어쩌면 이와 다르지 않다.
나는 모 방송국에서 하는 <인터뷰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귀여운 소재도 있고, 신선한 소재도 있었는데 매 회를 더해갈 수록 자신을 버리고 몇 십년을 찾지 않는 엄마를 찾아 인터뷰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 번 엄마를 찾기 위해서 이 곳 저곳을 헤매는 여자나 남자 출연자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자신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부모에게 정이 남아있나?' 나라면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우선, 첫 째로 용서가 되지 않고. 둘째로 얼마나 잘사나 보자. 하는 마음이 클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엄마를 만나거나, 전화통화로 마음의 응어리를 눈물로 쏟아낸 출연자들은 모두 엄마를 용서하고 뒤돌아섰다. 난 신기했다. 방송이기 때문에 연출일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것이 연출이든 아니든, 난 그 정도로 속이 넓은 인간은 못되는지 결코 용서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내게 말했다. '너 잘 살고싶니?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나쁜 짓하지 않고 살면서도, 곁에는 나를 지켜주는 가족과 사랑하는 친구, 연인이 있으면서 삶에 대한 회의감이 들지 않느냐? 그렇다면 과거를 돌아보아라. 잠시라도 네 안에 품어둔 미움이 있다면 그 미움을 살펴보아라. 그렇다면 삶이 왜 그토록 고달픈지 고통스러운지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내게 과연? 이라고 물었다. 그건 곧 이 말이 다른 누구에게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정답이라는 뜻이다. 또, 그렇게 한 번 시도해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용서라고 하는 것이 무조건 '나, 용서했어!' 라고 하면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 당신 용서했어. 그러니까 난 이제 괜찮아.' 라고 말한다고 해서 정말로 용서가 되는 건 아니다. 용서도 그 방법과 기술이 있다. 이 책은 그 것을 내게 가르쳐줬다.
6살 때, 몇 달을 부모님께 졸라서 얻어 낸 소꿉놀이 장난감을 동네 남자 아이가 하천에 던져버렸을 때. 난 크면 저 아이를 꼭 만나서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이따금씩 그 아이를 길거리에서 만나 머리통을 후려치는 꿈을 꾸곤했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기억난다 한들 이미 20여 년이 흐른 그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을리 없는데.. 나는 희미한 그 모습에도 침을 뱉고, 소리를 지렀다. 그리고 꿈에서 깨면 항상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현실도 악몽같았고, 인생 전체가 고통스러웠다. 현실을 부정적으로 바라 보는 게 습관처럼 되기도 했다. 그때 난 그 아이를 용서할 생각도,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날 고통스럽게 했고 그 죄값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내게는 그러한 일들이, 그 보다 더한 일들이 줄줄이 일어났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을 되새기며, 복수하겠노라고. 날 고통스럽게 했으니 너도 한 번 당해보라고. 그런 몹쓸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더 잘 살았다. 나보다 더 행복했고, 인생을 즐기며 살았다. 반면 나는 그러지 못했다. 잘 사는 그들의 모습에 더 고통스러웠고, 나를 더 채근했다. 그렇게 고통안에서 나는 '그래! 잊자! 다 잊어버리자!' 다짐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여전히 그들은 잘 먹고 잘 살고, 나보다 더 행복한 것처럼 살고 있으니 잊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또렷했다.
잊는 것은 결코 용서가 아니다. 잊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는 것 뿐.
언제라도 되살아나 나를 괴롭혔다. 과거를 괴롭히고, 나의 미래까지 괴롭혔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이제야 알았다. 이제까지 내게 잊혀지면 그것이 벗어나는 것이라 믿었던 나의 착각에서 이 책은 나를 구해줬다. 평생 잊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없다. 언제라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되살아난다. 그리고 나를 괴롭힌다. 이제 나는 잊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잊는 것은 오히려 나를 괴롭힌다. 오히려 그 문제 앞에서, 그 누군가를 앞에두고 견뎌내고 이겨내는 것이 바로 진정으로 용서하는 것이고 이겨내는 것이다.
그것이 용서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