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린의 장편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여주인공 헤이즐 그레이스는 산소 탱크 '필립'을 캐리어처럼 끌고 다녀야 하는 말기 암 환자라는 사실 말고는 다른 십 대들처럼 리얼리티 TV쇼(아메리카 넥스트 탑 모델)를 좋아하고 부모에 적당히 반항하는 십 대 소녀이다. 그녀는 열세 살 때, 갑상선 암을 진단받았고, 열네 살 때는 페에 종양이 생겼다고 판정받았다. 그런 소녀가 엄마의 강요에 이기지 못해 억지로 참여하는 서포트 그룹에서 한 소년을 만난다.

 

소년의 이름은 어거스터스다. 어거스터스는 골육종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지금은 의족을 달고 있다. 다행히 그는 NEC 상태로 골육종의 진행이 멈춘 상태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헤이즐은 갑작스러운 이 호감이 조금 불편했다. 자신은 말기 암 환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수류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가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자라나는 사랑이란 감정을 막을 수 없었고 두 사람의 달달한 사랑이 시작된다. 아픈 아이들의 사랑이라 뭔가 다를 줄 알았지만 평범한 십 대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서로가 좋아하는 책을 교환해서 읽고 토론도 했으며, 함께 DVD 영화와 TV 게임을 즐겼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이란 존재가 그들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헤이즐이 가장 좋아했던 책, '장엄한 고뇌'의 뒷이야기가 궁금한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그 책의 작가에게 연락한 결과, 마침내 작가의 초대를 받았다. 아픈 아이들의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 재단의 도움으로 작가를 만난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작가의 의외의 모습에 실망한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어거스터스는 골육종의 재발로 다시 치료를 받기 시작하는데…

 

실로 오랜만에 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린 것 같다. 읽기 전 이미 아픈 아이들의 사랑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슬픈 장면이 있을 거라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읽었지만 이런 예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특히 미리 추모사를 읽는 장면에서는 정말 울컥했다.
작가의 흡입력 있는 글솜씨 때문에 한 권의 책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책을 덮을 땐 '내가 죽으면 누가 마지막에 내 옆에 있어주고, 누가 날 위해 눈물을 흘려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적지 않은 나이를 살아오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에 자신 있게 답을 할 수 없었다. 분명 웃음과 감동을 주는 책이지만 내게는 지금까지의 삶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볼 계기가 되는 책이어서 좋았다. 이 책은 영화 <안녕, 헤이즐>이라는 제목으로 8월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한글 제목에 쓰인 '안녕'이라는 글자에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의 만남과 헤어짐을 모두 담고 있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이 책을 잘 표현한 제목이라 생각된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도 누르고 1위를 했다고 하는데 원작의 느낌을 얼마나 잘 살렸을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l 전 말이죠. 그런 거에요. 그러니까 수류탄 같은 거라고요, 엄마. 전 수류탄이고 언제가 터져 버릴 테니까 사상자 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다고요, 아시겠어요? - 108페이지

 

l 오, 난 신경 안써, 헤이즐 그레이스. 너한테 심장이 부서지는 건 일종의 특권인걸. - 187페이지

 

l 난 그 애를 사랑해요. 그 애를 사랑할 수 있어서 난 정말로 행운아에요. 반 호텐. 이 세상을 살면서 상처를 받을지 안 받을지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누구로부터 상처를 받을지는 고를 수 있어요. 난 내 선택이 좋아요. 그 애도 자기 선택을 좋아하면 좋겠어요. - 323페이지

 

 

 

 

 

잘못은우리별에있어