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의 저서들은 제목만 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책은 첫 장을 펼치기도 전에 정의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했고, 최근에 나온 신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역시 이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나서야 책을 펼쳤다.

 

  이 책의 첫 문구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구처럼 지금 우리는 거의 무엇이든 사고 팔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말 거의 모든 것이 상품화된 거래 만능 시대,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물질 만능 시대, 또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것이라 믿는 시장중심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 상황이 문제인 이유는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 때문이다. 누구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돈이 많아서 거래 만능 시대에서 혜택을 받지만 또 어떤이는 돈이 없어서 생계를 위협받기도 한다. 그러니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부유한지 가난한지가 중요한 문제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우리가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2008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시장지상주의, 시장만능주의는 여전하다. 하지만 지금은 시장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하는 때이다. 혹자는 시장지상주의에 담긴 도덕적 결점은 인간의 탐욕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 동안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변화는 탐욕이 아니라 시장과 시장가치가 원래는 속하지 않았던 삶의 영역으로 팽창한 것이다. 그러니 현대 정치는 시장의 역할과 그 영향력의 범위에 관한 논의를 해나가야 한다. 시장이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은 어디이며, 시장 논리가 속할 수 없는 영역은 어디인지 고민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돈으로 사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지 질문을 던져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3장. 시장은 어떻게 도덕을 밀어내는가?’는 이 책의 핵심인 것 같다. 영리를 추구하는 학교와 병원과 교도소가 늘어나고 전쟁을 민간 기업에 위탁하는 현상이 확산되고있는 현실을 생각해보자.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얻는 부부가 생겨나고, 스포츠인들이 돈을 받고 승부조작에 가담하는 현실은 또 어떻게 볼 것인가? 또 미국 댈러스 소재 학교들은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책을 한권 읽을 때마다 학생들에게 2달러씩 돈을 지급한다고 한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고 나는 적어도 교육, 의료 등 사회적 재화에 대해서는 시장 논리가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우리 사회에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사면 안되는 대상이 있다. 합리성과 효율성을 따진다면 기여입학제는 좋은 제도이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기여입학을 3불정책으로 금하는 것은 교육에 시장 논리가 개입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생각이다.

 

	이타주의, 관용, 결속, 시민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페이지 : 180쪽

 

  고전에 대한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품절이라 책을 구입할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도서관에 검색해보았더니 책이 비치되어 있었다. 이 책에서는 꽤 많은 사람들-공지영, 김두식, 노회찬, 배병삼, 변영주, 신경림, 이주향, 표정훈, 현기영, 홍세화 등 총 10명의 저자-이 자신이 읽은 고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역사적 상상력 얻기

 

  이 중에서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노회찬이 선정한 <조선왕조실록>이었다. 실록은 하나의 거대한 역사책이다. 조선시대 역대 왕들에 대해 사관들이 기록한 것들을 사후에 엮어서 실록을 편찬하였다. 그러니 그 양만도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예전에는 한글로 번역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실록을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한글로 다 번역이 되어 있고, 웹 서비스로 공개되어 있어 검색어만 입력하면 원하는 실록 내용을 찾을 수도 있다. 노회찬은 오늘날 실록을 읽는 의미를 ‘역사적 상상력’이라고 하였다. 실록을 통해 얻어진 역사적 상상력으로 우리의 삶에 모든 것을 가능하도록 꿈꿀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상상력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주고 새로운 계획이나 실험을 가능케 하며 생활에 활기찬 탄력도 주기 때문이다.

 

마음의 위로를 주는 <반야심경>

 

  그 다음으로 인상깊었던 부분은 이주향의 <반야심경>이었다. 이주향 교수가 <반야심경>을 접하게 된 때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비탄에 빠져있을 때였다. 이 때 매일 아침을 반야심경을 쓰는 일로 시작했다고 하는데, 방석에 곧게 앉아 한 글자, 한 글자 반야심경을 써 내려갔던 저자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저자는 반야심경을 매일 보고 옮겨 쓰면서 위로를 얻었다고 한다. 반야심경의 원제목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란다. 반야는 곧 지혜라는 뜻이고 그래서 반야심경은 지혜의 경전, 마음의 경전이라고 불린다. 책을 읽다보니 반야심경의 내용도 접하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나도 암송하고 있는 경전이었다. 어릴 때 불교학교를 다니면서 나도 모르게 암송하게 된 내용이었는데, 그 뜻을 모르고 있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반야심경은 짧지만 그 뜻이 깊어서 나도 저자처럼 한 글자 한 글자 새겨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발적 복종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홍세화는 16세기를 살았던 양심적 지식인인 라 보에티가 쓴 <자발적 복종>을 추천한다. 라 보에티는 <군주론>을 쓴 마키아밸리와 동 시대 인물이지만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저자는 우리가 국가 권력과 자본에 의해 자발적 복종을 강요당해왔다고 말하며 자발적 복종의 상대어인 ‘주체적으로 의식하는 삶’을 살자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계기로 지금까지 갖고 있던 의식세계와 가치관을 하루 아침에 확 바꿀 수 있을까? 저자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먼저 폭넓은 독서는 자발적으로 복종하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또 열린 자세를 통한 토론도 주체적인 삶을 가능하게 한다.

  박노자 선생님의 새 책이 나왔다고 해서 바로 구입하고 강연도 신청했다. ‘좌파하라’는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자본주의는 옳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말은 급진적이기까지 하다. 박노자 선생님은 지금 자본주의의 폐단을 신자유주의라는 개혁 정도로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은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신다.

  사실 나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 이상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이기 때문에 공공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 가능할 지 의문스럽다. 하지만 지금의 자본주의에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자유 시장에 맡기는 것은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공의 이익 추구를 위한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북유럽과 같은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도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과연 우리 나라는 북유럽과 같은 복지국가로 갈 수 있을까?

 

  박노자 선생님은 이 책의 2장에서 복지 문제가 계급 갈등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복지라는 것은 재분배인데, 상위 1퍼센트 내지 최고 5퍼센트의 돈을 가져와서 나눠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재벌이 무너지면 모든 산업이 무너지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재벌들에게 온갖 특혜를 주고, 재벌들이 이윤을 내면 그것이 중소기업들이나 노동자들에게도 이익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명 낙수효과다. 그런데 과연 지난 50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제대로 돌아갔었는지 의문이다. 과거에 비해 경제성장을 이룬 지금도 파이를 더 키워야 한다며 성장만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과연 얼마나 더 파이가 커져야 나누어 먹을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지금 세계 경제가 어렵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재벌은 여전히 매출액 및 자산이 증가하고 있고, 문어발처럼 계열사를 확장시켜 골목 상권까지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재벌들이 어떤 위기 속에서도 이윤을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와 하청 기업을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 한국 노동자들의 평균 실질 노동시간 및 산재율은 OECD 국가 중 최악이라고 한다. 또한 재벌들의 이윤이 늘어나는 동안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증가되지 않았고, 고용형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파견으로 위계화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왜 재벌 위주의 경제 성장을 계속해 나가려고 하는걸까? 요즘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이고 재벌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좌파담론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최근의 통합진보당의 사태에서도 보여지듯, 한국의 좌파운동은 그 뿌리가 너무 약한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좌파 정당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다. 견제자가 없다면 한국의 정치는 공멸하는 싸움을 계속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일당전제의 독주는 사회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다. 내부 반대자가 없다면, 견제하는 사람이 없다면 정치는 건전하게 운영될 수 없다. 그러므로 현실성은 좀 떨어지지만 좌파 정당 논의는 건전한 정국 운영을 위해서라도 계속해나가야 할 것 같다.

 

	정객은 지금 당장의 집권을 위해 그 외의 모든 것들을 다 버리지만, 정치인은 오늘보다 내일, 모레 그리고 아주 먼 미래까지 볼 줄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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