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웅크리고 앉아 눈치를 살피는듯 보여지는 표지의 강아지가 새끼개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 책과 만났다.
한껏 사랑받으며 마냥 행복한 얼굴이어야 어울릴 제목, 새끼개의 이미지가 예사롭지 않다.

삭막한 콘크리트 숲속에 사는 요즘 아이들에겐 정서적으로 교감할만한 친구들이 많지 않다.
학교가 끝나면 각자 학원으로 내달리기 바쁘고, 그나마 틈새시간을 채우는 것은 건강하게 소통하며 뛰어놀 친구가 아닌 컴퓨터나 게임기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쌍방향 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컴퓨터나 게임기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사소한 문제로도 큰 사건을 만들기도 하며, 배려와 이해, 양보를 가르치기보다는 일단 자신의 몪을 챙기라고 가르치는 부모들의 교육 덕택?에 감정적인 줄다리기의 피곤함을 일찌감치 던져버리고 편리한 가상공간에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한다. 그곳에서 아이는 왕이며 세상의 주인이다. 명령에 따라 무조건 복종하는 가상공간의 생리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현실세계의 부대낌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해 심각한 갈등을 경험한다. 요즘 많은 아이들의 모습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우울해진다.

어린 생명들은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아파트 숲속의 아이들을 만난 이 책의 주인공인 ’새끼개’도 토실토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강아지였다. 아이들은 새끼개를 마음껏 사랑해주었고 아껴주었다.  따뜻하게 껴안아주었으며
시도때도 없이 간지럼을 태우고, 자주 씽씽 비행기도 태워주었다.  더울까 걱정되어 시원한 물에 목욕도 시켜주고, 헤엄치기도 배울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이렇듯 끔찍하게 아끼고 애정표현을 해주는데...
새끼개는 시름시름 앓기도하고 아이들을 피해 구석으로 숨어 들었으며 계속되는 구애에 날카로운 이빨을 으르렁거리며 사나운척 해야했다. 아무리 외쳐도 아이들에게 닿지않는 답답함으로 자주 앓기도 하는 새끼개의 마음이 충분히 공감되고 내 마음마저 답답함으로 힘이 들었다.

아이들은 새끼개를 사랑했고 그들 나름대로 맘껏 애정표현을 해주었지만
그것이 결국 새끼개를 얼마나 괴롭게 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괴롭다는 표현으로, 이제 그만 힘들게 해달라는 새끼개의 외침이 그들에겐 사나운 개의 모습으로 비추어진 것이다.
새끼개의 진실이 이렇게 왜곡되다니... 

결국 애완견센터에 다시 맡겨진 새끼개는 낯선 환경, 으르렁거리는 사나운 개들이 함께 뒹구는 그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주인아주머니가 애견센터에 나타나고, 반가운 나머지 컹컹 짖어대는 새끼개를 본 주인아주머니는 ’여전히 사납구나’ 하면서 작고 예쁜 강아지를 사가지고 훌쩍 떠나버린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한것 뿐이었는데... 그렇게 정서적으로 버려진 새끼개의 돌아앉은 등이 얼마나 슬퍼보이던지.. 가슴이 찡 울렸다.

가까스로 탈출해 떠돌이 개가 되어 며칠을 헤매던 끝에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 도착한 새끼개는  작은 강아지를 데리고 놀러나온 그 아이들을 발견한다.  비록 소통이 전혀 안되어 자신을 힘들게 하던 아이들이었지만 새끼개는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내달린다. 그러나 마침 달려온 검은 승용차에 치이고 온몸이 으깨어진다.  아련하게 들려오는 아이들 목소리에 으깨어진 몸뚱이 한부분인 꼬리가 약간 흔들린다. 서서히 가물가물해지는 의식....

새끼개를 읽는 내내 마음이 답답했다.
점점 기계화되어가는 세상을 살면서 따뜻함이라든지 인정, 배려, 사랑이란 단어조차 조금씩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는 요즈음, 새끼개가 아이들에게 느꼈을 그 답답함과 절망, 간절한 소망들이 전이되어 가슴에 온통 먹물이 들게 했다. 
’’소통’의 중요성과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아이들과 할 얘기가 너무도 많은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새끼개의 환생을 기도했다. 흐릿한 의식속에서도 아이들을 향해 꼬리를 흔들던 착한 새끼개를 보내면서 많이 아팠다.

그렇다면 나는 상대의 말에 얼마나 집중하고 제대로 인식하는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어준 ’새끼개’에게 감사함과 따뜻한 위로를 보낸다.

봄볕에 부끄러운듯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내민 제비꽃이며 민들레에 얼굴을 들이밀고 향기를 맡아보고, 꽃잎의 감촉을 느껴보며 말을 거는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새끼개가 원하는 방식의 사랑을 주는  따뜻한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런생각만으로도 이 봄이 훨씬 덜 외로울 것이다.

새끼개, 낮은산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시간에 밀려 읽지못했던 것을
장애아 부모들을 위한 강의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읽었다.

부모가 되기엔 모든면에서 너무 어리다고 해야할 나이(엄마 20살, 아빠 21살)에 두 남녀는 사랑에 빠져 결혼했고, 곧이어 예쁜 딸을 낳았다.
아기는 손가락이 하나씩 더 달린 사지기형으로 태어났고, 곧이어 뇌혈종 진단을 받았다.
실로 묶어 떼어낸 손가락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퇴원한 뒤에도 쿠슐라는 정상적인 아이들이 보여주는 여러 반응들에 둔감했다.

자주 발작성 경련을 일으켰고, 몸무게도 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다. 3개월무렵 소아과 의사의 진찰에 의하면 쿠슐라는 무엇하나 제대로 기능하는 것이 없는 전반적인 장애아가 틀림없었다. 

쿠슐라 부모는 4개월 무렵부터 보채고 짜증내는 아이를 달래는 방법으로 책읽기를 시작하였다. 깊이 잠들어 있을때를 빼고는 늘 보채고 힘들게하는 쿠슐라를 한번도 혼자 내버려 둔적이 없고, 늘 품에 꼭 껴안아 주었다고 하지만, 아직 어린 부모가 흐느적거리는 딸을 위해서 다른 무엇도 아닌 책읽기를 시작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절망에 빠져 아무것이나 해 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고 했다. 왜 아니겠는가?
다행히 쿠슐라는 책을 보려고 했고 귀 기울여 들었다고 한다. 
정상아들처럼 세상을 경험하지 못하고 단절될 수 밖에 없는 쿠슐라에겐 세상으로 나아가는,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는 통로가 열린 것이다. 어릴때부터 책을 읽어주는 가정에서 자란 쿠슐라의 부모였기에 선택할 수 있었던 '시간을 때우는' 방법이었지만 만약 쿠슐라가 그 방법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혜로운 부모들은 아마도 다른 방법들을 다각도로 연구했을 것이다.

쿠슐라는 책을 통해 세상에 눈뜨면서 조금씩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노력한다. 그것은 정기적인 운동이나 의사의 처방이 아니라 그림책의 활자나 그림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책장을 넘기는 것으로, 스토리에 동화되어 발을 까딱거리며 까르르 웃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절망감에 휩싸여 모든것을 포기할 수도 있었을 상황에서 끊임없이 장애가 심각한 어린 딸을 위해 노력한 쿠슐라의 어린 부모들에게 경외감이 드는것은 당연하다.

만약 의사의 조언대로 장애인복지센터나 시설로 보내져 적극적인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지금 쿠슐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복지센터나 시설에서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부모들처럼 끊임없이 책을 읽어주면서 세상이 두렵고 힘든 세계가 아님을 자연스레 가르칠수는 없었을 것이다.

쿠슐라는 참 복 많은 아이다. 
장애아에 대한 편견이 없는, 기꺼이 건강한 동생을 입양할 수 있는, 어리지만 성숙한 부모를 만나 자신이 가진 어려운 외부요인들을 극복하고 따뜻한 한 인간으로 삶을 영위하게 되었으니...

이 책을 통해 '책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한번 강력한 에너지를 얻었다.
무엇하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던 쿠슐라를 일으켜 세운것은 부모들의 강력한 의지와 사랑에 의한 '꾸준한 책읽기에 의한 건강한 자극'이였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쿠슐라 엄마는 아이의 변화되어가는 모습들을 꼼꼼히 메모해 이 책이 출간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었다. 이땅에 수많은 장애아를 둔 부모들을 위한 교과서와도 같은 이 소중한 책을 읽고,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책읽기를 통해 세상과 단절된 아이들에게 다양한 세상을 간접경험 시켜줄 수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책속에서 만나는 주인공들을 통해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지가 멀쩡해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불구의 힘겨운 상황에서도 꿋꿋이 앞길을 열어가며 세상에 빛이 되는 멋진 사람들도 많다.

쿠슐라와그림책이야기

이 책을  펼쳐보기 전에 나는 제목이 주는 의미에 마음을 기울였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늘 부족함을 느끼는 엄마이다보니 자잘한 실수들로 아이들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고.. 아이들은 엄마인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았다.

책 뒷 표지에 쇼파가 휑덩그렁하니 비어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마치 우리 거실의 쇼파가 비어있는 듯, .. 자각으로 통증을 느낀다.
한쪽 귀퉁이에 늘 세워져있는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들.. 그리고 앉아서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은 자주 보지만, 나란히 함께 앉아서 책을 읽거나 얘기를 나누는 시간보다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의 세계에 빠져있었던 것같다.

내가 집에 돌아오면 큰 애는 자신이 읽던 책속에서 내게 읽어주고 싶었던 구절들을 기억해내서는 큰 목소리로 읽어주곤 한다. 어젠 친구에게서 빌려왔다면서 '스펀지'라는 책에 나오는 여러가지를 읽어주는데 솔직히 재미도 없고 귀가 너무 왕왕거려서 '스톱'을 외치고 싶다는 속마음이 강하게 올라왔지만, 엄마와 소통하고픈 아이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참으며 들어주었다.
'시끄럽다'며 아이를 제재하는 남편에게 눈짓을 하면서....

내가 질문이라도 하면 아이는 더 신나하면서 책읽기를 계속한다. 그러다가 관련된 다른 책도 꺼내오고, 자꾸만 얘기거리가 확대되면 적당히 갈무리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약간씩 제재도 들어간다.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아이를 격려하는 방법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아! 얘기가 한참 삼천포로 빠졌다.

나는 독서지도와 치료를 함께 하고 있기에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어떤 활동이 이런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일까를 연구했다.  
짧지만 울림이 강한 다섯개의 이야기들은 각각 나눔과 가치존중, 표현과 도전, 감사라는 소중한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심어준다.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굳이 '나눔'이나 '표현'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아도 이야기속에 녹아있는 메시지를 통해 충분히 공감하게 되고 배우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동안 칼라믹스를 배우면서 자신이 조물딱 조물딱 만들어낸 작품을 가져오면서 성취감으로 행복해하던 작은애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입체적으로 구성된 배경들도 아이들이 흥미로워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진정으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줄 것.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줄것.

지금보다 훨씬 미숙하던 시절, 너희들의 외침에 귀기울이지 못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