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랫만에 유쾌한 성장소설을 만났다. 이렇게 신나게 깔깔대며 책을 읽어본 게 얼마만인지. 책을 덮고나서도 책속의 장면들이, 문장들이, 만담같은 대화들이 자꾸 떠올라 혼자서 또 킥킥댄다. 그러다 가끔 누군가의 이상한 눈길을 느끼면 살짝 난감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완득이와 똥주의 찰떡궁합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삐져나오는걸. 이글을 쓰는 지금도 그들을 떠올리니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이렇게 시도때도없이 나를 웃게 만드는 경쾌한 책, 바로 김려령의 장편소설 <완득이>이다.
’가진 것은 쥐뿔도 없다!’라는 카피처럼 주인공 완득이는 내세울 거라곤 진짜 쥐뿔도 없다. 장애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정신지체가 있는 삼촌이라는 정직한 가계도, 가난한 옥탑방 전세집과 학교에서 수급품을 받을 정도의 녹록찮은 가정형편, 별로 달갑지 않은 옥탑방 이웃인 담임 똥주, 시험답안지에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역사를 새롭게 창조하고도 잘못된 점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수수한 시험 성적 등 겉만 보면 완득이의 주변은 암울 그자체다.
그러나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되는 법, 완득이 또한 마찬가지다. ’절대 기죽지 않는다’라는 카피의 나머지 문장처럼 완득이는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그것 때문에 기죽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의 절반 정도 밖에 안되는 아버지의 키를 두고 장난삼아 놀리거나 깔보는 사람들을 향해 때때로 주먹을 날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삐딱선을 타지도 않는다. 지킬 건 지킬 줄 안다. 장애인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이 남부럽지 않게 넉넉한 나라에서 그 모든 충분조건을 골고루 갖춘 가족을 갖고 있지만 우리의 완득이는 기죽지 않는다.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당당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용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속에서 새로운 행복을 발견해내는 ’쿨함’까지 선보인다. 도완득, 진짜 짱이다!
- 너 말이야, 사실이 그런 건 그냥 그렇다고 말해버리는 게 속 편하다. 한 번, 한 번이 쪽팔린 거야. 싸가지 없는 놈들이야 남의 약점 가지고 계속 놀려먹는다만, 그런 놈들은 상대 안 하면 돼. 니가 속에 숨겨놓으려니까, 너 대신 누가 그걸 들추면 상처가 되는 거야. 상처 되기 싫으면 그냥 그렇다고 니 입으로 먼저 말해버려. (136-7 쪽)
<완득이>에서 완득이 못지 않게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인물은 바로 완득이의 담임이자 옥탑방 이웃인 담임 ’똥주’일 것이다. 말끝마다 ’새끼야~’를 달고 사는 거친 입담을 자랑하는, 툭하면 완득이를 동네북처럼 ’갈구는’ 담임이지만, 우리의 ’똥주’, 알고보면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오히려 알면 알수록 은근히 중독성 강한 캐릭터다. 세상에 무심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완득이를 세상 속으로 끄집어내 주는 것도 똥주고, 어렸을 때 헤어진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게 연결해 주는 것도 똥주다. 비록 간간이 갈취하듯 뺏어먹기도 하지만 완득이의 어려운 가정형편을 생각해 학교의 수급품인 햇반을 꼭꼭 챙겨서 보내주는 것도 역시 악질(?)담임 똥주다. 그러나 무엇보다 똥주의 멋진 점은 동정이나 연민의 눈길 따위로 완득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놓고 툭툭 던지는 것 같지만 그의 거친 말속에 완득이를 향한 애정과 배려가 듬뿍 담겨 있다. 똥주도 완전 짱이다!
- 지난봄, 똥주를 만났다. 그리고 똥주가 죽이고 싶을 만큼 싫었다. 그때 즈음 나는 킥복싱을 하기 시작했다. 킥복싱은 미치도록 좋았다. 싫다와 좋다가 한꺼번에 내게 왔다. 싫어하는 사람을 하나님한테 고자질하러 교회를 찾았고, 좋아하는 운동을 하기 위해 체육관을 찾았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 누구와 대화해본 적이 없어 혼자 떠들 수 있는 교회를 찾았다. 내 몸을 언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라, 내 몸을 잘 움직여줄 수 있는 체육관을 찾았다. 어쩐지 아버지와 어머니도 새로 찾은 기분이다. (203 쪽)
<완득이>는 인터넷 소설같은 가벼운 문체에 재기발랄한 표현, 쿨한 캐릭터들이 어우러져 빠른 호흡으로 경쾌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무심결에 집어든 책을 화장실까지 참아가며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버렸다. 한 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도저히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작가의 흡인력 또한 대단하다. 또한 구질구질한 연민이나 동정 따위는 자리잡을 틈조차 없는 캐릭터들의 쿨한 태도 또한 <완득이>의 매력이다. 눈물이 핑도는 장면조차 웃음으로 넘길 줄 아는 미덕을 보여준다. 특히 작가의 재치넘치는 글솜씨에 얼마나 웃었는지 책을 덮을 때는 가슴이 시원했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하는 장면에서는 가슴 찡하고 눈물도 찔끔났고, 반친구 정윤하와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완득이>는 유쾌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 아버지와 내가 가지고 있던 열등감. 이 열등감이 아버지를 키웠을 테고 이제 나도 키울 것이다. 열등감 이 녀석, 은근히 사람 노력하게 만든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영 나쁜 것 같지도 않은 게 딱 똥주다. (204 쪽)
무엇보다 <완득이>의 가장 큰 미덕은 유쾌한 이야기 속에 장애인이나 외국인 노동자 같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편견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점이다. 장애인 아버지와 이주 노동자 어머니를 가진, 그래서 동시에 두 배의 편견에 시달리는 완득이의 가족을 통해 우리들의 사소한 선입견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보여준다. 또한 똥주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이용하는 악덕 기업주와 그들을 돕는 봉사자들의 모습도 함께 그려낸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조차 그리 무겁지만은 않다. 적절한 가벼움을 유지하되 진지한 이야기를 함께 엮어내어 유쾌하게 웃으면서도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 김려령은 끝까지 완득이의 쿨함을 견지해낸다.
크하하, 푸하하, 킥킥대다보면 어느새 끝에 도착해 있는 <완득이>. 웃고 즐기며 책장을 넘기는 사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훈훊지며, 가슴이 설레는 여러 순간을 골고루 거치며 완득이도 나도 이만큼 성장했다. 세상에 무심하고 그림자처럼 존재감없이 지내던 소년 완득이는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았고 그것을 통해 조금씩 세상속으로 발을 내밀며 청년이 되어간다. 조심조심 발을 내딛지만 아직 그에겐 성공보단 실패가 가깝다. 그러나 쓰러져도 괜찮다.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지금은 실패하더라도 열등감을 발판삼아 언젠가 성공할 거니까. 그리고 그의 주위엔 든든한 지원군들이 버티고 있으니까. 완득아, 힘내렴! 우리 모두가 너를 응원하고 있다구!
- 하~. 이 동네 집들 진짜 따닥따닥 붙어 있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숨어 있기에 딱 좋은 동네였다. 왜 숨어야??서 둛기 시작했는데, 그저 숨는 것밖에 몰라 계속 숨어 있었다. 그런 나를 똥주가 찾아냈다. 어떤 때는 아직 숨지도 못했는데 "거기, 도완득!’하고 외쳤다. 술래에 재미를 붙였는지 오방중에도 찾아댔다. 그래도 똥주가 순진하기는 하다 ······. 나를 찾으면 자기가 숨을 차례인데, 내가 또 숨어도 꼬박꼬박 찾아줬다. 좋다. 숨었따 걸렸으니 잊는 내가 술래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찾ㅇ르 생각은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찾다 힘들면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쳐 쉬엄쉬엄 찾고 싶다. 흘려보낸 내 하루들. 대단한 거 하나 없는 내 인생, 그렇게 대충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작은 하루가 모여 큰 하루가 된다. 평범하지만 단단하고 꽉 찬 하루하루를 꿰어 훗날 근사한 인생 목걸이로 완성할 것이다. (233-4 쪽)
가볍고 유쾌하지만 진중한 매력을 품고있는 경쾌한 성장소설 <완득이>, 꼭 만나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