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 몰입중이다. 이건 몇번째 작품일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접하다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한켠에 묵직한 돌덩이가 앉는 기분이 든다. 방황하는 칼날을 읽었을때도 그랬고, 브루투스의 심장을 읽었을때 역시 같은 기분을 느꼈던것 같다. 그냥 단순한 추리이기 이전에 충분히 있을법한! 그리고 사회적으로 문제시 될만한 내용을 소재로 글을 쓰기 때문인듯하다.
이 책 『붉은 손가락』은 표지에서부터 으스스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붉은 손가락이라...붉은 손가락이라..." 난 아마도 읽기 전부터 이 붉은 손가락이란... 당연히 피뭍은 손일 것이라는 상상을 했던것 같다. 그리고 처음부터 등장하는 으스스한 분위기라니....
이책은 여러가지 복합적인 사회 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다. 고령화 문제,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으로 인한 인성교육(?)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시대 남자들의 위치에 대한 문제...
여기 한 가족이 등장한다. '마에하라'가... 여기는 이 소설의 실질적 배경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천재 형사가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자식은 끔찍히 사랑하며 뭐든 해달라는 대로 전부 해주는 여자가, 자기 시어머니에게는 마치 더러운 물건을 대하듯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급기야는..... 자기 아들과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아들의 범행을 치매 노인인 시어머니에 뒤집어 씌우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건 이 집의 주인인 마에하라 아키오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가정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집안일(아들문제)은 모두 아내에게 맡겨버리고, 어머니 일은 동생에게 맡겨버리고.. 돈을 벌어다 주지만 골치 아픈 일에서는 슬슬 피해다니며 살아왔다.
이 가정은 밖에서 보기에는 치매 노인을 모시고 사는 효부들이 사는 집안 같지만 실상은 가족간의 대화도 존재하지 않고, 시어머니와는 밥도 같이 먹지 않으려는 며느리... 그리고 그 곳에서 골치아픈건 딱질색이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현상을 묵인해 버리는 아들이 있었을 뿐이다..
사실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은 비약이 너무 심하다.(이런 부분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많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몰입해서 볼 수 있게 만드는건 바로 이러한 사회 문제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 들었고, 고부간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자식에 대한 잘못된 사랑은 인격적인 부분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채 성장한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들을 양산하고 있다. 또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사람이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면서 제대로 된 모델을 잃은 아이들은 다시 또 그러한 현상을 무한 반복할수 밖에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 사건의 결말은 두가지 부분에서 반전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의 치매증에 관한 것과 천재 형사인 가가와 그의 아버지에 관한 것이다.
어머니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려 했던 그 사건은 아들을 사랑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어떤 물건을 통해서 확인함으로 무산된다. 무엇이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던걸까... 치매가 아닌 어머니가 세상과의 문을 닫아버린채 치매노인 행세를 했던것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가가와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는 마에하라가의 이야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함으로 남게 되었다.
항상 같이 살아가고 있지만 타인인채 살아갔던 마에하라의 가족들과 서로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응원하며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깊었던 가가의 가족...
어느쪽이 더 올바른 가족인건지..... 어떤 정답도 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