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와 하룻밤에 다 읽은 책이다.
반납하는걸 깜박 잊어버린 덕분에 내게도 읽을 기회가 주어졌다.
예전엔 없던 버릇인데, 요즘엔 여러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는다. 수업에 필요한 책을 읽다가 비슷한 내용의 다른 책을 읽고, 또 필요한 부분을 참고하기위해 전문서적을 뒤적이기도 한다. 이 책은 이번 주 수업에 필요한 단편집을 읽던 중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갑자기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어린 제임스가 어떤 삶을 살게될까... 걱정과 염려때문에.. 마치 내가 책을 덮으면 그 소년이 불행해지기라도 할 것 같은... 암튼 끝까지 읽게 되었다.
짓궂은 운명의 장난,
하필이면 엄마 아빠가 사나운 코뿔소에게 먹히다니.. 심상치않은 시작부분이다.
그리고 이기적이고 게으르고 잔인한 물컹이 고모와 꼬챙이 고모에게 맡겨진다. 어린 아이들이누려야할 당연한 권리는 아예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내던져진다. 감옥같은 방에 갖혀 죄수처럼 아무것도 자유롭지 못한 생활, 친구 하나 없는 외롭고 힘든 나날들을 보낸다.
심술궂은 두 고모는 어린 제임스를 그냥 두지 않는다. 잠깐도 한눈을 팔지 못하도록 감시하며 이런 저런 일을 시킨다. 제임스는 두 고모가 무서워 거부하지 못하고 노예처럼 일하며 울타리 밖의 다른 세상 아이들의 삶을 동경한다.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슬퍼하며 울고있는 제임스에게 두 고모는 여전히 냉정하게 굴며 폭력을 행사한다. 슬픈 제임스가 월계수 덤불 틈에서 한없이 울고 있을 때, 낯선 할아버지가 나타나며 지금까지 고모집에서의 삶을 완전히 뒤집는 사건이 시작된다.
수정처럼 보이는 초록색 알갱이가 수천개나 들어있는 작은 종이봉지를 건네주고는 덤불속으로 사라진 할아버지. 봉지안에 들어있는 알갱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가진 마법의 묘약이었다. 제임스는 알지 못했지만..
제임스는 흥분된 상태로 봉지를 들고 달려갔다. 두 고모를 피해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대로 실험을 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만 한번도 열매를 맺어보지 못한 복숭아 나무 밑을 지나가다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풀밭에 납작 엎어지고 말았다. 땅에 떨어지며 '툭' 터진 봉지에서 초록색 알갱이 수천 개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금방, 순식간에 땅으로 스며들어 버렸다. 알갱이를 잡아 보려고 손을 뻗어 보았지만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제임스는 손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부터 기적은 일어나고 있었다.
꽃도 한 번 피우지 않았던 복숭아 나무에 복숭아가 달린 것이다. 어린 제임스에게 복숭아를 따오라고 시킨 물컹이 고모와 꼬챙이 고모는 어느 순간부터 점점 커지는 복숭아를 보며 환호한다. 그리고 집채만해 진 복숭아를 이용해 큰 돈을 벌 수 있으리라 믿는다. 두 고모는 복숭아 둘레에 울타리를 치고, 슈퍼 복숭아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받아 수익을 챙긴다.
방에 갇힌 채 유리창 밖으로 사람들을 내다보던 제임스는 저녁때 사람들이 다 돌아간 다음에 구경꾼들이 흘리고 간 과일 껍질이며 쓰레기를 주우라는 고모들의 명령을 받게 된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어린 제임스는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먹을 것을 말했다가 고모들에게 쫓겨나게 된다. 그리고 달빛을 받아 은빛 공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운 빛나는 슈퍼 복숭아 가까이로 다가가 복숭아를 건드려 보고 보송보송한 껍질에 얼굴을 대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 자기가 서 있는 발치에 나 있는 구멍을 보게 된다.
축축하고 어두운 터널..제임스는 터널을 기어가며 천장에서 뚝 뚝 떨어지는 달콤한 과즙을 받아먹고 복숭아 살을 베어 먹었다. 안으로 기어들어가 복숭아 씨앗의 자그마한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곳에선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제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 개만한 거대한 메뚜기와 거미, 수많은 발에 저마다 부츠를 신고 있는 지네, 그리고 우아하게 모자를 눌러 쓴 지렁이까지... 비단실을 뽑아내는 누에양과 천장에서 조명을 켜준 반딧불이까지..
제임스는 처음엔 두려움에 떨었지만 금방 해를 끼치지 않을 좋은 친구들이란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물컹이 고모와 꼬챙이 고모의 지옥같은 언덕을 벗어나 멀리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모은다. 지네 아저씨의 날카로운 이빨로 복숭아 꼭지를 갉아 잘라더린 뒤 고모네 집 언덕에서 아래로 아래로 굴러가기 시작하는 슈퍼 복숭아... 마침 대문에서 표를 팔기위해 준비하던 두 고모는 피할사이도 없이 굴러오는 슈퍼 복숭아에 깔려 말린 오징어처럼 되어 버렸다.
그렇게 언덕을 벗어난 복숭아는 굴러 굴러 결국 제임스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했던 바다에 떨어졌다. 그러나 곧 복숭아 주위로 엄청난 숫자의 상어떼가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어느새 여행자들 사이에 리더가 되어있는 제임스는 위기를 느끼며 해결책을 내놓는다. 갈매기들을 유인하여 누에와 거미가 짜는 질긴 실을 목에 걸어 하늘로 떠오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마치 기구를 연상시키는 이 어려운 모험에 두려움에 떨면서도 미끼 역할을 하는 지렁이 아저씨와 한마음으로 뭉쳐 자신들의 리더인 제임스의 명령에 순종하는 모습.. 그리하여 마침내 거대한 복숭아가 악어들의 위험에서 벗어나 하늘로 높이 떠오르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날아가면서 구름나라 사람들을 만나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무사히 미국 워싱턴까지 날아간다. 슈퍼 복숭아의 출현에 놀라워하는 사람들.. 갑작스레 나타난 비행기에 의해 갈매기들과 슈퍼 복숭아를 연결하던 고리들이 모두 잘려나가고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던 복숭아는 뾰족한 바늘처럼 위로 솟구친 마천루(엠파이어 빌딩 꼭대기)에 꽂히게 된다. 거대한 메뚜기와 거미, 지네, 지렁이에 경악하던 사람들은 어린 꼬마 제임스를 발견하고는 위험이 없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리고 그들의 위험천만한, 경이로운 여행이야기를 들으며 멋진 시가행렬을 벌인다.
유난히 부츠에 집착하던 지네는 신발을 만드는 일류 회사의 영업 담당 부사장이 되었으며, 지렁이는 여성용 영양크림을 광고를 담당하는 전문가로, 누에와 거미는 곡예사용 밧줄을 납품하는 일을 했으며, 반딧불이는 자유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횃불 속의 전구가 되었다. 초록 메뚜기는 뉴욕 교향악단의 단원이 되어 인기를 누리고, 무당벌레는 소방국장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그리고 아주 유명한 기념관이 된, 복숭아 씨가 놓인 그 유명한 집엔 제임스가 살고 있다.
한때는 가장 비참하게 어린시절을 보냈던 제임스가 이젠 수많은 아이들에 둘러싸여 슈퍼 복숭아를 타고 여행하던 모험담을 들려주는 행복한 친구가 되었다는 이야기...
책장을 덮으며 '역시 로알드 달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책을 재미있게 읽는 여러가지 방법들 중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찾아 읽는 방법도 아주 좋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상상력의 극치, 못된짓을 하면 벌을 받고,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적인 요소가 없진 않지만, 어느곳에도 억지스럽게 상대를 설득하고자하는 장치는 없는듯하다.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징그럽다고, 무섭다고 기피하고 함부로 대하던 곤충과 벌레, 동물들을 이 책을 익은 후엔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