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연설문을 찾다가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한국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을 검색하면 두 권의 책이 나오는데 제목만 같을 뿐, 내용은 다르다. 문고판의 <한국 국민에게 고함>은 박정희의 연설문만 모은 것이고, 양장본의 이 책은 박정희의 연설문은 물론, 그의 저작인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 ‘국가와 혁명과 나’, ‘민족의 저력’, ‘민족 중흥의 길’, ‘혁명 과업 완수를 위한 지도자의 길’, ‘혁명과업 완수를 위한 국민의 길’ 그리고 일기 몇 편을 모은 것이다. 이 책에 담긴 박정희의 저술 개개의 책을 읽으려면 구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가격도 비싸다. 그런데 이 책은 박정희의 저술을 모은 것 치고 가격도 그나마 저렴하고 무엇보다 세로 쓰기가 아닌 깨끗한 가로 쓰기로 인쇄되었다는 점이 장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거의 10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다 읽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대로 책을 읽어만 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게 어렵다. 만약 이 책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읽는다면 진짜 박정희가 꿈꾼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책의 표지에 이런 말이 인쇄되어 있다. “나의 평생에 소원은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조국을 잘 사는 나라로 한 번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과연 박정희에게 개인의 권력, 명예보다 국민 개개인의 삶이 더 중요한 것이었을까? 아마 그렇다면 그는 유신이라는 방법으로 정권을 연장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재에 반기를 들고 민주화 운동을 부르짓으며 죽어간 젊은이들의 죽음을 이처럼 헛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책에서 자꾸 거슬리는 부분은 ‘민주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박정희는 계속해서 서구 민주주의가 아무 비판 없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이식되어 절름발이 민주주의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한국적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가 말한 한국적 민주주의의 강력한 대통령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독재체제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 말이던가!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인들의 고민은 1880년대의 개화파 지식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실패한 혁명이긴 했지만 개화파 지식인들의 갑신정변은 적어도 인민평등을 목표로 하고 서구의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최초의 사례였다. 그러니 박정희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비판 없이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게 그대로 이식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왜 필요한지 공감하지 못한 몇몇 이익 집단들에 의해서 독재화되어 절름발이 민주주의가 되었을 뿐.

  이 책은 한번 읽는 것으로 부족하다. 계속 곱씹고 곱씹어서 1960-70년대에 우리에게 박정희의 선택 말고 다른 길은 없었는지 고민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역사 전공자인 나는 사람들로부터 역사 지식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 편이다. 역사 전공자라고 모든 역사 지식을 아는 건 아닌데, 사람들은 역사 전공자는 모든 역사를 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난감할 때 내가 하는 변명은 ‘아프리카사 전공자’라고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역사에는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지금도 우리에게 여전히 못 사는 빈곤의 나라로 기억되고 있고, 사람들은 그 나라에 역사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프리카에도 역사가 있다. 우리보다 더 아픈 식민지의 역사가.

  남아공에서 월드컵이 열리고 난 후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는 높아진 것 같다. 나 역시 아프리카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2010년 무렵이니까. 그 때 알게 된 책이 바로 <처음읽는 아프리카의 역사>였다. 표지에 적힌 “인간이 무엇이냐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와 닿았다. 2010년에 읽고 2년만에 다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여전히 이 책에 실린 삽화는 강렬하게 다가왔다. 삽화를 그린 사람은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라는 화가인데 아프리카의 문화와 삶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화가의 이름에서도 아프리카의 역사를 유추할 수 있다. 데니스는 기독교 이름이고, 도에는 아프리카 이름이며, 그의 성인 타마클로에는 '거북이‘라는 뜻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문명이라는 명분을 들이대며 오랫동안 아프리카 사람들을 배에 태워 노예로 팔았고, 대륙 전체를 자기들 마음대로 식민지로 삼아 나누어가졌다. 그들에게 원래 그 대륙에 살던 아프리카인들 생활방식이나 삶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 책에 실린 제목처럼 말 그대로 ‘짓밟힌 아프리카’였다.

  그렇게 짓밟힌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자유를 되찾는데 걸린 시간은 너무도 더디고 힘겨웠다. 군사독재라는 과도기에서 힘겨워하는 나라도 있었다. 그런데 튀니지나 이집트에서 시작된 혁명은 우리에게 아프리카의 희망을 보여준다. 그것이 혁명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사람들의 안정적인 삶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내렸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이 사건이 미국 군사력의 한계, 세계 나머지 지역의 뿌리깊은 반미감정, 흥청망청하던 1900년대의 경제가 낳은 휴유증, 미국 민족주의의 모순적인 압력들, 그리고 미국의 시민적 자유전통의 취약성세 초미의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9.11사건이 일어난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 동안의 세계 정세는 우리에게 미국의 패권주의,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9.11사건 못지 않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더욱더 선명하게 미국의 쇠퇴를 보여주었다.

  이 책이 나온 시기는 2002년이지만, 이 책의 내용은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처럼 미국 패권은 몰락했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여전히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으니까. 결국 이 책의 핵심은 1, 2부가 아니라 3부에 있는 것 같다. 3부에서는 앞으로 닥칠(지금 이 책을 읽는 시점에서는 이미 경험한 세계가 될테지만) 어려운 세계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레닌주의는 세계 좌파만, 그 중에서도 일부만 지지를 한 역사이론이었다고 말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레닌주의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막연히 레닌주의를 사회주의라고 규정하고 있었고, 그래서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처음에는 의아스러웠다.

  저자는 세계 자본주의가 출현한지 500년이 지났고, 처음으로 진정한 체제위기를 맞았다고 본다. 모든 체제는 체제의 발생→장기적인 시기→체제 위기의 시기를 겪는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체제 위기의 시기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자본주의가 소멸하고 다른 체제가 온다는 말인가?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이 책의 3부를 더 꼼꼼하게 읽어보고 해답을 구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