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처럼 생긴 갯메꽃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고 모래사장과 바다가 넓다란 풍경으로 펼쳐진 이 책을 받고 무척 기뻤다.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뭉쳐 아름다운 태안의 모습을 찾기위해 애썼던 시간들이 떠오르고, 그러한 사고 후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태안 신두리에 서식하는 모든 동, 식물을 포함한 생물들을 만나기 위해 오랜시간 신두리 바닷가를 헤매고 다니셨을 것이다. 어쩌면 신두리에 살고있는 생물을 넘어 그곳에 머물다 간 바람이나 구름의 모습까지도 모두 이 책의 언저리에 기록하여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을것이다.
이른 봄, 황량해보이기까지 한 모래벌판의 주인은 끼룩거리며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었다. 작은 언덕을 넘자 찬바람 속에서도 고개를 내민 통보리사초가 인상적이다. 보리이삭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리라. 처음 보고 듣는 식물이어서 정말 신기했다. 해당화, 사철쑥도 앞다투어 새싹을 틔우고, 벌판을 기듯 넝쿨을 뻗은 갯메꽃이 이른 봄의 신두리 바닷가를 화사하게 장식하였다. 갯완두에 날아든 노랑 나비 한마리까지 섬세하게 포착한 작가의 열정과 순수한 사랑이 느껴지고, 모래지치의 줄기끝에 별처럼 꽃잎을 피우는 것하며, 모래밭 풀숲에 새둥지, 개미귀신 집, 심지어 콩알 닮은 똥까지... 발견하고,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얘기를 걸고, 대답을 기다리고 하면서 작가는 얼마나 신두리 바닷가 생물들과 깊이 소통하였을까?
신두리 모래언덕 뒤쪽으로 오솔길을 따라가면 모래밭에 스며든 빗물이 고여서 생긴 연못이 있다고 한다. 두웅습지로 불리는 이 연못엔 수련이며 애기마름, 매자기, 벗풀, 노란 띠를 두른 금개구리, 갈색의 물뱀 무자치, 얼룩 반점의 표범장지뱀 등 보기 힘든 많은 동.식물들이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 어떻게 바닷가 주변에 빗물이 고여 연못이 생길 수 있었을까. 기회를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다. 빗물이 고였다 빠지지않고 습지로 남아 여러 생물들을 품어 키우게 되는데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계절이 바뀌어 더운 여름이 오면 통보리사초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으로 꽃을 피워내고 시샘하듯 좀보리사초도 기다른 수꽃이삭을, 아래에 뭉툭한 암꽃이삭을 함께 꽃피운다. 나문재며 수송나물, 솔장다리가 바다를 호위하듯 자라나고, 빨간 꽃잎을 자랑하며 키작은 해당화가 멀리 멀리 향기를 풍긴다.
여름.... 사람들의 흔적으로 몸살을 앓게 되지만, 짓밟고 떠나간 빈자리를 묵묵히 채우며 다시 생명을 품을 준비를 하는 태안의 바닷가와 신두리 모래언덕이 마치 그곳에 뿌리내린 모든 생명들의 어머니같은 느낌이 든다.
작가는 말한다.
<<바람이 만든 모래밭은 스케치북, 풀들은 지우개 달린 연필일까요?
꽃을 그리고 나면 자신을 지우고, 모래만 남긴 채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이른봄부터 습하고 더운 여름을지나 건조한 가을, 그리고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 부는 겨울까지.. 사계절 내내 피고 지는 모든 식물들과 동물들이 이 한권의 책속에서 살아난다.
작가가 일년내내 태안 바닷가에서 각 종 식물들과 동물들, 바람과 나눈 이야기들이 도란도란 들려오는 듯하고, 자연스럽게 표현된 수채화 그림이 마음을 편안하게 이완시켜 준다.
이 책은 그저 태안의 신두리 모래언덕에 자생하는 식물들을 알려주는 차원을 넘어, 각각의 생명들이 갖고있는 특징과 어떻게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서로 피고 지며 생명을 이어갈 뿐, 자신이 꽃잎을 피우기 위해 다른 꽃을 공격하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내 자신의 출세나 명예를 위해 타인들을 밟고 올라서야 직성이 풀리는 메마른 인간들의 세상을 떠올렸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하나는 신두리 모래언덕이 천연기념물 431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바닷바람에 날린 모래가 쌓여 이루어진 언닥이며, 모래언덕 뒤쪽으로 400m정도 떨어진 곳에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연못, 두웅습지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자연은 모든 생물들을 품고 키우는 어머니같은 존재이다. 과학의 발달과 개발논리에 밀려 천연의 자연환경은 파괴되고, 그 결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유해한 환경에서 각종 성인병에 노출된 채 살고있는 것이 현대의 인간군상이다.
책 속에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여름 바닷가 풍경이 오래도록 남는다. 버려진 쓰레기더미에 두고온 양심이 지금쯤은 어디를 헤매이고 있을까? 신두리 바닷가와 모래언덕에 자생하는 동,식물들의 보호를 넘어, 우리 주변의 모든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고 지켜가야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며, 그렇게 할 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밝고 건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말미엔 이 책의 주인공들인 모든 식물들의 특징들이 정리되어 있다. 굳이 식물도감을 펼치지 않더라도 충분히 습득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 유익하고, 세밀하게 그려진 각종 식물들이 금방 톡! 꽃잎이 벌어질듯 생생하게 표현된 것도 이 책의 큰 매력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