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서른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나도 모르게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자연스레 건강에 좋은 음식만 찾게 되고 몸에 어떤 음식이 좋은지 검색을 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인터넷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마구잡이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전문의가 직접 집필한 책을 한 권 읽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선택한 책이 바로 <스마트 동의보감>이다. 이 책의 작가 백태선 박사는 의사 자격증과 한의사 자격증을 모두 가지고 있는 희귀한 박사다. 원래 현대의학을 전공한 그는 자신의 환자들이 한약을 먹어도 되냐는 질문을 자주 받아서 약재가 환자의 몸에 들어가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명쾌한 해답을 얻어 환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한의대에 입학했다고 한다.

 

 

 

 

 

나는 평소에 현대의학과 한의학의 경계와 차이점에 관해 크게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같다. 그냥 현대의학은 현대적인 의학이고 한의학은 꽤 오랜 시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우리나라 전통 의학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신뢰하는 의학이 다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한의학 체질이며 한의학을 현대의학보다 신뢰하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치과를 찾아가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의원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 한의학에 대해 더 알고 싶고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싶은 한편, 내가 한의학만을 고집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행동인가 하는 약간의 의구심이 생길 때도 있었다. 서점에 보면 다양한 현대의학과 한의학 서적이 있다. 수많은 의학 서적 중 의사 자격증과 한의사 자격증을 모두 가지고 있는 작가의 책이라면 내 궁금증을 확실하게 풀어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이 책은 그 궁금증을 확실하게 풀어주었다.
작가는 현대의학과 한의학을 적절하게 비교하며 일러스트와 도표 그리고 만화를 활용해 설명하고 있으며, 우리가 평소 한의학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장풍, 혈, 진맥 방법 등에 관한 오해도 자신의 의사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풀어주고 있다. TV나 영화, 책등을 통해 잘못 알고 있던 정보를 대부분 수정할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나오던 소음인, 태음인, 소양인, 태양인의 사상체질도 궁금했는데 이 책에 잘 설명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부분이라 집중해서 읽었던 것 같다. 내 사상체질은 어디에 해당하나 찾는 재미도 있었다. 내 사상체질은 아마 태….

의학 서적은 대부분 지루하고 몇 장 넘기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은 작가가 한의사 생활을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이야기하듯 친근하고 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소설 장르 이외에 한 호흡에 읽는 책이 별로 없는 내가 이 책만큼은 한 호흡에 다 읽었다. 그만큼 한장 한장 넘기며 한의학에 대해 알아가는 게 재밌던 책이다. 한의학개론이기에 모든 내용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편은 아니나 한의학에 관심이 있는 한의학 입문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스마트동의보감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덕분에…. 모두가 쉬쉬하고 숨기고 있는 덕분에…. 주변에는 우리가 모르는 가정 폭력에 길들어 있는 여성이 많다. 매 맞고 사는 남성도 있지만 대부분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힘없는 여성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낯선 한국에 발을 디뎌 하루하루 힘들게 지내고 있는 다문화 여성이 많다. 이 책은 이렇게 상처를 입은 사람이 누군가의 상처를 감싸는 희망의 이야기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은주 역시 가정 폭력의 희생자이다. 하지만 다문화 센터에서 봉사하며 남을 도울 줄 알고 자기 일을 꿋꿋하게 해내는 착한 여성이다. 술만 마시면 다른 사람, 즉 개가 되는 은주 아버지의 폭력은 그 증세가 날로 심각해졌고 칼을 들고 가족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마주하게 된다. 급기야 은주는 아버지가 휘두른 칼에 찔리기 까지한다. 견디다 못해 착한 은주는 집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은주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그렇게 쓰레기는 아니었다. 전쟁 후유증과 아들의 실패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으로 이 지경까지 된 것이다. 술만 아니면 괜찮은데 늘 그놈의 술이 문제다…. 아버지 폭력에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간 은주의 오빠는 카센터에서 하나하나 배워가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려 노력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뉴스를 통해 집을 나간 아들의 소식을 전해 들은 은주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상처를 입고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그렇게 악순환은 대물림된다.

 

 

 

 

이 책은 가족의 폭력과 다문화 가정의 문제점처럼 절망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은주를 친딸처럼 보살피고 도와주는 이웃인 지숙과 타국에서 온 은주를 가족처럼 맞이한 에민의 아버지 파샤를 통해 따뜻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은주가 봉사를 하는 다문화 센터에서 공부하고 있는 다문화 여성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그리고 있다. 그들은 은주의 친가족보다도 더 가족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서로 보살피고 아낀다. 은주가 악몽 같은 현실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던 것도 이런 주변인들의 따뜻한 보살핌 때문이 아닐까. 책을 읽다 보니 가정폭력을 모르고 지낸 나는 은주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갖고 지낼까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억울하거나 부당한 것을 참지 못하는 나로서는 읽는 동안 불안함과 불편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왜 한 번에 끊지 못할까? 하는 답답함에 은주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은주의 행동이 올바른 길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지금 우리 주변도 많은 은주가 있을 것이다. 그녀들이 악몽 같은 현실에서 꿋꿋하게 이겨내고 모두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은주, 권비영

 

모리사와 아키오 작가의 쓰가루 백년식당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또 다른 책이 출간되었다. 바로 이 책 <여섯잔의 칵테일>. 모리사와 아키오 작가의 책이 올해에만 벌써 2권이 출간되었는데 이는 아마 그의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지금까지 모리사와 아키오 작가의 작품은 샘터에서 출간을 해왔었는데 이번에는 이덴슬리벨에서 출간되었다는 점이 독특하다. 그래서 기존 페이퍼 표지에서 하드 표지로 변경되었다. 번역물은 누가 번역했는지에 따라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읽힘이 판이해지는데 다행히 기존 작품을 번역해 온 이수미 번역가가 옮겼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책 표지에 적힌 상처는 모두 이곳에 두고 가세요 라는 글이 힐링 소설임을 한 번 더 강조한다.

 

 

 

 

 

이 책은 헬스클럽 사브(SAB)의 프리웨이트 존에서 같이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는 여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만화가, 치과의사, 고등학생, 광고회사 사장, 회사원 등 이들의 다양한 직업만큼 여섯 명의 성격도 나이도 모두 가지각색이다. 이들에게는 혼자만 간직한 상처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상처라고 할 수도 있고, 고민 혹은 갈등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을….
이들 여섯 명의 이야기는 같이 운동하는 2m가 넘는 장신의 게이인 곤마마를 중심으로 서로 연결된다. 곤마마는 아르바이트생 바텐더 카오리와 함께 'Bar 히바리'라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같이 운동하는 이들에게 쉴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준다. 여섯 명의 인물은 이렇게 '히바리'라는 작은 식당에서 지친 일상과 회사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위로 받고 재충전을 한다. 곤마마와 카오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힐링 칵테일을 만들어주거나 마음을 채워주는 따스한 위로의 말을 해준다. 약사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해주듯 인기 만화가 미레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의 의미가 있는 블루문을, 딸을 잃은 센세에겐 '과묵하다'의 솔티 도그를….
다들 겉으로 나타내지 않을 뿐 요즘 같은 시대에 마음에 상처 하나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찌 보면 이들에게 곤마마가 있는 'Bar 히바리'라는 공간이 있다는 건 큰 축복이 아닐까 생각된다. 생각해 보니 나도 회사 일로 지치면 찾는 Bar가 하나 있긴 했었다. 지금은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거의 찾지 못하는 곳인데, 그곳에는 곤마마처럼 따스한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없지만 익숙한 그곳에서의 한 잔이 내게 큰 위로가 될 때가 있었던 것 같다. 다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안락한 공간이 하나쯤 있으려나….

 

여섯 명의 이야기를 단편으로 나누어 장편으로 만든 구성이라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모리사와 아키오 작가의 작품답게 긴장감도 없고 이렇다 할 반전도 없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뭔가 위로받았다 라는 따듯한 느낌이 느껴진다. 하루하루 지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다. 아마 자기 자신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괜찮아요. 소중한 것일수록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야 하거든요. 그래야 상대의 마음 깊숙이, 정확하게 전달되니까.
곤마마의 이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돈다.

 

 

 

여섯잔의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