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미스터리 소설은 범인이 유죄냐 무죄냐를 증명하거나, 누명을 벗기 위해 노력하며, 무릎을 탁 칠 정도의 날카로운 두뇌 싸움에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법정 미스터리 장르를 즐겨 읽고 좋아하는 편이다. <파계 재판>을 만나기 전에 읽은 법정 미스터리 소설은 아시베 다쿠 작가의 <열세 번째 배심원>이었다. 일본과 우리나라에 없는 배심원 제도에 관한 내용을 담아 흥미롭게 읽었고 만족스러웠던 작품이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추천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문신살인사건> 등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 다카기 아키미쓰 작가의 법정 미스터리 소설인 <파계 재판>은 정말 기대가 컸다. 법정 장르는 정말 여러 가지 지식이 필요한데 작가가 직접 법조인들을 만나고 재판 과정과 용어를 배우며 작품을 하나하나 집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나라는 이렇게 탄탄한 법정 미스터리 소설이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분명 어딘가 내가 놓치고 있는 작품이 있을 거라며 위안으로 삼는다.
이 책은 한때 신극 배우였던 무라타 가즈히코가 내연녀 도조 야스코와 그녀의 남편 도조 겐지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다. 무라타 가즈히코에게 씌워진 죄명은 도조 야스코의 살해와 유기, 도조 겐지의 살해와 유기 이렇게 총 네 건이다. 하지만 피의자 무라타 가즈히코는 도조 겐지의 시체를 유기한 죄만을 인정하며 나머지 죄는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런 그를 햐쿠타니 센이치로 변호사가 변호하게 된다. 법 관련 지식이 부족해서 실정을 잘 모르지만, 일본에서 형사 변호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증거나 증인을 조사하기 위해 사설탐정도 고용하는 것을 보면…. 햐쿠타니 센이치로 변호사는 올해 서른 살의 젊은 변호사로 그의 뒤에는 아내 야키코가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어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 아마 이 사건도 햐쿠타니 센이치로가 아닌 다른 변호사가 맡게 되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지 않을까 생각된다.
모든 법정 미스터리 소설이 그러하듯 <파계 재판>에서도 반전이 있을 거로 생각했고, 한 장씩 넘기며 반전을 예상해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분명 모든 증거가 무라타 가즈히코가 범인이라고 가리키고 있는데, 너무나 여유롭고 담담한 햐쿠타니 센이치로 변호사의 모습에 뭔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밝혀지는 무라타 가즈히코의 비밀에 안타까웠고, 내연녀 도조 야스코의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땐 씁쓸함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무라타 가즈히코의 "여자란 모두 그런 존재입니까?"라는 말하는 대목에서 그가 믿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받았을 상처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먹먹하다…. 자칫 누명을 쓰고 네 가지 죄목을 모두 뒤집어쓸 뻔한 사건을 한 변호사의 집념으로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이 굉장히 사실적이고 흥미롭게 그려진다. 더욱이 이 책은 1961년 작품이며, 모든 내용이 법정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괜찮은 법정 미스터리 소설을 찾고 있다면 <파계 재판>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파계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