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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역시 추리소설이다. 내가 읽은 몇몇 소설은 그의 추리소설과 독설이 끝에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그런 책들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 방황하는 칼날은 그가 지금까지 다뤄왔던 다른 책들과는 조금 성향이 다르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추리소설 중간중간에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긴 했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사회적 문제를 다룬 책(히가시노 게이고의)은 읽어보지 못한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한 영화를 떠올렸다. 존그리샴의 소설을 원작으로한 ’a time to kill’ 이라는 영화다. 오래되버린 영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하는건 사무엘 잭슨의 커다란 눈동자이다. 백인의 범인들에게 유린된 딸을 본 그가 법정에서 총을 쏘아 범인들을 죽이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져버릴것만 같던 그 눈동자가 아직도 선명하게 머리에 각인이 되어있다.이 책은 이 영화와 맥락을 같이 한다. 단지 인종문제가 빠졌을 뿐이다.

이 소설을 나는 크게 3개의 입장에서 바라볼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피해자의 아버지이자 또다른 사건의 가해자가 되어버린 나가미네이다. 그누가 감히 그 사람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할수 있을까? 아니 그 사람의 심정을 100만분의 1이라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행동을 납득할수 있게 되어버리는건 어쩔수 없는 사실 아닌가? 소설속의 사람들처럼 물론 이해는 하지만 살인은 안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감히 위선자라고 말을 하고 말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역시 보수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인지라 이해는 하지만 살인은 안된라는 말을 던질것이다. 하지만 잠시 입장을 바꿔 나가미네가 되어본다면 나역시 다른 방법은 없을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딸을 단순한 놀이기구로 유린해버린 범인들이 단순히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갱생의 기회를 주기위해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된다는것은 사실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들에게 진정한 갱생을 위해서는 참회가 반드시 필요할것 같다. 그렇다고해서 피해자가 돌아오는것도 아니고 피해자의 가족들의 상처가 사라지지 않겠지만, 적어도 제 2의 피해자는 막을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어느쪽이든 가해자를 쫓고있는 경찰 오리베이다. 그는 끊임없이 머릿속에서의 갈등을 한다. 결론은 한개로 정해져있지만, 성폭력의 가해자인 가이지를 찾는 동시에 가이지를 노리는 나가미네를 찾으면서 누구나와 똑같이 죽어 마땅한 가이지를 나가미네가 차라리 죽여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것이다. 하지만 경찰이라는 입장에서 그의 마지막 행동이 과연 정당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히사쓰카가 이런말을 한다.

"경찰이라는 건 무엇일까? 경찰은 과연 정의의 편일까? 아니야, 경찰은 단지 법을 어긴 사람을 잡고 있을 뿐이야. 경찰이 지키려고 하는 건 시민이 아니라 법이란 말이지. 경찰은 법이 상처 입은 것을 막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어다니고 있어. 그런데 그 법이란 게 절대적으로 옳을까? 절대적으로 옳다면 왜 끊임없이 개정되고 있을까? 법은 결코 완벽하지 않네. 그 완벽하지 않은 법을 지키기 위해 왜 경찰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걸까? 그 법을 지키기 위해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을 마구 짓밟아도 되는 걸까?"(p. 534)

나는 히사쓰카의 마지막 이 말이 이 소설의 모든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이 쫓는건 사회의 편익이 아니라 법의 수호에 있다는 말이 왜 이렇게나 가슴에 와 닿아버리는걸까? 법을 지키기 위한이라는 이름으로 그냥 단순한 피해자의 가족이었을 뿐인 그사람에게 무슨짓을 해버린걸까? 그 사람들에게 그렇게 상처를 입혀도 되는걸까? 이 말이 이 글의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니었을까?

세번째의 입장은 성폭력 가해자의 단순 가담자였던 마코토이다. 난 그가 이 소설의 가해자들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미성년자이기때문에 보호받아야 하는 그 소년들이 어떤 행동을 했고, 그들이 이미 한계에 부디쳐서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들을 여럿볼수 있다. 그건 다름아닌 단지 자신의 보복이 두려워 친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장면이다. 물론 그들은 죽어 마땅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단순히 자신의 보복이 두려워 친구들이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단지 그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다 뿐이지 그들과 다른점이 무엇일까. 그가 진정으로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사죄하고 있는 행동이었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긴장감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내심 나가미네가 복수할수 있기를 현실에서는 불가능 할지 모르지만 소설이기에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래버렸다. 이 소설은 중간중간 들어와 있는 여러 인물들로 인해서 짜임새 있고, 굉장히 긴장감 넘치는 소설이 된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아동 성폭행 문제와 맞물려서 굉장히 마음에 와닿아버리는 소설이 된것 같다. 교육자라는 길을 걷기를 원하고 준비하고 있는 내게 있어서, 어쩌면 어린 아이들에게는 참회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고, 변화할 가능성이 있기에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법이 맞을것 같다는 주장을 해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 생각을 했던것 같다. 하지만 난 단한번도 내가 피해자일때도 그럴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던것 같다.

물론 범죄자가 진정으로 참회하고 새로운 삶을 살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영화에서의 그 어머니처럼 범인을 용서할수 있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은 케이스겠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그렇다고 한다면 과연 정의의 칼날이라고 말하는 법은 누구를 위해서 세워져 있어야 맞는것일까? 단순히 갱생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 소년의 편이 되어야 할까 아무 죄없이 피해를 본 피해자의 가슴을 어루만져줘야 맞는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