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쓰는 과학자로 유명한 최재천 교수님의 신작 <최재천 스타일>. 이 책에는 최재천이라는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그가 읽은 책들의 서평도 실려 있다.

 

 

  이 책에 적혀 있는대로 상상하자면 최재천 교수님은 밤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대중 강연을 할 때는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가끼색 조끼색을 트레이드 마크처럼 입고 다니는 분이다. 외국인이 자신을 ‘자에 춘 초에’라고 부르는 걸 듣고는 왕년의 미국 프로농구 스타 닥터 제이를 본따 자신을 ‘제이’라고 소개하기 시작했고, 개미와 인도네시아 긴팔원숭이, 까치가 그려진 명함을 사용한다. 진화론을 공부한 과학자이지만 크리스찬이 아내를 따라 주일엔 교회를 나가고 아내를 가장 친한 친구이자 학문적 동반자라고 생각하는 남편이다. 사춘기를 겪던 아들을 위해 닥스훈트를 기르기 시작한 다정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춤을 좋아해서 다시 스무살이 된다면 춤꾼이 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공생이나 소통, 공감 등 이타적 행위에도 관심이 많다.

 

  나는 최재천 교수님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책을 통해 상상하고 있자니 과연 스타일이란 단어를 붙여도 될만한 분인 것 같긴 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좋은 자연 과학 책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특히 한창 <다이고로야 고마워>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때는 읽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꼭 읽어봐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또 침팬지 연구자로 유명한 제인 구달이 이렇게 쓴 책이 많은지도 처음 알았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깊었던 책들은 개미에 대한 것이었는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었을 때도 신기했었는데, 최재천 교수님이  소개해 주신 책들도 재미있을 것 같다. 특히 <개미 제국의 발견>은 꼭 읽어봐야겠다.

 

 

  이 책의 저자인 로브 레이들로는 동물보호운동 활동가이다. 그는 갇혀 지내는 야생동물의 삶이 나아지도록 동물원을 규제하고, 좀 더 좋은 법을 제정하도록 정부를 설득하는 일을 한다. 이런 활동과 더불어 야생동물을 가둬 놓는 일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도 하고 있는데, 이 책은 저자의 이런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라는 생각은 해 보지 못했다. 오히려 동물원이 어린이들의 인성함양이나 교육을 위해 좋을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런 내 생각이 얼마나 인간 중심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동물원에 갇힌 야생 동물들은 자기 삶의 통제권을 잃고 동물원 소유자, 관리자, 사육사들에게 의존하며 그냥 주어진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동물원 안에서 단조로운 일상을 경험하다보니 지루한 나머지 동물들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우리가 동물원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자는 사자나 호랑이, 자신의 털을 미친듯이 뽑아대는 원숭이의 모습은 사실 야생에서는 볼 수 없는 비정상적인 행동이라고 한다. 심지어 코끼리는 흙이 아닌 딱딱한 바닥 위에 하루 종일 서 있으면서 생긴 염증 때문에 죽는 일도 해마다 일어난다고 한다.

  동물권 관계자들은 동물원이 교육적인 공간이라고 말하고, 나 역시 이 말에 동의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철장 속에 갇힌 동물을 보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는지 반문한다. 나 역시 동물원을 찾으면서 동물들이 처한 환경이 어떤지 고민하기 보다는 그저 동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곤 했었다. 행복하지 않은 동물들을 보면서 나만 행복한 건 아니었는지 반성해본다.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 레이들로는 야생동물은 야생에서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야생동물을 동물원에 두어야 한다면 우리는 동물들에게 자연과 흡사한 공간과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여기에 영양가 많은 음식, 신선한 물, 수의학적 보살핌도 더해져야 한다. 우리는 비록 동물들을 직접적으로 보살필 수 있는 수의사는 아니지만, 동물원을 방문할 때마다 동물원 동물의 복지 수준을 점검함으로써 동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동물들과 함께 행복해지는 것, 그것은 우리의 사소한 관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말아야겠다.

2012년, 우리의 시대적 과제는 경제민주화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 정신과 시대적 과제가 있다. 1980년대 우리에게는 민주화를 이뤄야한다는 시대적 과제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화를 염원하며 투쟁했고, 우리는 마침내 1987년에 소망하던 민주화를 이루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우리의 삶은 나아졌을까?

  OECD 회원국에 가입했다며 좋아하던 것도 잠시, 1997년에는 IMF라는 경제 위기를 겪었고, 2008년에는 미국발 금융 위기가 있었다. 몇 차례의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깨달았다. 정치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경제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우리의 삶이 날이 갈 수록 팍팍해지고 있다는 것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앞다투어 시대적 과제로 ‘경제 민주화’를 꼽았다. 똑같은 단어지만 여야가 이 용어를 사용하는 의미와 범위는 다르다. 경제 민주화라는 용어 자체가 아주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민주화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지는 말자.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경제 민주화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민주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어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가 내가 살고 싶은 나라와 얼마나 부합하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문재인이 이야기하는 경제 민주화

 

  이 책의 97쪽에서 문재인 의원은 경제 민주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 안에는 재벌과 대기업의 개혁 문제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도급 사이와 같이 약자들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기 쉬운 관계들을 민주적으로 바로잡는 것도 포함됩니다. (중략) 경제민주화는 경쟁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요소들을 제거해서 건강한 경쟁을 촉진하자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경제민주화의 진정한 목적은 경제의 활력을 되찾고, 좋은 일자리를 늘리며 골목상권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재벌과 대기업 문제를 생각해보자. 우리나라는 1970년대 산업화 이후 지금까지 철저한 재벌 위주의 경제 정책을 펼쳐왔다.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하기 위해 일단 파이를 키워놓고 나눠먹자는 ‘선성장 후분배’ 의 논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제가 성장한 뒤에도 재벌은 자신들의 성과를 혼자 독식했다. 자신들의 성장에 국가의 지원,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다는 점을 새까맣게 잊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재벌들은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을 하며 매출액을 늘리고 있다. 도대체 노동자와 서민들은 언제까지 파이를 위해 희생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경제 성장을 위해 대기업과 재벌에게 주어졌던 각종 지원과 특혜는 언제까지 이어져야 하는가?

 

경제민주화가 필요한 이유

 

  ‘개천에서 용난다’는 옛말이 있다. 그러나 이제 이 말은 그저 옛말일 뿐이다. 2012년 한국 사회의 구조는 이 옛말이 실현불가능한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 계층 상승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계층 하강만이 있을 뿐이다. 재벌의 자녀는 부모들처럼 재벌이 될 확률이 높고, 교수나 의사등 전문직 종사자의 자녀들 역시 전문직에 종사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노동자의 자녀는 대기업 종사자, 교수, 의사가 될 확률이 거의 낮다. 심지어 정규직 종사자의 자녀들조차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정규직을 열망하며 살 가능성이 크다. 계층 상승이 더 이상 되지 않는 나라의 저소득층들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경제 민주화는 대한민국 99% 서민들이 희망을 가지기 위한 방안이다. 실현 가능성도 충분하다. 기존에 재벌과 대기업에게 주어졌던 특권을 폐지하고 공정한 질서를 만들면 된다. 애초에 자본주의라는 제도는 시장 질서에 모든 것을 맡기고 공정한 경쟁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의 사회 구조는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는 구조이다. 그런 구조를 해 놓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자고 하는 것은 올바른 자본주의 체제라고 볼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이상, 우리는 올바른 시장 질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가가 어쩔 수 없이 개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국가의 개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가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거나 또 국가가 모든 것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될 것 같다. 만약 문재인 의원이 이야기하는 경제민주화가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복지 국가 확립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이라면 복지국가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해야할 것인지를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의 누구인들 복지 국가를 바라지 않겠는가. 하지만 국가부채가 심각한 상황에서 복지 예산을 어디서 확보해서 어떻게 쓸 것인지 구체적인 논의없이 진행된다면 ‘복지가 나라를 망친다’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에 휩쓸려 갈 가능성이 크다. 이 책에서도 그렇고 얼마전에 읽었던 <안철수의 생각>에서도 그렇고 복지를 해야 한다는 타당성에는 동의를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은 제시된 것 같지 않아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