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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목, 가장 먼저 간결하지만 뭔가 의미심장한 기운을 내뿜는다. 한 음절의 단어이지만 그 미묘함이 뭔가 엄청난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그리고 표지, 원색에 가까운 선면한 색을 바탕으로 그 중심에 묘한 표정의 여자가 눈을 내리깔고 있다. 막상 책을 받아 표지를 펼쳐보니 그 안에 또다른 힌트가 숨어있다. 요리사 그녀의 냄비 안에서 부등켜 안고 있는 남녀와 그들을 씁쓸하게 바라보는 그녀. 책을 다 읽고 난 뒤 다시 표지를 보니 살짝 오싹하다. 표지 안에 책의 내용과 느낌을 아주 적절하게 담아냈다. 마지막으로 카피, 짧고 강렬하다. ’사랑하는, 맛보는, 거짓말하는.. 혀’. 몇 개의 단어에 이야기의 핵심을 녹여냈다. 음식을 맛보는 것은 물론 달콤한 사랑의 말과 차가운 배신의 거짓말을 함께 쏟아내는 곳이 바로 ’혀’이기에.
1월, 그가 떠났다. 인정할 수 없지만 그는 떠났다. 그리고 이제껏 그와 함께 사랑이 충만했던 그집엔 버림받은 그녀와 그의 개 폴리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떠난 그를, 변해버린 그의 마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녀는 그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자기 최면을 걸지만 그럴수록 현실은 더욱 잔인하게 그의 부재를 느끼게 해줄 뿐이다. 배신과 실연의 깊은 슬픔에 끝도 없이 빠져들던 그녀는 예전에 일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노베’에 다시 일하게 되면서 조금씩 마음을 추스르지만, 폴리는 여전히 주인에게서 버려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점점 히스테리컬해진다. 6월, 폴리의 상태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자 그녀는 결국 원래 주인이었던 그에게로 보내기로 결정하고, 그것은 또다른 비극을 불러온다. 그들이 다정하게 찍은 잡지 화보와 함께. 그녀의 아픔이 처절하게 베어나던 1월에서 6월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7월이 시작된다.
조경란이 6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혀>는 입속에 자리잡은 ’혀’라는 기관의 특징과 요리사라는 주인공의 직업을 충분히 활용해 ’맛과 말, 요리와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함께 자연스레 버무려낸다. 책속엔 그녀가 만들어내는 화려한 요리와 그 맛에 대한 감각적 표현의 향연이 끝없이 이어진다. 요리에 대한 그녀의 설명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절로 입에 침이 고인다, 쓰읍. 유감스럽게도 그녀가 말하는 요리의 대부분을 경험해보지 못한 터라 그들의 혀가 느끼는 짜릿함과 쾌감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맛깔스런 글을 통해 황홀한 그맛들을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맛보는 혀’는 이책 안에서 온갖 호사를 다 누린다.
반면 ’말하는 혀’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녀의 요리를 찬미하던 그의 혀는 다른 여자의 육체를 탐하고, 그녀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던 혀는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인다. 달콤한 말로 그녀를 유혹하던 그의 혀는 뻔뻔한 거짓말로 그녀를 조롱하고, 차가운 배신의 말로 그녀에게 상처를 준다. 말하는 혀는 사랑하는 혀이면서 동시에 거짓말하는 혀다.
사랑을 잃어버린 그녀의 끝없는 슬픔이 무던히도 이어지던 1월에서 6월까지, 책장을 넘기며 그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배신의 아픔을 요리에 몰두해 털어버리려는 그녀의 숨죽인 발버둥이 함께 슬퍼질 때쯤 마지막 7월이 다가왔다. 7월은, 사람을 지치게 하는 그 무더위가 뒤덮은 7월은 그녀의 복수로 서늘해진다. 책을 읽기 전에 미리 몇 편의 리뷰를 읽었기에 7월에 이르러 어떤 반전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6월의 끄트머리에 보여지던 그녀의 행동에 대충 짐작도 했었지만, 그렇지만 막상 그녀의 엽기적인 복수가 실행되자 등골이 오싹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7월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녀는 왜 그런 결심을 했을까, 꼭 그래야만 했을까,라는 의문보다 그녀는 과연 행복해졌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진정으로 그를 사랑한 것일까, 하는 의심도 함께. 그녀의 깊은 상처와 슬픔은 이해하지만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동조할 수 없었기에, 내게 <혀>는 슬프지만 섬뜩한 사랑의 뒷모습을 담은 소설로 남았다. 사랑은 그녀의 요리만큼 황홀하지만 그녀의 마지막 요리처럼 잔인하기도 하다. 그것을 맛보는 혀도. 그녀의 선택이 못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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