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나의 방법은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상대방도 알고 있다면, 거기에 좋아하기까지 한다면 이 사람은 나와 감성 코드가 맞는 사람이다. 그 때부터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
책 이야기를 할 때, 작가 이야기를 할 때 내가 던지는 질문 중 하나. “이병률의 <끌림> 아세요?”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상대방이 안다고 대답을 하면 그 때부터는 왠지 친근감이 든다. 이 책을 아는 사람이라면, 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감성적인 사람일거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잣대로 사물을 판단하는 사람은 목차도 없고 순서도 없고 거기에 페이지 표시도 없는 이병률의 책에 반감을 표할지도 모르겠다. 이병률의 책은 그런 두서없음, 자유로움이 매력인데..그런 매력을 아는 사람은 아마 지난 7년동안 <끌림>을 만지작 거릴때마다 그의 신작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겠지.
이병률의 새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2권을 주문했다. 한권은 이병률을 좋아하고 달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을 할 참이었다. 배달되어 온 책 박스를 뜯으니 싱그러운 민트색이 가득하다. 앉은 자리에서 스르륵, 먼저 사진을 눈에 담았다. 하나 하나 사진 찍은 이의 마음이 전해오는 듯 쉽게 눈을 뗄 수 없었다. 특히 눈발 흩날리는 날, 검은 옷을 입고 검은 우산을 손에 쥐고 검은 머리칼을 드리우고 걸어가는 어떤 여자의 사진에서 한 겨울의 쓸쓸함이 느껴졌다.
다음날부터는 글과 사진을 함께 눈에 담았다. 다른 책이었으면 스르륵 책장 넘기기에 바빴을텐데, 이병률의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렇게 일주일을 이 책에 빠져있었다.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고 그냥 간식 먹듯이 짬짬이, 틈틈이 읽었다. 페이지 표시가 없기 때문에 손에 잡히는 곳, 시선이 머무는 곳부터 읽고 또 읽었다. 잠이 들 때 생각나는 이야기들이 매일 매일 달랐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생각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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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를 알았다. 나는 그녀가 빨간색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그녀는 파란색이었다. 정반대의 색을 가지고 있어서 한순간 주춤 물러서기까지 했다. 그럴 경우, 내가 그쪽으로 옮겨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얼마를 더 만났더니 그녀는 차라리 흰색이었다. (중략)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대상은 색이 없어지고 오히려 지워져 창백해진다.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으로 대상은 참을 수 없이 완벽해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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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마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라는 제목이 좋아서 계속 되뇌었었다. 이 책에 그런 말이 나온다. ‘당신이 좋다’ 라는 말은 당신의 색깔이 좋다는 말이며, 당신의 색깔로 옮아가겠다는 말이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색깔로 옮아가고, 물들어 가는 일. 생각할수록 행복한 일인 것 같다. 빨강과 파랑이 서로 물들어 가면 어떤 색이 나올까? 잘못 태어난 색 분홍이 되든, 색깔의 사생아인 보라가 되든 나는 사랑하는 누군가로 인해 새로운 색을 담아내다 이내 엷어져 흰색을 향해 갈 것이다. 그런 과정들을 상상하니 이렇게 바람부는 날, 당신이 좋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누군가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이제 나는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