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읽기를 권함’ 책의 제목이 그대로 질문이 되어 저자에게 돌아간다.

‘종이책 읽기를 권하는 이유는?’
그냥 책도 아니고 ‘종이책’을 권한다는 게 인상깊다. 도대체 이 책을 쓴 사람에게 종이책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저자는 말한다. 종이책에서 얻는 깨달음과 감동은 한번 얻으면 다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즐거움을 준다고. 과연 그러한가?

 

-왜 읽을까?

 

  실제로 종이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요즘 사람들은 종이에 인쇄된 활자 대신 모니터와 핸드폰 액정을 꽉 채운 활자를 읽는다. 종이 책 대신 아이패드나 스마트 폰으로 책을 읽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러한들 나 역시 저자와 마찬가지로 종이책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떨칠 수가 없다. 이 책에 소개된 미국 작가 애너 퀸들런은 종이책을 읽을 때 촉각의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도 책이 주는 그 촉감이 너무 좋다. 양장본의 딱딱함보다는 문고본이 주는 부드러움을 더 좋아한다. 잠자기 전 머리 위로 책을 들쳐 들고 눈으로 읽어 나갈 때, 양장본보다 문고본이 주는 가벼움도 좋아한다. 매끈 매끈하게 넘어가는 고급 인쇄 종이의 감촉보다는 재생 종이의 우둘투둘한 촉감을 더 좋아한다. 한참 책을 읽다가 지루해져 남아 있는 분량이 얼마만큼인가 스르륵 책장을 넘길 때의 촉감도 좋아한다. 아마 나 역시 퀸들런처럼 종이 책이 주는 촉감이 좋아 종이 책을 사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읽을까?

 

  110쪽에는 책 읽기에 대한 재밌는 일화도 실려있다. 저자는 읽고 싶은 책은 너무 많은데 눈이 따라주지 않아서 속독학원에 다녔단다. 책을 빨리 읽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루에 열 권, 스무 권을 읽어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처럼 공허해지더란다. 그래서 다시 천천히 책 읽는 법을 배우기 위해 서당으로 갔단다. 그곳에서 한문과 글씨를 배웠고 옛 글을 읽는 데에도 재미를 붙였단다. 속독학원과 서당을 오가며 저자는 책 읽기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빨리 읽기’와 ‘천천히 읽기’가 그것이다. 저자는 권한다. 책의 종류에 따라 속독과 지독을 자유롭게 넘나들면 또 다른 책 읽기의 쾌락을 알 수 있을 거라고.

  또 하나의 책 읽기 방법은 ‘다시 읽기’다. 나도 가끔 누가 “그 책 읽어봤어?”라고 제목을 이야기하면, 분명히 읽은 것 같은데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책들이 있다. 특히 소설의 경우 주인공의 이름은 열이면 열 거의 다 까먹고 내용도 까먹고 인상 깊었던 느낌만이 남는 경우가 많다. 또 읽은 책이라도 그 날의 기분이나 요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꺼리에 따라 인상 깊은 내용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읽기의 방법을 참 좋아한다. 같은 책이라도 다른 책을 읽은 것처럼 기분이 묘하다.

 

-어디에서 읽을까?

 

  서재, 도서관, 기차, 공원벤치, 카페, 화장실 등 다양한 책을 읽는 장소가 나온다. 앞에 열거된 모든 장소에서 나도 책을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도서관이다. 책장으로 빼곡한 도서관에 나만의 책 읽는 장소, 아지트 같은 곳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자주 가던 도서관은 공원 안에 있는 규모가 제법 큰 곳이었다. 그 때는 문학 책을 좋아하던 때였는데 어문학 코너의 창틀에 앉아 책을 읽곤 했었다. 특히 더운 여름 날, 그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살랑살랑 불어오는 산바람이 좋았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우리 동네 도서관을 자주 찾는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한참 책 읽기에 몰두하다 지친 눈을 들면 확 트인 바다가 보여서 책을 읽는 맛이 난다. 다른 이에게도 도서관이 멋진 아지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슨 책을 읽을까?

 

  정치학자인 최창집 선생의 일과는 ‘전공 책을 읽는 시간과 비전공책을 읽는 시간’으로 나뉜단다. 나의 책 읽기도 전공 책과 비전공 책을 읽는 것으로 나뉜다. 전공 책은 읽어야만 하는 책이고 비전공 책은 읽고 싶은 책이다. 때때로 전공 책이 읽고 싶은 책이 될 때도 있지만 아주 드문 경우다. 전공 책은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 읽고 또 읽고 4번은 읽어야 의미가 이해가 되는 어려운 책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전공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상대적으로 소설이나 에세이의 책장은 쉽게 넘어가고 이해도 빠르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머리 속으로 그 의미가 되뇌어질 때의 그 만족감이 좋아 나는 책을 읽는 것 같다.

  또 나는 이 책의 저자처럼 한 작가에 빠지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모두 찾아 읽는다. 내 남자친구의 책 읽기도 그런 편이라 우리는 책보다 작가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다. 나를 매료시켰던 작가는 파트릭 쥐스퀸트와 베르나르 베르베르다. 파트릭 쥐스퀸트의 ‘향수’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가 이 두 작가에게 빠지게 된 계기였다. 한국 작가로는 김진명과 김훈이 매력적이었다.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김훈의 ‘칼의 노래’는 역사공부를 하는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제 나는 또 어떤 작가의 작품에 빠지게 될까?

 

나는 부산에 산다. 부산은 서울만큼 다양한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근현대사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다. 이 책은 부산의 역사와 추억을 담고 있는 장소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은 것이다. 11명의 집필진이 에세이 형식, 소설 형식 등으로 부산의 장소들을 소개한다.

- 빨래터의 추억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소는 괴정 단물샘이었다. 괴정은 우리 집으로 가는 길목인데, 타지 사람들이 오면 지명이 괴상하다고 웃곤 한다. 괴정은 회화나무의 또 다른 이름인 괴목에서 유래했단다. 단물샘은 물맛이 좋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곳에 빨래터가 있다. 요즘도 여전히 빨래터를 이용하는 아주머니가 있다고 하는데 물이 좋아서 세제를 안 써도 깨끗하고 개운하단다. 빨래터에는 세탁기가 주는 편리함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나보다. 여름에는 차가운 물이,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것도 신기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이 빨래터를 한 번 찾아가봐야겠다.

- 밥이 된 책, 책이 된 밥

나는 보수동 책방 골목을 좋아한다. 보수동 근처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때로는 문제집, 또 때로는 소설 책을 사러 이 책방 골목을 자주 갔었다. 최근에는 정비가 아주 잘 되어 외관이 예쁜 책방도 많이 생기고, 카페도 있고, 기념관도 만들어졌다. 새 책이 가득한 서점도 좋지만, 헌 책방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이 책에서는 보수동 책방골목 이야기를 소설로 소개한다. 주인공 진수가 짜장면을 사 먹고 싶은 걸 참고 하나 씩 장만한 50여권의 책들을 도둑맞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야말로 밥과 바꾼 책이었는데, 누군가는 밥을 먹기 위해 그 책을 훔쳐 헌 책방에 내다 판다. 그 책을 다시 진수가 헌책방을 기웃거리다 발견하게 되면서 요즘엔 통 책이 밥이 되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헌 책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한 때보수동 책방 골목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헌 책 대신 문제집만을 파는 가게도 늘어났다. 하지만 보수동 책방 골목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부산의 멋들어진 관광명소가 되었다. 아무리 컴퓨터로 신문을 보고 책을 읽는 시대라지만, 종이 책이 주는 그 감성을 기억하는 한 보수동 책방 골목은 우리들의 추억 속에 계속 자리할 것 같다.

- 부산의 근대 유산들

지금 부산의 중앙동 일대와 남포동은 100년 전만 해도 파도가 출렁거리던 바다였단다. 1876년부터 바다를 메워 지금의 땅이 되었다. 이 지역은 일본의 거류지가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부산의 근현대사를 잘 알 수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건물도 많이 있었는데, 이것들은 부산 근대문화 유산으로 보존되어야 할 건물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개발이라는 이름 속에 이 건물들은 하나 둘 철거되어 사진 속 풍경으로만 남았다. 그 자리엔 모텔과 상가가 들어섰다. 한국 최초의 유치원이었던 부산유치원 건물도 그 중 하나였다. 다행히 옛 동양척식회사 건물만큼은 철거되지 않고 남아 지금의 근현대사 박물관이 되었다. 나는 가끔 이 박물관에 들러 전시관을 둘러보곤 한다. 이 건물마저 상권 개발을 한답시고 철거했더라면 아마 지난 100년 동안의 부산의 역사를 이렇게 떠올려 볼 기회도 사라졌을 것이다.

- 구포국수 먹으러 갈까?

부산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구포로 가보자. 차비는 2500원, 소요시간은 13분. 구포에는 한국 지방 금융기관의 선구라고 할 수 있는 구포저축주식회사 (1908)가 있었고 1919년 3월 29일 일제에 항거하는 만세운동을 했던 만세거리도 있다. 또 구포에서는 국수가 유명하다. 구포시장은 강물이 드나드는 저습지여서 국수를 말리면 습기가 올라와 면이 쉽게 끊어지지 않고 면발이 쫄깃해 인기가 높단다. 가격도 2,500원이라니 저렴하다. 구포에서 5일장이 열리는 날, 기차타고 가서 국수로 점심을 먹고 이것 저것 시장 풍경도 구경하고 와야겠다. 

 

박원순을 알게 된 건 어느 신문 기사에 나온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서였다. 그러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 나올 때부터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 그가 쓴 책을 읽어보고 싶어 이 책을 골랐다.

 

잘 나가는 인권변호사에서 소셜 디자이너로

 

그는 잘 나가는 인권변호사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인권변호사가 아닌 소셜 디자이너로 알려지기를 바란단다. 참여 연대,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그리고 희망 제작소까지 그가 구상한 사업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가 했던 사업들을 책에서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먼저 참여연대. 그는 참여연대를 만들어 소액주주운동, 낙천/낙선 운동을 전개했다.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단다. 그 다음으로는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어 나눔과 기부문화를 정착시켰다. 기부라는 것이 돈이 많은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만드는 데 그의 역할이 컸던 것 같다. 네이버 해피콩 같은 기부문화의 아이디어도 돋보였다. 아름다운 가게는 사람들이 평소 사용하던 물건을 가게에 기증할 수도 있고 또는 다른 사람이 기부한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수익은 이웃에게 도움이 된다. 한국 뿐만 아니라 네팔이나 방글라데시 같은 외국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희망제작소. 말 그대로 삶의 희망을 제작하는 곳이다. 시민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사회적 기업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소셜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사람을 위해 소셜 디자이너 스쿨도 운영한단다.

소셜 디자이너, 참으로 멋진 직업이다. 하지만 원한다고 누구나 소셜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란다. 이 책에는 소셜 디자이너가 지녀야 할 몇가지 덕목이 실려 있는데, 첫째, 바꾸고 싶은 대상이 뚜렷해야 한다. 둘째,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 셋째, 꿈을 현실로 바꾸어내는 열정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부분을 읽고 생각해 봤다. 내가 만약 소셜 디자이너가 된다면? 나는 우리나라의 교육 분야를 바꾸고 싶다. 입시교육에 치우쳐 있는 지금의 현실을 바꾸고 싶다. 열정도 있고 노력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참신한 아이디어는 없는 것 같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한 것 같은데..^^

 

세상에 직업은 많다. 그러니 도전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사는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 많은 20대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 위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대기업을 가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박원순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으려고 하는 이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한다. 돈보다는 성취감, 만족감을 누릴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창공을 날아다니는 새도 먹을 것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하물며 인간이 먹고 사는 일에 갇혀 산다면 새장의 먹이 때문에 창공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아파트 대신 남의 집에 세를 살더라도, 삶의 겸허함을 배워나가며 성취감과 만족감을 동시에 누릴 길이 얼마든지 있다.”

 

이 시대의 화두를 생각하라

 

박원순은 어느 시대에나 '어젠다'라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치열하게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과제가 있다는 말이다. 1960년대에는 개발, 1970년대에는 수출, 1980년대에는 민주화, 1990년대에는 시민운동, 그리고 2000년대에는 균형발전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어젠다는 무엇일까?

나는 오늘날의 어젠다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정치를 봐도 그렇고, 일상 생활을 봐도 그렇고 소통이 되지 않아 분쟁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서로 자기들의 목소리만 내려고 하고 남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과연 행복일까?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세상, 소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과제이고 어젠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