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일기>는 1973년 월간<신동아>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지허 스님이 쓰셨다고 알려졌지만 법명만 알 뿐 구체적인 인적사항은 알 수 없는 분이다.

책의 표지에 강금실 전법무장관과 이해인 수녀의 추천사를 읽을때만 해도 과찬의 추천사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아차 내가 또 오만했구나 반성하게 됐다.

1970녀대 전후한 선방의 모습이 생생히 묘사되어 불교에 대해 무지했던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동안거(10월 15일 - 1월 15일) 선방생활의 모습과 거기서 얻은 깨달음이 속세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최소한의 물질적 생활을 하는 선객들의 모습은 풍요로움으로 가득차다 못해 흘러 넘치는 탐욕에 찌든 우리들의 모습이 겹쳐 부끄러움마저 불러 일으켰다.

선방에는 이불이 없다고 한다. 좌선시 깔고 앉는 방석으로 발만 덮고 자고, 하루 급식량은 주식이 일인당 세 홉으로 선객이 일년에 소비하는 물적인 소요량은 2만원 정도면 족하다고 한다. 자급자족하며 ‘삼부족(三不足)’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선방 역시 인간들이 함께 모여 지내는 곳이다 보니 서로간의 마찰은 피할 수 없다. 지전스님과 부목스님의 유물과 유심의 언쟁은 제법 흥미로웠다.

선객들은 식욕 역시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식사(먹는 생각) 역시 화두 다음으로 끈질기게 붙어 다닌다고 한다. 통계에 의하면 선객의 9할이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위장병 환자라고 하니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다.

겨울철에 구워먹는 상원사의 감자맛이 일미라 스님들은 공모하여 감자를 계속 유출해 먹는다. 그것을 파악한 원주스님의 해결책이 지혜롭다.

<병든 스님>이라는 제목의 일기가 기억에 남는다. 결핵으로 선방을 떠나야했던 스님.

떠나면서도 죄송스러 했던 스님.

불교계 풍토에서는 병든 스님이 갈 곳은 없다고 한다. 자비문중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절간엥서도 병든 선객을 위해 베풀 자비는 없다라는 구절이 마음 아팠다.

신년 정초의 북적함이 지나고 동안거가 해제된다.

또 다시 선방을 찾아 나서는 스님들의 뒷모습이 아련하다.

마치 역사책 속의 인물들처럼 그 당시 선방생활이 잘 묘사되어 거침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화려한 수식어가 없어도 담백하면서 진실성이 묻어나는 문체 역시 굉장한 흡입력을 지녔다. 수행하는 기분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나니 스님들의 고통이(건방진 생각이지만) 조금은 이해가 됐다. 비교적 적은 분량의 아담한 책이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삶에 대한 성철의 힘이 크게 느껴졌다.

 

나름의 생존방식을 배워가며 이 재미나고 어려운 세계를 살아간다. 출발선이 다른만큼 다야한 경험속에서 각자 최상의 방법을 찾아내고 운명에 순응하면서 또는 개척하면서 그 누구하나 허투루 살아가지 않는다.

내 삶이 괴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욕심은 크나 그에 맞는 노력은 하지 않아서이다.

욕심을 줄이든지 노력을 더 많이 하든지, 머리로는 명쾌하게 해답이 나오지만 이 뛰어난 해답은 무용지물처럼 현재 나의 고민에 영향을 주진 못한다.

쥐고 있는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 힘들다. 그것들을 가지고 나아가려 하면 할수록 버겁다는 걸 깨닫는다. 내 그릇에 넘친다고 해야 하나. 콸콸 넘쳐흘러 손이 다 버려도 욕심을 내려놓기 힘들다. 마음의 여유와 환기를 위해 명상과 불교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요즘이다. 집착을 버리고 흐름에 맡기는 삶을 수행하는 자들으리 모습을 책을 통해서 하나씩 알게 됐다.

현재에 충실하며 거스름 없는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과거의 미련을 버리고 미래에 대해 불안정과 걱정 역시 버리고 나의 삶에 충실하고자 한다.

전국의 암자를 순례한 나그네의 발길에 나도 조심스레 동행해 본다.

우리나라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각 암자만의 특색이 잘 담겨져 있다.

나를 설계하는 봄 암자 에서부터 나를 성장시키는 여름 암자, 나를 사색하는 가을 암자, 나를 성숙시키는 겨울 암자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의 성장과정처럼 암자는 어찌보면 우리들 같다. 어릴 적 엄마손을 잡고 찾았던 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눈썹이 치켜올라가고 눈을 부릅 뜬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그림속의 인물이 지금 생각해도 조금 무서운 기분을 준다. 고요한 발걸음으로 자리를 이동하는 스님들의 모습, 깨끗하게 잘 닦여진 마루가 어린나이지만 무언가 신성한 느낌을 받았다.

조금 무섭던 어린기억속의 절과는 달리 머리가 제법 커진 지금 느끼는 절의 의미는 좀 더 편안해졌다. 강요 없이 가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지를 준다고나 할까.

나그네가 순례한 전국의 암자들을 둘러보며 새삼 이 작은 나라에 암자가 많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다양한 인간군상처럼 각각의 특색을 지닌 암자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쉴 수 있는 나만의 비밀공간처럼 다가온다.

무엇이 그리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고 분노하고 질투했던가.

나의 욕심과 자만이 나를 더 옥죄고 있음을 왜 미처 깨닫지 못했을까.

나그네의 순례길은 내게 있어 작은 위로였다.

맑은 산소처럼 오랜만에 숨다운 숨을 쉬게 해주었다.

책의 표지에 있는 탁 트인 산을 바라보며 자리잡은 빈그릇을 바랍로니 내 마음도 가벼워지면서 비워내는 삶도 의미가 있음을 배운다.

우리는 채울려고마나 했지 비움의 미덕을 잊어버리고 산 것이다.

나무향기 가득한 책의 사진이 마치 그 암자속에 있는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ㄷ라.

순리에 맞게 살아가는 자연처럼, 암자처럼 나의 삶ㄹ도 그렇게 살고싶다.

 

변화와 보존은 반대말일까? 나 역시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둘의 개념은 반대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다. 보수와 진보의 끝없는 싸움, 결국은 한 맥락이다.

변화는 보존을 목적으로 한다. 반대로 보존은 변화를 목적으로 한다.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둘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은 환경에 잘 적응한다는데 그치지만 인간은 주변상황을 자신에게 맞게 바꾸려고 한다.

현실과 관련해 자유롭게 사고하고 상상하는 것이 인간창의력의 기본이다.

어떤 조직이든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기존의 시스템을 버리고 무조건 변화를 강요하는 건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니다. 타인을 변화시켜야 한다. 타인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으로 권위, 확신, 참여, 수용의 방법이 잘 설명되어 있다.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도 타사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근에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시스템이 경영진에서 결정 된 후 직원들에게 통보 됐는데 권위의 힘으로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직원 상당수가 불만을 품고 있었지만 잘리는게 두려워 선뜻 반대의견을 내비치긴 힘들었다.

로베를 뱅상 줄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을 쉽게 조종당하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믿음이다.”

내 자신이 자유롭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결국 나는 조종당하기 쉬운 인간이 된다는 뜻에 충격을 받았다.

경영진과 실무진이 바라보는 변화는 다르다. 분명 같은 목표를 추구하지만 각자 위치에서의 접근법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론에만 능숙하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가야 한다. 책에 소개된 ‘샴푸를 해주는 보조 미용사의 딜레마’의 예시에 잘 나타나 있다.

기업에서 변화가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직원들의 몽매함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라 반대로 영리하기 때문에 변화를 막기로 한다는 걸 알아야한다.

구성원들간 관계에 따라 변화에 접근하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 그들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협상을 해야한다. 변화에 적대적이지는 않으나 적극 찬성하지도 않는 이들을 섭렵하는게 변화를 일으키는데 더 효과적이다.

보존이 안전한게 아니라 변화가 더 많은 안전을 보장한다.

기업은 오래도록 살아남길 원한다.

오늘날 기업관리는 경영자가 직접 나서서 직원들을 통솔하는 게 아니다. 직원들이 직접 나서서 윗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시대다. 직원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어야 한다.

록히드마틴의 전회장이자 CEO인 노만 어거스턴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두가지 형태의 기업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뀌고 있는 기업이고, 또 하나의 문을 닫는 기업입니다.”

변화 없이는 생존하기 힘둔 시대다. 다양한 인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