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인가, 본가에 내려갔다가 찾은 도서관에서

저자 홍승희 씨의 언니인 홍승은 씨의 책,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읽었다.

너무 인상 깊게 읽었던 터라 한 번 읽은 책은 절대 사지도, 다시 보지도 않는 내가 처음으로 이미 읽었던 책을 샀다.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는 여성은 물론, 비행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도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 동생의 이야기 같아서, 그리고 그 애들을 손가락질하는 어른들이 나는 아닌가 하는 생각에 반성도 고민도 많아지게 했던 책이다.

 그리고 그 언니에 그 동생이라고, 이 책 역시 많은 생각, 고민, 성찰을 낳았다. 본받고 싶은 자매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글들을 쓰고 내기까지 얼마나 많이 다쳤고 아팠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 상처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들을 지지하고 연대한다. 

나에게는 누군가를 찬성하거나 판단할 권리도 재간도 없지만, 그저 응원한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었기에 조금씩이라도 사회가 바뀌어 왔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반대의 패러다임으로 전환이 일어나지는 못해도, 시야의 확대는 일어난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세상이 변해간다고 믿는다.

43 아픈 와중에도 침묵해야 하는 건 얼마나 아플까.

117 고통의 순간, 고통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때, 공감받지 못하고 살라고 압박받을 때 사람은 시들어간다. 극단적인 고통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삶의 기본값인 고독, 허무, 절망의 틈새를 목격한 후 그것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을 때 사람은 쉽게 쪼그라든다.

167 당신이 너그럽지 않으면 좋겠다. 가족이나 평화나 화해나 치유 따위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의 이름 말고, 맨발로 선 피투성이 인간이기를. 마당에서 광장에서 거리에서 무사히 살아 있기를. 눈물과 비명을 계속 누수시켜 폭력의 세계를 고장 내버리기를.

47 '신이 있다면, 신이시여. 타자를 걱정하고 싶은 유혹으로부터 저를 구원해주소서. 의미를 소비하거나 생산하려는 저의 뒤통수를 때려주시고 장막을 파열시킬 힘을 주소서. 나 또한 분열된 인간이라는 걸, 소비에 중독된 인간이라는 걸 까먹지 않게 하소서. 내가 나를 타자로 느끼게 하소서, 아멘.'

나는 나를 안다, 나는 너를 안다, 나는 그를 안다, 나는 이 나라를 안다, 나는 이 세계를 안다, 

라는 무지가 오만과 폭력을 낳는다.

88 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을까.
아파야 정상일 법한 세상에서
사람들의 나약함을 건드리고 싶다.
건물의 뿌리로 추락해 다 같이 길을 잃고 싶다.
추락은 소란을 일으키고 땅에 균열을 낸다.
밑바닥에서 뚫고 나오는 에너지다.
더 크게 울면서, 팅팅 부은 눈으로 능청스럽게 말 걸기로 한다.

사는 동안 한 사람이 겪는 아픔의 깊이와 농도에는 차이가 있다.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어쨌든 우리는 늘 괜찮아야만 한다. 그래야 살아남으니까.
이 책은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 아프면 소리질러도 된다고 말해주니까. 먼저 울어주니까.

저자가 책을 써서, 그 책을 내게 읽혀주어서, 그의 세계에 나를 앉혀 주어서 고맙다. 살아주어서 고맙다. 
저자에게는 죽음을 선택할 자유가 있지만, 삶을 선택했고, 동시에 죽음을 긍정하는 법을 알게 해주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