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단 네 글자로 된 무척이나 간단한 단어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린왕자라는 단어는 그저 단순한 단어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어린왕자라는 네 글자 안에, 어린시절의 기억과 청소년기의 위안과 성인이 되고 난 다음 느끼게 되는 향수가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어린왕자를 그저 어린아이의 눈으로 쉽게 읽어내려가고 말 아이들의 동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안에, 평생동안 나누어 담은 인생의 지혜와, 위로들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성장을 거듭하며 어린왕자를 대할때마다 새록새록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역시 그러했다.

물론, 나는 생떽쥐베리라는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야간비행을 조금 더 좋아하지만, 그 이름을 더욱 더 유명하게 만들어준 어린왕자에 많은 사람들이 추억과 향수를 담는 점 또한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났을 때 나는 너무도 반가웠다. 비록 어린왕자의 원작을 써내려간 생떽쥐베리의 작품은 아니지만, 그의 어린왕자가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여전히 어린왕자로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리라는 믿음을 막연히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 책, 어린왕자 두번째 이야기는, 어린왕자의 원작을 쓴 생떽쥐베리의 작품이 아니다. 하지만, 그와 그의 작품들을 기리고 있는 생떽쥐베리 재단에서 극찬을 하며 인정한 어린왕자의 후속편임을 인정한 작품이기에, 어린왕자로 받았던 무한한 감동과 위로를 기대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가질법한 매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을 선택했다. 생떽쥐베리가 아닌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같거나혹은 다른 어린왕자의 이야기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어린시절, 무언가로부터 절실히 위로를 원했던 그 순간만큼이나 필요했기 때문에...

자신의 별로 돌아갔던, 어린 왕자는,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지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지구에서 낯선이를 만나 여행을 시작한다. 길 바닥에 죽은 듯 누워있다가 누군가의 눈에 띄여 자연스레 그의 차에 올라탄 어린왕자, 어린왕자의 이번 여행 이야기는, 그를 차에 태운 바로 그사람과의 동행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연히 어린왕자를 태우고 길을 가게 된 이와, 어린왕자가 나누는 대화들은, 어린왕자가 다시 지구를 찾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 동안의 상처, 그리고 고민들을, 동행하는 이와 나누는 과정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 대화 속에서 이전이 어린왕자의 이야기가 그러했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상처를 위로받을 수 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사랑받고, 위로받으며 안도를 한다. 하지만, 다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며 삶을 이어가기도 한다. 사람에게서 위안받은 마음들은, 사람으로 다시 다치고, 사람으로 상처받은 마음 역시 사람들을 통해 치유해나가게 된다. 어린왕자의 두번째 여행은, 바로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상처받은 마음으로 사람을 멀리하게 된 마음들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통해 위로받아야함을, 그래야 더욱 따스해지고,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음을 말이다.

살아가며, 그 누가 상처 한번 받지 않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까.. 하지만, 결국, 사람이기에, 사람을 외면할 수 없음을, 어린왕자 두번째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책의 종류에는 차이가 있다. 누군가는 소설책을 좋아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인문사회계열의 서적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좋아하는 책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싫어하는 책에도 차이는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복잡한 자연과학류의 책을 싫어하고, 어떤 사람들은 추리소설이나 에세이를 싫어하는 것처럼..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자기개발서적들을 싫어하는 편이다. 뭐랄까.. 읽을때마다 뭔가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시선들이 느껴지는 내용들을 만나게 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슷한 맥락에서 심리서적들도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심리학이나 집단심리학에 관련한 내용들은 다르지만, 특히 읽고 있는 바로 독자 자신, 개인의 심리를 노리는 내용들은 특히 불편하게 느끼는 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 책 '화해'는 내가 싫어하는 분야의 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책을 소개하는 '내 안의 아이 치유하기, 당신 안의 아이가 울고 있다!'라는 문구를 접하기 전까지 나는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나 내면에 다섯살짜리 아이가 있습니다'라는 또 다른 문구를 보고 난 후 나는 이 책을 펴들었다.

 

 

내 안에도 다섯살짜리 아이가 있다는 한 줄의 글. 다른 어떤 설명도 없이 그 한줄의 문구를 읽는 것만으로도 무엇인가 위로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가장 수월한 일인것 같지만, 사실은 너무도 어려운 일인 바로 이 일을 어쩌면 이 책이 인도해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 안의 상처받은 다섯살 난 아이. 때로는 울고 싶어하고, 때로는 때쓰고, 때로는 고통스러워하는 이 아이를 나 역시도 오랜 시간동안 외면하고 잊혀지길 바래왔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잊혀지고 상처가 아물듯,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싶었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나의 믿음과는 달리, 내 안의 아이는 점점더 어두운 곳으로 몸을 웅크리려하고 있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어두운 곳으로 파고들 뿐이었다. 내가 그 아이를 위로해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영원히 내 안의 어딘가 가장 어둡고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 더욱 더 대면하기 힘들어질 것 이다.

이 책 '화해'는 바로 나처럼 내면이 아이를 위로해주기 보다는 외면하고 잊어버리려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방법은 옳지 못한 방법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알지만, 차마 용기내지 못하는 바로 그것, 아이를 대면하고 위로하여 주는 것으로 세상밖에 나오게 하는 것을 해야함을 말해주는 책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화해'가 전하는 이야기는, 사실, 우리 모두가 전혀 모르는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거의 기억과 대면해 과거를 놓아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같이, 더 나은 내 모습이 되어 진정한 행복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내 안의 다섯살 난 아이를 대면에 아이가 품고 있는 상처와 아픔을 위로하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그 맥락을 같이 하는 너무도 익숙하고 흔한 가르침이니 말이다.

책을 통해 전해 듣는 내 안의 아이와의 화해는, 그래서 행복을 찾고 싶어하는 내가 한번쯤은 반드시 치루어내야 하는 의식이다.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 더 무시하고 외면하려 했던, 그렇게 지나쳐 가기를 바랬던 바로 그 의식말이다. 나 스스로와 화해하는 것은, 어쩌면, 다른 그 누군와 화해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화해가 나의 진짜 행복으로 가기 위한 계단이라면, 용기를 가지고 한 계단 한계단 밟아 나가야 하리라. 내 안의 그 다섯살 난 여리고 아픈 아이가, 더 큰 상처를 품고 숨어들기 전에..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작가 파울로 코엘료

파울로 코엘료. 이름만으로 수 없이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는 세계적인 이름. 혹여 그의 이름은 잘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연금술사]라는 책 한권의 이름만으로도, '아..그 책.. 그 작가..'라는 연상을 가능하게 하는 몇 안되는 대중적인 작가. 그리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야기를 글자를 통해 세상으로 전하는 많은 책 속의 멘토. 파울로 코엘료는 그 이름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인다 하더라도 그 이름 이상의 표현을 해낼 수 없는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알레프>는 그런 작가가 또 한번 세상을 향해 전하는 용기와 희망, 사랑의 메시지이다.

책을 펼치지 전에 책의 표지에 인쇄되어 있는 작가의 이름을 보며 이런 궁금증을 품어보았다. 전 세계와 세기를 통털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글과 음악, 그림와 공연예술 등 수 많은 방법으로 동일한 주제를 전하고 있는데, 도대체 왜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특별히 더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히 더 깊은 사랑을 받는 것일까? 나 조차도 그의 글 들 속에서 많은 위안을 받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이런 의문은 품어본적이 없었기에, 그가 전할 또 하나의 메시지인 <알레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저 한번 궁금해하고 싶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파울로 코엘료의 글들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지 않은가? 뭔가 우리의 정서와 다른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은 신비주의를 보여주는 단어와 이야기들을 통해 뻔하디 뻔한 주제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도 주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메시지는 언제나 결국 감동적이었다.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이야기들을 통해, 너무나도 현실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는 감동. 그 감동은, 그 시작이 어디이든, 배경이 무엇이든, 사람들을 따스히 품고 위로해주었고, 나 역시 그 포근한 품과 위로 안에서 한숨을 내쉬며 찬찬히 그의 메시지를 경청하는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의문을 뛰어넘는 안도와 위로가 이번에도 파울로 코엘료의 손을 따라 <알레프>속에 담겨 있을테니 말이다.

 

 

자네는 더 이상 여기 있지 않아. 현재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야 할 시간이야.

<알레프>는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실제로 9288km에 이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떠났던 여행 중 경험했던 것들을 풀어놓은 일종의 그의 여행기이다. 길고 긴 시간동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차여행을 때로는 지겹게, 때로는 힘겹게 이어가며, 그가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며, 때로는 희열을, 때로는 고통을 겪어야 했던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여행. 이 여행은 작가 파울로 코엘료라는 이름으로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음에도 끝없이 자신을 찾아 헤메이던 그만의 고뇌와, 그 고뇌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인간 파울로 코엘료의 방황의 한자락이기도 하다.

그는 관점에 따라서는 언제나 불안정한 사람이었던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저명한 작가이고, 동시에 사랑하는 아내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행복해야만 하는 사람'. 하지만 정작 그는 삶의 권태에 힘겨워하고, 결코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언제나 작은 질문을 던졌던 J가 나타나고, J는 그에게 여행을 권한다. 그의 현실을 발목잡고 있는 그의 과거의 문제로의 여행. 그의 이야기에서 종종 등장하는 전생의 기억들로 인해 반복되는 현실의 불행을 해결하기위한, 그 끝을 알 수 없는 여행을.. 파울로 코엘료는 J가 권하는 여행에 다소 회의적이었다고 말한,다. 이미 세번의 여행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어느 정도 벗어던졌다고 믿고 있었고, 이제 더 이상 과거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그는 어느 결엔가 J의 말대로 여행을 시작하고야 만다. 그리고 그 여행이 바로 <알레프>가 전하는 그의 이야기이다.

그는 무작정 약속을 잡는다. 이곳저곳을 방문하는 것을 약속하고, 이 방문을 통해 자연스레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오랜시간 꿈꾸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한 여행까지도 이렇게 조금은 무계획적으로, 혹은 즉흥적으로 이어가게 된다. 현재의 고통과 방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거로의 여행. 그 과거로의 여행은 철저하게 현재의 파울로 코엘료로부터, 그렇게 시작된다.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현재의 시간을 웅크리고 있던 그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 그의 시베리아 횡단은, J가 그에게 했던 말처럼, 현재를 잡고 있는 과거를 놓아주고, 그에게 주어진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오기 위한 그의 성장을 위한 여행이 되어줄것이다.

 

 

기억하시죠? 성스러운 불을 지피러 왔어요.

그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기 전 모스크바에서, 힐랄이라는 이름의 여성을 만난다. 터키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의 상처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한채 바이올린이라는 동굴에 숨어서 살고 있는 젊은 여성. 그에게, 그가 언젠가 적었던 성스러운 불에 대한 글귀를 펼쳐들며 이제 자신이 그에게 성스러운 불을 지펴주겠노라 주장하는 조금은 집요한 그녀. 스스로를 위해 떠나는 여행에, 전혀 예상치 못한 동행이 생긴다는 사실에 다소 불편해했던 코엘료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채, 그저 함께 떠나야만 한다는 고집스러움으로 끝내는 같은 기차에 올라선 그녀와 길고 긴 여정을 하는 동안, 그는 그렇게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만나고, 예상치 못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9288킬로미터라는 어마어마한 여행동안, 전혀 대비하지 못했던 일들. 그리고 초대받지 못한 손님에 지나지 않았던 힐랄과 함께 만난 <알레프>.. 마치 인생처럼, 그 끝이 언제쯤 끝나게 될지, 때로는 지겹고 지루하기만한 여행에서 예상치 못하게 만난 사람으로 인해 깨달음을 얻고 오랜 시간 기다렸던 위로를 얻는 순간이 오는 것처럼, 힐랄은 그에게 이 여행이 준비한 가장 큰 이유의 답을 얻는 통로가 되어준다. 그녀는 이 여행에 그가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틈엔가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그가 피웠던 성스러운 불처럼, 자연스레 그에게도, 이 여행을 잘 이겨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그의 성스러운 불이 되어준 것이다. 마치 그녀가 그를 찾아와 말했던 것처럼..

그녀와 함께 하는 순간과 공간들을 통해 그는 여행을 통해 얻고자 했던 답들을 하나씩 얻어간다. 또, 힐랄이 아닌, 다른 동행인과 그 동행자의 또 다른 지인들을 통해서도 그가 원했던 답 이상의 것들을 하나씩 얻어가게 된다. 그를 둘러싼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마치 자신처럼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게 되고, 그 자신 역시 그들처럼,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을 처절하게 깨닫는 과정. 그리고 때문에 더욱 그 과거에서부터 자신을 구해내기 위해 노력해야했던 이야기들이 <알레프>를 통해 흘러나온다.

생각해보면, <알레프> 속의 파울로 코엘료와, 그의 여행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힐랄과 야오는 모두 같은 인물처럼 닮아있다. 모두 과거의 어느 시점에 자신을 옭아맨 상처를 품고, 그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한채 현재를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힐랄은 어린시절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그녀가 살아내야 했던 현재라는 시간들을 모두 밀쳐내며 스스로를 괴롭혔고, 야오는, 그를 힘들게 했던 아내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재, 현재를 버티기 위해 자꾸만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고통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코엘료는 그들보다 훨씬 더 먼 과거, 그의 전생에 그가 저질렀던 잘못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채 여전히 현재의 삶을 방황하고 있다. 아주 먼 과거와 조금 먼 과거, 그리고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의 여행. 그들에게 여행은, 현재로 돌아오기 위한 여행임고 동시에 서로를 위해 지핀 성스러운 불이 되어준다.

 

 

이제 그녀는 자기 왕국의 여왕이 되었고, 왕국을 스스로 지배할 때가 되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에도 언젠가 반드시 그 끝이 있듯, 9288킬로미터의 멀고먼 기차 여행에도 반드시 끝은 준비되어 있다. 모스크바에서 시작된 그들의 길고긴 여행은 결국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고, 이 여행은 이제 마지막에 다다른다. 여행 속에서 코엘료는 과거로의 또 다른 여행을 했다. 그가 결코 자유롭지 못할 과거의 잘못, 현재의 삶이 아닌, 이전의 삶에서 저질렀던 잘못으로 인해, 그는 현재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그 잘못을 용서받아야 하는 여행을 해야만 했다. 현재로 돌아오기 위해 떠났던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 코엘료는 과거의 자신의 과오로부터 또 한번의 용서를 받았고, 스스로 자유를 얻는 방법도 알아낸듯 하다. 아무런 준비없이 떠났던 여행의 수 없이 많은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인생이 그러하듯, 때로는 생각하지 못한 성장으로 이어지듯,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했던 코엘료의 바람대로 그는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여행동안 웅크렸던 자신을 벗어던지고 성큼 한걸음을 또 나아가도록 도왔던 모양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누군가를 통해, 온 시간과 온 공간이 모두 존재하는 <알레프>를 발견하고, <알레프>를 통해 자신의 현재를 잡고 있는 고통의 존재를 마주했다. 그리고 고통을 마주할때야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어쩌면 흔하게 들려오는 인생의 지침을 스스로 경험해냈다. 그리고 이 여행의 끝에서 그토록 원했던 제대로 된 현실로 자신의 삶을 끌어왔다. 하지만 그가 <알레프>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알레프>라는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그 통로와 전생의 존재일까? 아마 그것은 아닐것이다.

 그는 <알레프>를 통해 이 모든 것들을 해내었지만, 그가 말하는 <알레프>란, 코엘료처럼 특별한 수행을 통해 그 방법을 터득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나 통로만은 아니어야만 한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도, 코엘료나 힐랄, 또는 야오처럼 현재의 자신을 옭아매는 과거의 어느 순간과 기억들을 한 두가지쯤 끌어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 과거의 고통 속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과거의 고통속에서 나를 구해내지 못한채, 과거에 발목잡힌채 현실을 흘려보내는 수 없이 많은 상처받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알레프>라는 통로를 알지도 못하고, 경험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알레프>는 그 대부분의 사람들도 모두 공유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무엇이어야 하는 것이다. 코엘료는 바로 이 점을 <알레프>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을 가장 크게 옭아매고 있는 어느 순간의 기억, 상처, 고통을 마주하는 용기. 바로 그것이 <알레프>라 이름지어진 바로 그것이라는 점을... 코엘료가 그러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과거에서 돌아와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어느 순간 용기를 가지고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줄 용기를 내라는 바로 그 말. 그 말 한마디가 <알레프>의 진정한 의미이리라.

파울로 코엘료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다시 여행을 시작한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마치 그가 현재에서 과거로 여행을 떠난 것 자체가 여행의 시작점인 현재로 돌아가기 위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가 돌아간 모스크바에는 힐랄이라는 동행인이 새로 남았다. 과거로 떠나기 위한 여행에서 얻었던 생각지 못했던 과거의 조각. 그는 그렇게 현재로 돌아가기 위한 여행을 마무리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힐랄은 과연 어땠을까? 그녀에게 있어 이 여행은 그녀의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여행을 통해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과거를 얻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여행을 마치고 그녀는 홀로 남겨질 것이고, 그녀에게는 어린시절의 상처과 그녀가 생각하지도 못한 또 하나의 생에서의 과거, 그리고 이제 새로운 과거로 남겨질 코엘료와의 여행까지 얻어버렸다. 걱정스러웠다. 코엘료 없이 자신의 과거로 돌아갈 <알레프>를 찾아낼 방법이 없는 그녀가 과연 어떻게 현실을 살아갈지 말이다. 어쩌면 그녀는 과거를 덮은 또 하나의 과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지는 않을까?

하지만, 책의 말미에 파울로 코엘료가 남긴 작가노트를 읽어내며 다행히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힐랄은 이제 바이올린을 켜지 않는다고 했다. 파울로 코엘료는 그녀에게 의견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파울로 코엘료가 왜 그녀에게 어떤 의견도 전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책을 덮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녀는 그녀를 붙잡고 있던 과거의 상처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바이올린이라는 동굴로 숨어들었다. 그러니, 그녀가 바이올린을 더 이상 켜지 않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상처로부터 자신을 숨겨줄 도피처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이게 그녀는 그녀를 숨겨주었던 동굴에서 벗어나, 진짜 현실로 발걸음을 옮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파울로 코엘료도 그녀가 그렇게 오랜 시간 웅크렸던 스스로를 벗어던진채 성장했음을 감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녀는 자기 왕국의 여왕이 되었고, 왕국을 스스로 지배할 때가 되었다.' 과거가 그녀를 지배했던 동굴의 어둠에서 벗어나, 환하게 빛나는 자신의 왕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