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반공 분위기가 한창이던 시절, 마르크스의 책은 금서였단다. 그래서 그 시절의 대학생들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궁금해하며 독서토론 서클을 만들고 몰래 몰래 마르크스의 책을 돌려 읽었다고 한다. <공산당선언> 역시 그 시절 금서로 통하던, 빨간 딱지붙은 책 중에 하나였을것이다. 이런 사연 때문일끼? 책을 펼치기도 전에 도대체 이 책에는 어떤 내용이 실려있을까 궁금함이 앞섰다.

  <공산당선언>은 1848년에 발표된 얇은 팜플랫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전문은 분량이 아주 적다. 안그래도 얇은 책인데, 이 책의 반만 ‘공산당선언’의 전문이고 나머지는 각 나라의 언어로 출간될 때의 서문과 각주들이다.

  이 책의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라는 그 유명한 명제로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문구로 끝난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간단히 번역한다면 부르주아는 자본가, 프롤레타리아는 임금 노동자 정도가 될 것이다. 나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중 어디에 해당하는가? 아마 나는 프롤레타리아에 해당하겠지.

  프롤레타리아는 억압과 착취를 받고 있으며, 불평등한 사회를 변혁할 주체로 여겨진다. 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를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자본을 형성하고 증식하게 되는데, 이들의 기득권이 강화되면 생계를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프롤레라리아의 혁명과 그에 따른 승리는 불가피한 것이 된다. 승리한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의 사적소유 폐지를 주장할 것이고, 부르주아의 사적소유는 국가에 몰수 되어 공유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마르크스는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고 했는데,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난 이후에도 계급은 분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또다시 사회적 모순이 발생할 수 밖에 없을텐데 그러면 역사의 주체는 또 투쟁하고 혁명을 일으키지 않을까? 맑스가 살아있다면 공산당혁명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그의 견해를 들어보고 싶다.

 

  이 책은 잡지 <사상계>의 권두언과 편집후기를 모은 것이다. 시기별로 장이 나뉘어져 있는데, 1장은 1953-1958년까지의 권두언이 실려있고, 2장은 1959-1963년까지, 3장은 1964-1967년까지의 권두언이 실려있다. 마지막 4장은 편집후기를 모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려면 먼저 <사상계>라는 잡지에 대해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검색을 해 보았다. <사상계>는 1953년 3월, 임시수도 부산에서 창간된 월간 잡지로 정치, 경제, 문학, 사회, 철학,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나 지식인의 논설을 실었다. 정기구독자가 1960년대초 1만 6,000명에 이르렀을 정도라고 하는데 1970년 5월 통권 205호를 끝으로 박정희 정권에 의하여 폐간되고 말았다. 폐간 이유는 김지하의 시 <오적五賊〉을 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준하는 창간호의 편집후기에 “인간 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고일 것이다. 사고의 명확성을 잃어버린 개인이나 집단에서 바른 판단과 바른 행위와 바른 생활을 바랄 수는 없다.”고 썼는데, 이 말이 가장 와 닿았다. 장준하가 사상계를 발행한 이유는 지금의 민족 현실을 이야기하고 위정자들의 행동을 규탄하며 사람들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사고를 통해 깨닫길 바랬던 것이 아닐까?

 

  이 책의 핵심은 아무래도 2장이 아닐까 싶다. 장준하는 1959년을 맞이하면서 새해는 ‘민권의 해’로 맞고 싶다는 권두언을 실었다. 그리고 1959년 2월호에〈무엇을 말하랴─민권을 짓밟는 횡포를 보고>라는 제목으로 백지 권두언을 실었다. 이 권두언은 1958년 12월 24일의 소위 24파동 혹은 보안법파동을 자행한 이승만 정권의 횡포를 보고 이렇게 백지를 내게 되었다고 편집자는 밝히고 있다. 이 부분을 보고 나는 예나 지금이나 백지를 내는 것이 하나의 반항이나 항의가 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또 3월에는 3.1절을 맞으며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를 다짐하였고, 6월에는 6.25전쟁을 떠올리며 인간 생명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신뢰성을 상실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글을 싣었다. 장준하에게는 8월 15일이 감격스러운 날이기도 했지만 반성의 날이기도 했다. 조국 광복 후 1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도덕적 질서, 경제적 질서, 정치적 질서가 확립되지 않은 국가 앞에서 이 세가지 질서를 확립하자고 외치고 있었다. 1960년에는 4월 혁명을 기리며 ‘자유와 민권은 어느 누구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민의 손으로 쟁취되는 것일 뿐이다.’라는 말을 했다.

  1961년 7월호에는 함석헌의 〈5·16을 어떻게 볼까〉라는 글이 실려 발행인이 연행되고 판매봉쇄, 반품공세, 세무사찰, 제작 관계자들에 대한 감시 등의 숱한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이 때 장준하 역시 ‘긴급을 요하는 혁명과업의 완수와 민주정치에로의 복귀’라는 권두언을 썼다. 이 시기는 5.16군사쿠데타로 군부가 정권을 잡은지 2개월이 되는 시점이었다. 장준하는 군부가 부정과 부패, 사회악을 소탕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우리들의 궁극적 목표인 민주주의 복귀의 길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였다. 하지만 이후 군사 정권은 민정이양을 계속해서 미루었고 군부 연장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장준하의 권두언과 함석헌의 글을 읽으며 정말 5.16 군사쿠데타가 불가피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진정 국가와 민족을 생각해서 혼란을 바로잡을 생각이었다면 군사 정권은 민정 이양을 서둘렀어야 한다. 하지만 군사쿠데타의 주체들은 군부의 연장과 권력 잡기에만 몰두했다. 쿠데타는 방법적으로는 옳지 못한 것이지만 그것이 혁명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되려면 정국 운영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1970년대 박정희가 보여주었던 유신 독재와 비상조치 선포 등이 과연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것이었던가? 그러니 5.16군사쿠데타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