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끌려 책을 집어들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짧았다. 하지만 짧은 글 속에 담긴 메시지는 너무도 강렬했다. 이 책의 저자인 스테판 에셀이 1917년 생이고 현재 95세라는 사실도 놀라웠다. 저자는 격동의 시기를 온 몸으로 경험한 사람이다.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합류해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했고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가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극적으로 탈출해 외교관이 되었다. 1948년 세계 인권 선언문 작성에 동참하기도 했고, 2009년에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찾아가는 등 인권 문제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회운동가이다. 그런 그가 우리 젊은이에게 던지는 한 마디는 ‘분노하라’는 것이었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는 것.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는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가?

 

  사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는 분노할 것이 너무 많아서 그 우선순위를 정하기가 힘들 정도다. 그래도 여러 사회 문제 중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돈 있는 사람은 계속해서 자기 배를 불리고, 돈 없는 사람은 계속해서 굶주린 배를 움켜 질 수 밖에 없는 지금의 구조와 현실에 나는 분노한다.

  두 번째는 보수 정권과 재벌들에게 장악되어 있는 언론에 분노한다. 미디어법이 통과된 이후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주류 언론이 신문은 물론 종편채널까지 얻게 되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쫓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이 와중에 MBC, KBS, YTN 등의 언론 등의 파업도 계속되고 있다. 언론은 균형 감각을 잃었고 특정 세력의 선전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도 진정한 민주주의에 필요한 것은 독립된 언론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균형잡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언론에 분노해야 하고, 개혁해야 한다.

  최근에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 선거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당권파로 표현되는 사람들의 행동이다. 자신들이 그렇게도 욕하던 부정 선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할 줄도 모르고 또 권력을 손에 쥐려고 하는 모습들이 너무 화가 난다. 제대로 된 조사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부정 선거를 한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잘못한 건 인정하고 반성하고 새로운 진보로 나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창조적 저항의식’으로 무장하고 싶다면 참여하자!

 

  저자는 무관심이야 말로 최악의 태도라고 말한다. 혹시 지금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참여의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 중에 가장 간단한 것은 자기 뜻에 맞는 정당에 투표를 함으로써 지지를 표명하는 일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기권하지 말고 투표하는 것,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첫 번째 형태의 참여이다. 또 조합 활동에 참여하거나 특별한 대의를 위해 활동하는 기구, 협회, 운동 등에도 참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세계인권연맹,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그린피스와 같은 단체이다.

 

폭력적인 희망은 없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비폭력이다.

 

  2001년에 9.11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테러리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었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고 또 그로 인해 무고한 많은 시민들이 희생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죽 했으면 저랬을까 싶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폭력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증오를 뿌리내리게 하고 복수심을 불타오르게 만들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 것을 공감했다. 이 책의 저자는 폭력이 희망에 등을 돌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폭력보다는 희망을 택해야 하고 비폭력의 길을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한국의 촛불시위는 비폭력 시위의 대표 사례이고 우리의 희망인 것 같다. 분노를 촛불로써 표현하는 것, 그리고 대한민국의 희망을 생각하는 것. 촛불 시위가 불법 집회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으로 인식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는 2004년과 2005년의 주요 사건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을 덮은 뒤에도 이 시기의 굵직 굵직한 사건들이 기억이 난다. 대통령 탄핵 소추안 발의, 촛불집회, 17대 총선,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논란, 김선일 피살 사건, 이라크 파병 논란, 과거사 청산과 국가보안법 갈등, 헌법재판소의 행정 수도 위헌 결정, 부동산 종합 대책, 대연정 제안 등.

 

지역주의를 깨기 위한 노력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구도를 깨기 위해 노력한 모습들을 기억한다. 또 그가 영남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3당 합당에 참여하지 않았던 정치적 선택도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노무현의 그런 행동들이 대통령 꿈을 꾸고 벌린 의도적인 이벤트였다고 평가한다.

 

  "가장 중요한 건 노무현의 신념이었다. 그 일에 자신의 목숨을 건 노무현의 신념은 논리로 격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건 그가 뻔히 떨어질 줄 알면서도 지역주의라는 맨땅에 여러 차례 헤딩을 해온 고집과 똑같은 성격의 것이었기 때문에 하늘도 못 말릴 일이었다. 물론 그게 이미 그 때부터 대통령 꿈을 꾸고 있었던 노무현의 의도적인 이벤트였다는 게 결국엔 드러나긴 했지만 말이다." (p.73)

 

  저자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 근거가 궁금해서 저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저자는 다시 읽어보니 이 부분에서 부정적 뉘앙스가 느껴진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집권 후에 드러난 노무현의 지역주의관의 한계 또는 변화때문에 이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노무현은 지역주의 극복의 시스템 구축보다는 목전의 이해득실에만 민감했던 것이 한계라고 지적했다.

  ‘지역주의 극복’은 여전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이번 19대 총선의 결과를 두고 지역주의가 공고해졌다고 평가한 사람도 있다. 총선 결과만 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각 후보들의 득표율을 보면 지역주의 극복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맹목적으로 특정 지역에서 특정 당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일부 사람들은 당이 아닌 인물이나 정책을 보고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지역에서 특정 당의 인물이 계속해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지역민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되면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사람들이 지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당 공천을 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영남에는 한나라당(지금은 새누리당이지만), 호남에는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국회의원 된다는 인식을 버리기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선거제도 개편이 지역주의 극복 시스템 구축으로 가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 역시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정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것은 노무현 대통령 임기 동안 그 정책이 실현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직 우리 나라의 정치 분위기에서 대연정은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들의 삶을 위해서도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FTA와 이라크 파병

 

  2004년 FTA 체결 협상과 이라크 파병은 노무현의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게 된 계기였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이 두 정책을 노무현이 내세웠던 개혁ㆍ진보와 동떨어진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개혁’과 ‘진보’라는 구호가 헤게모니 쟁취용이었다는 말까지 한다.

  당시 나도 이 두 정책들에 반대를 했었다. 이라크 파병이 ‘명분 없는 파병’이라고 생각했고, 아직 우리나라가 FTA를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요즘도 FTA와 관련해서는 논쟁이 많다. FTA를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섰다. 왜 노무현 대통령은 FTA를 체결하려고 한 것일까?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노무현의 자서전 <운명이다>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제목만 보고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거나 청춘들의 인생 이야기일 줄 알았다. 그런데 프롤로그에서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라는 문구를 본 순간, 이 책이 꽤나 사람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한아름. 이름만 보면 예쁜 소녀일 것 같았는데, 아름이는 열일곱의 소년이다. 그는 남들보다 네 배에서 열 배까지 빠른 성장속도를 보인다. 외모만 그런 것이 아니라 뼈와 장기도 늙어가고 있다. 조로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조로증은 아이들에게 조기 노화현상이 나타나는 치명적인 희귀한 질환이다. 지금까지 세계에 보고된 것만 백 건 정도. 한국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단다. 하루를 십년처럼 살고 있는 아름이는 심장마비와 각종 합병증의 위험을 안고 있고, 황반변성으로 한쪽 시력마저 잃은 상태다. 그런 아름이의 바람은 내년에 열여덟 살 생일을 맞는 것이란다. 시간만 흐른다면 충분히 실현될 수 있는 평범한 꿈이 아름이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아름이에겐 실패해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실패해 보고 싶고, 실망도 해보고 싶고 크게 울어도 보고 싶었다는 아름이의 말에 나는 잠시 동안 멍해졌다. 우리는 누구나 실패하는 인생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아름이는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그 실패조차 경험하지 못하며 산 것이다. 완전한 존재가 불완전한 존재를 이해하는 일. 아름이 말처럼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실패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아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게 어렵지만, 그 아픔은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가장 인상깊었던 문장은

‘너는.....언제 살고 싶니?’라는 질문이었다.(p.270)

아름이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자신을 두근거리게 만든다고 했다. 생각해봤다. 지금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두근거리며 살고 있을까? 나는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닐까? 죽고 싶은 순간보다 살고 싶은 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