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은 어렸던 시절, 그 시절에는 해마다 5월이 되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속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 최고의 미녀를 뽑는다는 미스코리아 대회. 아리따운 외모의 여성들이 저마다의 미모와 지성을 뽐내며 그 해 최고의 미녀가 되해 노력하는 이 대회는,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은 물론 대회가 끝난 이후에도 많은 관심을 받았던 프로그램이었고, 이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여성은 그만큼 영광을 누렸기 때문에 더더욱이 해마다 관심속에 진행되곤 했었다. 우리나라에 미스코리아 대회가 있는 것처럼 전 세계에는 그 나라의 최고의 미녀를 뽑는 대회들이 한 해에 한번씩 펼쳐지는데, 여기서 뽑힌 여성들은 또 다시 세계를 무대로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지금은 이전보다 열기가 식었다지만 이런 대회들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책 서평을 하는 공간에서 왠 미인대회 이야기를 하느냐 싶지만,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평화'라는 단어를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미인대회에는 한가지 공식처럼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대회의 참가자들에게 소원을 물었을때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세계평화'요~라는 대답을 한다는 것. 이제는 우스개소리가 되어버릴 만큼 진부한 대답이 되어버렸지만, 당시에는 정말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평화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상향과도 같은 것이다. 게다가 세계평화는 정말이지 정말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우리가 가지지 못할것만 같은 아득히 먼 꿈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언제나 평화를 부르짖고 그것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평화란 그리 오래 존재하지 못했고, 언제나 위기일발, 혹은 일촉즉발의 상황안에 잠시의 휴지기를 유지하고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남북으로 갈라져 잠시 휴전중인 우리나라의 상황이라면 말해 무엇할까? 지금 당장 피를 흘리지 않을 뿐, 언제고 전쟁이 이어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휴전상태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전쟁과 평화란 언제나 가장 목전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우리가 가장 가지고 싶어하는 그것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쟁과 평화에 언제나 관심을 가진다. 평화를 부르짖었지만 전쟁으로 얼룩지고, 그 전쟁을 통해 역사를 이룩해온 것이 인류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들의 전쟁>이라는 제목의 이 책 역시 이런 사람들의 관심사를 조금 다른 모양새로 다듬어 볼 수 있도록 만든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신들의 전쟁>은 말 그대로 신들의 전쟁에 대한 기록들을 정리한 책이다. 우리에게 익숙하다고 하면 익숙한 그리스 신화속 신들간의 전쟁의 역사를 통해 신들도 피해갈 수 없는 전쟁과 화해의 과정을 보여주고, 인간의 그것과 다르지 않는 신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책의 주요 목적. 전쟁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인간과 가장 닮은 신들의 이야기인 그리스 신화를 조금 더 집중적으로 볼 수 있게 한 것도 의미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리스 신화는 출연하는 신들의 수만해도 셀 수 없을만큼 그 양과 내용이 방대하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라는 통칭만큼 그리스 신화 자체의 세부적인 내용을 친숙하게 알기에는 약간의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신들의 전쟁>은 많은 양의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들과 관계들을 전쟁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가지를 뻗어 풀어놓는다는 점에서 하나의 테마로 보는 그리스 신화 사전으로 볼 수 있을 듯 하다. 물론, 그리스 신화 전체를 전쟁이라는 단 하나의 테마로 모두 풀어낼 수는 없겠지만, 우리 시대의 최고의 화두 중 하나인 전쟁, 그리고 평화라는 관점을 그리스 신화에 적용시켜 신화가 아닌 현실로서 확대할 수 있는 시각을 펼쳐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니 책이기도 하다.

 

중 고등학교 시절, 국사시간에는 필수적으로 조선왕조의 왕들을 순서대로 외운다. 태정태세문단세로 시작하는 왕들의 첫 머릿글자. 그리고 그 마지막 글자는 '순'이다. 순이라는 머릿글자를 가진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라 불리웠던 조선 역사의 마지막 글자에 대한 이야기. 길 위의 황제는 우리에게 분명히 존재했으나 우리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혹은 잘 기억하려 하지 않는 바로 그 순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 중 가장 굵직한 사건과 긴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 조선. 그 나라의 마지막 황제라는 점에서 순종이라는 황제의 이름은 분명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그가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달고 생존했던 바로 그 시기가, 우리에게는 너무도 큰 상처로 남아있기에, 그리고 그 망국의 순간에 황제로서 단 한번도 황제가 되지 못했던 이름뿐인 존재였기에 우리에게 순종은 마지막 황제이기보다는 망국의 기록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런 이유였나보다. 순종이라는 가장 슬픈 이름이 여전히 희뿌옇게 그 이름만을 남기고 있는 것은 말이다.

길 위의 황제가 보여주는 순종의 이야기는,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함 그 자체를 보여준다.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황제, 그리고 그 어떤 것도 하려할수 조차 없는 이름뿐인 황제로 스스로를 비관하고, 쓰러져버린 나라의 운명을 아파하는 것 이외에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던 순종의 모습은, 읽는 내내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빼앗겨 버린 가장처럼 아파보였다. 그리고 그 아픔이 순종이라는 이름을 애써 외면하게 만든 바로 그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사람들은 역사에 진실이라는 가치를 더하곤 한다. '진실은 역사가 밝힐 것이다'라거나 혹은 '역사가 평가 할 것이다'라는 말들은, 시간이 흐른 뒤 지금의 순간이 역사가 되면, 그 시간들을 통해 자연스레 진실된 가치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단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역사는 정말 순도 100%의 진실만을 밝힐까? 사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평하는 것이 더욱 정확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역사의 진실도 승자들을 위한 진실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전사에게도 지키고 싶은 진정한 가치는 분명 있었을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가 전투에서 패했기 때문에, 그는 그의 가치를 세상에 알릴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순종 역시 어쩌면 그러했을 것이다. 소진한 국운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패장에게, 그가 구하고자 했던 진짜 가치와 그의 절박한 심정은 단 한번도 세상에 나올 기회가 없었으리라.

길 위의 황제를 통해, 우리가 잊고자 했던 바로 그 이름. 순종의 숨겨진 황제로서의 마음을,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아픔을 살짝 가늠해볼 수 있었다.

 

경제학은 분명 쉬운 학문이 아니다. 대학시절 경영학을 전공한 나는, 필수과목으로 경제학에 관련한 과목들을 다수 수강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때 경영학과 경제학이 어떻게 다른지를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던 기회를 얻었었고,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굉장히 지엽적이고 얕은 범위에 속한다는 사실 또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었다. 경제학은, 경제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안에는 작게는 개인의 경제활동에서부터, 조직과 집단, 국가의 경제활동, 여기에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심리작용까지 분석하고 연구해야하는 과제가 주어지기 때문에 그 실상을 살펴보면 결코 단순할 수 없는 학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경제학은 그저 막연하게 느껴지는 그것의 이미지처럼 결코 쉽지 않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더욱 더 어렵게 느껴지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이 어렵다고 하여, 모든 사람들이 경제학을 외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문이든, 아니면 개인의 생활이든 모든 사람들은 경제활동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크던 작던 사회에서 경제의 한 구성원으로 삶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적인 연구나 이론적인 정립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들은 경제인으로 살아가고 있고, 경제와 사람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말 그대로 불가분의 관계라고 감히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기왕 외면할 수 없는 생활이 한 부분인 경제학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까? 기왕 어느 정도 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대해야 한다면, 실생활에 조금 더 가깝게, 그리고 어렵지 않게,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경제학과 연결하여 활용하고 이해하는 기회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팀 하포드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기억되는 이름이다. 경제학을 조금 더 쉽게, 그리고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결하여 설명함으로써 학문과 이론이 아닌, 살아가는 것 그대로의 경제를 보여주는 재주를 지닌 작가, 그래서 사람들에게 경제학은 반드시 학문일 필요가 없으며, 결코 외면해서는 안되는 분야라는 점을 보여준 작가의 이름이 바로 그의 이름이니 말이다.

팀 하포드는 전작인 경제학 콘서트를 통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경제학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아 관련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을법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이기에 그가 풀어놓을 두번째 이야기 역시 더욱 더 관심을 받는 것일터. 나 또한 그의 이름이 적힌 이 책을 보자마자 무척 반가운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책을 펴들고 읽기 시작했을때 역시 팀 하포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뭐랄까. 전혀 무겁지 않은 위트 있는 말투로 정말 필요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재주를 가진 사람답다는 느낌이랄까? 그런 그가 풀어놓은 두번째 이야기 어댑트는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일까?

 

 

어댑트의 책 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져 있다. 불확실성을 무기로 활용하는 힘. 아주 간단한 몇개의 글자일 뿐이지만, 이 글귀는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아주 정확하게 전달한다. 팀 하포드가 어댑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 자체이기 때문이다. 어댑트는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사회와 시장의 상황들을 전제로 하여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사실, 불확실성이 가득한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자체라는 점에는 그 누구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기에, 가장 정확한 전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단언할 수 없는 세상에서 시작된 활동들, 때로는 연구활동이 될 것이고, 때로는 정치가 될 것이며, 때로는 개발과 경제활동이 될 수 있는 수 없이 많은 활동들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살아남는 승자들은 과연, 어떤 과정들을 거치며 생존해왔을까? 지금의 승자는 과거의 승자들일까? 혹은 지금의 승자가 미래에도 승자일까? 이런 질문을 누군가가 던진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할 것이다. '그것은 확신할 수 없다.' 바로 이 불확실성. 그리고 불확실성 속에서 무수히 실패를 거듭했던 과정을 통해 살아남은 현재의 성과물들을 통해. 불확실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위험과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이 책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위험이 클수록 이익이 크다는 말처럼 불확실성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과 함께 그만큼의 가능성이 존재함을 잊지 말아야 하며, 그 불확실성을 가능성으로 바꾸어 활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바로 어댑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댑트를 쓴 작가 팀 하포드는 경제관련 전문가이다. 그리고 그는 이런 쉬운 경제학관련 글들을 통해 이미 명성을 얻은바 있다. 하지만 이 책 어댑트는, 반드시 경제라는 한정된 분야에 국한해서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닌것 같다. 어댑트는 한글로 번역하자면, 적응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적응이라는 단어는 흔히 새로운 상황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상태를 일컽지만, 따지고 보면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안정적인 상태에 도달했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공을 포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도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세상은 언제나 변화하고 있고 사람들은 변화하는 세상을 맞이해 적응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두고 인생의 성과를 가름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도 어댑트가 강조하는 불확실성속에 위험과 가능성 중 어떻게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내느냐로 그 결과가 판가름나는 것은 아닐까? 경제학전문 작가가 썼지만, 읽는 내내 인생을 적용하게 하는 글 어댑트. 반드시 경제학에 관한 지식을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