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미어병, 일명 치매에 걸리게 되는 할머니와 어린 손녀의 이야기를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린 동화책이다.
절제된 글과 반대로 그림으로 글 이상의 느낌을 전달하는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 생각된다.
할머니와 함께 하는 어린 손녀의 얼굴에 머물고있는 충만한 기쁨이 내 가슴에 오롯이 전해지면서 20여년 전에 돌아가신 내 할머니와의 추억의 우물에 두레박 하나를 띄워주었다.
할머니는 아흔넷을 일기로 세상을 따나셨다.
내가 열아홉일 때.
가난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은 꿈도 못꾸던 시절..
매일 우물의 물을 길어나르고,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으며,
몇 마리의 소를 키우며 거대한 목장주인을 꿈꾸던 시절..
외양간의 두엄을 치울때면 늘 댓돌에 앉아서 내 모습을 지켜보시며
'기특하다'를 달고 계시던 할머니였는데... 어느날부터 시시때때로 밥을 달라하시고
가끔씩은 사람을 못알아보시더니 나중엔 옷 갈아입는 것을 끔찍히 싫어하셨다.
강제로 벗기고 입혀드릴 때의 곤혹스러움이란...
금방 상을 물렸는데도 밥을 굶긴다며 큰소리를 지르시고, 기억을 잃어버리긴 하셨지만,
절대로 내 얼굴을 기억못한적은 없었던 할머니였는데...
내가 공부를 위해 도회지로 나온 후 채 1년도 안되어 할머니의 부고를 들었다.
열 아홉 가을에...
나는 학교에 말도 못한 채 밤열차를 타고 어두운 산고개를 넘어넘어 할머니와의 작별을 위해 달려왔다.
시렁위에 놓여있는 아주 오래된 할머니의 낡은 궤짝속에서
내가 억지로 갈아입히느라 힘들었던 몸빼바지들을 들추어보면서 엉엉 울었다.
속속들이 배어있는 할머니의 냄새와 함께 했던 추억들,..
그 모든것을 이젠 할 수 없다는 상실감을 어떻게 말로 형용할 수 있으랴.
지금도 가끔 민들레꽃과 제비꽃을 들여다보며 할머니를 생각한다.
구부정한 허리로 지팡이를 짚고 마실을 나가시던 할머니의 뒷모습이며
뒷간에서 엉거주춤 힘을 주시던 모습들...
그리고 억지로 옷을 갈아입힐 때 조금은 쑥스러워 하시던 소녀같던 할머니 모습..
그때 내가 할머니의 그러한 증상들이 '뇌에 생긴 병'이란 사실을 알았더라면
조금 덜 짜증부렸을 것을...
조금 더 부드럽게 할머니의 바지를 갈아입혀 드렸을것을...
조금 더 할머니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드렸을것을...
마지막 부분에 임상심리학자의 조언들과 도움되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세심한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있는 가족을 두신 여러분의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