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소설을 읽을 때면 매번 느끼는 느낌은 바로 ‘소외’이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오 하느님을 읽을 때도 매번 느끼는 허탈감의 정체는 바로 소외된 백성 때문이었다. 조국이 광복을 맞이하고, 6.25전쟁이 끝나고, 4.19혁명을 거치면서도 조정래 선생님의 소설의 결말은 항상 ‘그래서 도대체 뭐가 달라진 것이냐!’였다. 큰 의미에서 조국은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소외된 계층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커지기도 한다.

조정래 선생님의 소설은 모두 장편만을 골라 읽었던 탓에 중단편 소설은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30대 초반이었던 77~78년에 썼던 8편의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리고 8편의 소설에서는 하나같이 ‘소외’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모든 소설의 결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미 조정래 소설에서 익숙해져버린 허탈한 결말들인 것이다.

70년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범으로 갇힌 자의 최후, 5년 동안 같이 근무했던 직장동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삭막한 현실, 가정파탄 이후 살고자 아등바등했던 한 소년의 파국, 전기라는 문명의 이기가 바꿔놓은 시골의 풍경, 이웃의 죽음을 측은함이 아닌 흉측함으로 몰아가는 현대의 모습, 70년대 혼혈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 등 골목 곳곳에 있을법한 소외된 이웃에 대한 이야기를 조정래는 자신만의 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다만 조금 다른 내용의 소설이 있다면 마지막 소설인 두개의 얼굴쯤일까? 이 소설은 무식한 이웃들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이장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단편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짜임새 있는 구성을 갖기도 힘들고 뭔가 몰입하기 시작하면 끝나버리는 느낌이라 단편소설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읽은 단편 중 마음에 드는 몇 안되는 작품 중의 하나였다.

조정래의 결말에 너무 익숙해진 탓에 조정래의 소설에서는 이미 해피엔딩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말이 더욱더 현실적으로 느껴져 마음에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소설을 읽으며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70년대 시대를 비추어보면 그때의 것들보다 더 심하게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모른 체 살아가고 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운오리새끼처럼 혼혈아들에 대한 생각들은 많이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느낀 점은 좀 더 옆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1535도 철이 녹는 온도. 이 책속에 등장하는 항일단체인 한일단의 암호명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1535는 철을 녹일 만큼의 독립을 향한 열정을 뜻했던 것일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실 2007년 방영됐던 경성스캔들이라는 드라마를 생각나게 했다. 챙겨보던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기억이 맞다면 설정이 굉장히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다. 민족의 반역자이자 친일파의 수장이었던 정민석, 하지만 그 뒤에는 한일단을 기획하고 만든 장본인임을 누가 알았을까? 친일파의 피를 타고났기에 누구보다도 번민했지만 민족의 독립을 위해 누구보다 번민하며 괴로워했을 정민석이라는 인간이 한없이 안타깝게 보였다.

자신이 원해서 친일파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친일파의 아들로 태어난 숙명으로 인해 끊임없이 느꼈던 그의 죄책감과 그로 인해 생겨난 조국 독립에 대한 열망이 쇠를 녹이는 온도인 1535도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소설의 후기를 보면 작가는 여러 가지 가정을 두었다고 한다. 만약, 전국을 지하도로 연결했다면 어땠을까! 그 지하도가 항일운동을 하는 하나의 방편이었다면, 총독을 암살하려는 자가 일본인이었다면, 자살총이라 불리는 그 총이 우연이 아닌 일부러 만들어낸 것이었다면(사실 이 가정이 제일 재미있긴 하다), 일본인 위에 존재하는 조선인이 있었다면... 여러가지 가정들을 가지고 이 소설을 써 나갔지만 사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탓인지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은 굉장히 많다. 암울한 시기였기에, 내용이 우울 할 수밖에 없고, 그러한 내용들의 반복은 때로는 외면하고 싶기도 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대의 책을 읽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하는 과거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책 역시 일제시대를 소재로 하고, 항일운동 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시대적 아픔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리고 책의 뒷 페이지를 보면 일곱 남녀의 핏빛 사랑이라는 전제를 주고 있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 일곱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많은 등장인물과 흥미로운 가정들이 있었지만 900여 페이지를 읽으며 하나의 주제를 집어내기가 쉽지가 않은 책이었다.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은 필자의 문체이다. 어떤 결과를 던지고 나서 그 사실에 대한 설명을 뒤에 쓰는 것은 나도 즐겨 쓰는 방식이긴 하지만,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대부분의 문장 종결은 ~하기 때문이다. ~한 까닭이다. ~한 탓이다로 끝맺고 있어서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많은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또 한번 일제시대를 생각하게 했다.

정변의 실패 원인을 한마디로 말하면 외적으로는 ‘주변 상황 인식의 부재’요, 내적으로는 ‘디테일이 부족한 스케일’이었다. 먼저 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정변의 실패는 객관적인 상황인식, 즉 대내외 정세 분석의 부재를 들 수 있다. 무릇 어떠한 혁명이나 변혁, 그리고 개혁도 국민들의 이해나 동조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p. 142)

고등학교 시절 국사를 배우게 되면 두 번의 개혁적 시도가 있다고 배운다. 그 첫 번째가 이 책의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김옥균과 개혁파들의 3일천하 갑신정변, 두 번째가 농민들의 봉기에 의한 동학 농민운동이다. 첫 번째 개혁적 시도였던 갑신정변을 위로부터의 개혁이라고 한다면, 동학농민운동을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두 번의 개혁적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이 났고, 조선은 멸망하고 만다. 이 책은 이 중 첫 번째 시도였던 갑신정변을 배경으로 인물중심적인 내용을 보이고 있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말이 아무 필요가 없겠지만, 만약 갑신정변이 성공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었듯, 그들의 이상은 매우 컸지만, 디테일적인 면에서 부족함이 많았기에 이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였고, 만약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일제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듯 하다.

시대를 조금 더 앞서 흥선대원군의 섭정이 반외세적이지만 않았더라도 조선의 앞날은 조금은 밝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역시 하게 만든다. 물론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책의 구성을 살펴보게 되면 크게 6장으로 나뉘어 있다. 처음이 개화사상의 뿌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두 번째 장이 갑신정변이 일어나게 된 사회적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 번째 장이 갑신정권에 대한 사건과 그에 따른 결론을 내리고 있으며, 네 번째 장은 갑신정변이후 김옥균의 망명생활에 대한 내용이 그리고 다섯 번째 장은 김옥균의 죽음, 여섯 번째 장은 김옥균 외의 다른 개혁주의자들의 갑신정변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김옥균’이라는 인물은 사실 삼일천하 김옥균이라는 내용만을 알뿐 그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갑신정변의 내용보다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김옥균이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 당시의 여러 인물(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유길준, 김홍집, 어윤중, 김윤식)들에 대한 인간성과 그들의 행적들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사실 그들의 삶이 모두 칭찬받아 마땅한 삶인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박영효의 삶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이미지와 많이 달라 깜작 놀랐다.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었다.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일 수도 있지만, 갑신정변 당시의 정세를 좀더 자세히 기록해 줬다면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서 좀더 집중력을 가지고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마치 ~와 같이라는 예시로 들었던 러시아의 10월 혁명의 주역 트로츠키의 예는 사실 공감이라기보다는 잘 모르는 러시아 역사의 인물을 왜 여기에 비교해야 했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보통 마치 ~와 같이라는 예시는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고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잘 알고 있는 예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는 모순에 찬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분연히 일어서는 젊은 그들이 있었기에 그 나라 그 역사는 그래도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갑신정변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현실의 모순을 혁파하려는 젊은 엘리트들의 ‘행동하는 양심’, ‘행동하는 지성’의 선례를 부여줌으로써 특히 후세의 젊은 세대에 대한 민족적 자각의식과 조국이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었고, 방법론에서의 잘못은 하나의 ‘반면교사’역할도 했다고 볼 수 있다.(p.157)

많은 아쉬움을 남겼음에도 조선의 근대 정치를 꿈꿨던 젊은 개혁주의자들을 드려다 봄으로써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제시대의 바로 전 시기이기에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생각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