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즈키를 만난 건
내 동생 책상에 꽂힌 'Fly, Daddy, Fly'란 책을 우연히 집어 들었을 때였다.
이준기와 이문식이 나온 그 영화를 보지 않았음에도
책을 읽는 순간 영화의 한 장면 장면이 떠오르는
묘사가 아주 감칠 맛 나는 책이었다.
내가 처음 가네시로 가즈키를 만난 건 'Fly, Daddy, Fly'이지만
가즈키를 유명하게 만든 책은 바로 일본의 대중문학상인 '나오키문학상'을 수상한 'GO'이다.
'Fly, Daddy, Fly'가 나태해지고 힘에 굴복한 중년층이
자신과의 싸움을 치열하게 해내는 심리 묘사의 최고봉이었다고 한다면
'GO'는 재일한국인 작가인 본인의 생활과 심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자서전과 같은 느낌이다.
작가는 자신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선언하고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사실 연애보다는 자신이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음에도
일본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외국인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한 분노 및
세상이 한덩이임에도, 한 뿌리임에도
자기의 영역을 지키려는 인간의 무지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본인들에게 무시당하고, 위협적인 민족의 자손이라고 피하는 그들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들보다 먼저 자신방어적인 폭력을 쓸 수 밖에 없는,
(그럼으로 인해 일본인들은 더욱 작가와 같은 민족들,
조선인 또는 한국인을 두려워하고 피하지만)
싸움을 잘 못하면 나라의 보호도, 이웃의 보호도 없이 죽을 수도 있는,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과도 사랑할 수 없는,
그런 불공평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주인공과 그의 주변인들이 겪는 사건과 그들의 대화 속에서 보여주며.
(주변인들 중 대표적인 인물들은 재일조선인(북한인) 친구들, 아버지, 사랑하는 여인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이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일본인이 아니고
외국인으로 인정하고 단속하는 일본 사회에 대해,
또, 조선인이었던 사람이 한국인으로 국적을 바꾸었다고 해서
(단지 아버지는 하와이에 가고 싶어서 일본으로 국적을 바꾸셨고,
그의 아들인 작가는 일본도 조선도 싫으니 그냥 한국인으로 바꾸었음에도)
조선을 배신했다며 '배신자' '반역자'로 치부하는 재일조선인 즉, 북한 사회에 대해,
직설적으로, 아주 격한 어조로 그것은 말도 안되는 오류라 주장한다.
그러나 스기하라의 말과 생각 묘사 속에서 이것을 강하게,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주인공 스기하라가 자신이 믿었던, 사랑하는 사람인 사쿠라이를
설득하기 위한 대화 속에서 이 책의 주장이 여실히 드러난다.
"사쿠라이는 어떤 식으로
이 사람은 일본 사람, 이 사람은 한국 사람, 이 사람은 중국 사람이라고 구별하지?"
"어떤 식으로라니?"
"국적? 국적 따위는 언제든 바꿀 수 있어."
"태어난 곳이라든가, 사용하는 언어라든가...."
"그렇다면 부모의 직업때문에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외국 국적을 갖고서 일본으로 돌아온 2세는? 그들은 일본 사람이 아닌가?"
"부모가 일본 사람이면 일본 사람이겠지."
"요컨대 어느 어느 나라 사람이란 건 뿌리의 문제란 말이지.
뿌리는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만약 너희 증조할아버지에게 중국 사람의 피가 섞여있었다고 하면
너는 그럼 일본 사람이 아니겠네?"
"......."
"그래도 역시 일본 사람?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고 일본 말을 사용하니까?
그렇다면 나도 일본 사람이 되겠네."
"우리 증조 할아버지에게 중국 사람의 피가 섞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사쿠라이의 말에서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나 또한 그녀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난 한국인이다. 나는 대대로 한국 사람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니까.
소설 전체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보다
단 몇 페이지의 사건과 그 속의 대화가 나에게는 큰 정신적인 충격을 선사했고,
이 사건 뿐 아니라 다른 사건들의 전개로도
인간에 대해, 그리고 우리들의 소속감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한 책이지만,
무엇보다 내가 책을 펴 들자마자 한 번에 끝을 보고 싶었던,
사건의 전개가 흡입력있어, 내가 주인공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 책이다.
더불어 이 책을 보고 가즈키의 실감나는 묘사를 더 느껴보고 싶다면
'Fly, Daddy, Fly'도 꼭 보길 추천, 또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