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좌파? 강남에 사는 좌파라는 말인가?
'강남좌파'란 생각은 좌파적이지만 생활 수준은 강남 못지 않은 사람들을 말한다.

 

좌파라고 해서 생활 수준이 낮으라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생활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대부분 기득권 보수층인걸 떠올려볼 때 이 용어가 낯설게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나는 이 강남좌파라는 용어가 좋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물고 태어난 사람들이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웃들과 다같이 잘먹고 잘살고 싶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요즘 좌파는 국가보안법 철폐라든지, 민주화/반미 같은 이념적 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대신 복지며 교육/보육/의료 같은 생활 이슈를 던지고 있다.
이 책에서는 지금 좌파 진영이 내세우는 구호를 '밥 먹여주는 진보'라고 표현한다.

 

좋은 일이다.
적어도 이런 구호가 빨갱이니 친북이나 같은 지리한 이념논쟁으로 빠져들지는 않을테니.

 

<강남좌파>에서 논의를 위해 등장하는 인물들은
노무현, 문국현, 조국, 박근혜, 손학규, 유시민, 문재인, 오세훈이다.

 

강준만은 강남 좌파의 원조로 노무현을 꼽고 있다.
노무현이 골프와 요트를 사랑하며 강남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잘나가는 세무 변호사였기 때문이란다. 비록 노무현에게 명문 대학 졸업장은 없지만 그에 맞먹는 신분증명서, 즉 사법고시를 통과했기 때문에 강남좌파로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셈이란다. 그런데 언뜻 강남 생활과 노무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퇴임 이후에 고향인 봉하마을에서 보여준 소박하고 인간적인 모습에서 강남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또 문국현이 정치에 뛰어든 것을 "진보세력이 진보 정권 재창출의 전망이 부재한 가운데 정치공학적 용도로 新강남좌파를 등장시킨 사건"이라고 언급했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문국현이 대선 후보로 부각되었던 것 이명박과 비슷한 기업가 출신이라는 점이었던 것 같다. 같은 기업가 출신이지만 문국현에게 청렴하고 깨끗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이명박과 차별화된 모습을 부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런지.

 

오세훈을 '강남 우파이면서도 강남 좌파적 언어를 전복적으로 구사한다'고 평가한 것은 흥미로웠다. 딸 둘이 대학다닐 때 자신도 등록금 때문에 허리가 휘었다고 말했던 것이나, 양극화를 해결하려면 선별적 복지가 효과적이라고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그에게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대의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투사의 이미지를 얻기 위한' 도박이었을까?

 

결국 이 책을 통해 강준만이 말하려고 한 건 강남좌파의 문제가 '이념' 문제가 아닌 '엘리트'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도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이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강남좌파는 있었지만 그 시대는 '민주화'가 주된 화두였기 때문에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란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 즉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강남좌파가 부각되기 시작한 거란다. 

그러니까 그는 강남과 좌파 중에서 '강남'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 같다.

강남으로 표현되는 엘리트주의.
보수나 진보나 다 같은 엘리트라는 것.
그래서 한국 보수 엘리트와 진보 엘리트는 서로 다른 것보다는 같거나 닮은 게 훨씬 많다는 것.
그러니 보수-진보 구도가 아닌 엘리트-비엘리트 구도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엘리트에게 보내는 맹목적인 지지를 잠시 내려놓고 그 사람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떤 정책을 펴고 있는지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인물보다 목적이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보수건 진보건 집권을 말할 게 아니라

집권 이후 어떻게 소통과 화합을 이룰 것인지를 말해야한다는 것도 공감한다.

 

하지만 책을 덮고 보니 도대체 이 책의 제목이 왜 '강남좌파'가 되어야했는지는 공감이 안간다.
그냥 몇몇 정치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강남좌파라는 틀 속에 억지로 넣어놓은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이 책은 저자가 성공회대에서 답사관련 교양수업을 하며 둘러본 장소 중 열 곳을 골라 책으로 펴 낸 것이란다.
책을 읽고 관심 깊은 주제 2가지를 정리해보았다.

 

- 전쟁은 기념하는 것인가요?

 

첫번째 장소인 전쟁기념관을 대하자마자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에 부끄러움이 앞섰다.
나는 그 으리으리한 용산 전쟁기념관을 지나면서도 한 번도 그 건물의 필요성과 의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왜 나는 이제껏 '전쟁기념관'이라는 이름이 가져오는 모순을 생각해보지 못한걸까?
그래 전쟁은 기념할만한 것이 아니다. 전쟁을 기념하는 것이 우리가 늘 외치는 평화를 구현하는 방법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전쟁을 기념하는 곳에 평화는 없다'는 첫장의 제목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국립서울현충원이나 국립 4.19묘지를 다룬 장을 읽으면서도 생각했다. 저자의 말처럼 전쟁기념관도 국립묘지도 모두 기억하고 싶은 죽음만을 기억할 뿐, 정작 우리가 기억해야할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 전쟁기념관에서도, 국립묘지에서도 군인들의 이름만 기억하는가?
군인들만 전쟁터에서 안타깝게 죽어간 것이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것은 민간인이고 그들 역시 아무 잘못 없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희생된 희생자이다.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무수한 죽음을 외면한채, 군인들의 죽음만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에게 과연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또 5.18 광주민주화 운동에서 죽어간 수많은 열사들을 외면한채 국가유공자들의 죽음만을 기억하는 것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많은 이들의 열망을 공허하게 만든다. 그러니 우리는 군인이 아닌 죽음, 군인에 의한 죽음도 기려야 한다. 특히 군인들에 의해 저질러졌던 수많은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 과거가 아닌 현재의 문제, 일본군 위안부.

 

경기도 파주군에는 일제시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이 계시는 나눔의 집이 있다. 이곳을 저자는 '피해자'와 '역사'가 공존하는 살아있는 역사관이라 부른다.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으면서 그분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우리가 겪었던 식민지 시기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대사관앞에서 시위를 하신다. 벌써 이 시위가 1000회를 넘어간다고 하니 그 긴 시간 동안의 할머니들의 마음 고생이 어떠셨을지 가슴이 먹먹해온다. 할머니들은 무엇을 위해 매주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시는걸까?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을 받고 싶다고 하신다. 할머니들의 바람이 꼭 생전에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사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위안부 문제는 늘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주제이다. 하지만 관심만 있을뿐 무언가 할머니들께 도움이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다. 그래도 내가 학생들에게 이 주제를 왜곡없이 제대로 전달하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이 왜 위안부를 만들었고 어떤 방법으로 모집되었는지를 설명하고,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알려줘야하겠다. 또 이것이 과거의 문제만이 아닌 오늘날의 역사적인 문제임을 강조해야겠다. 하지만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부끄러움이 아닌 아픔으로 느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